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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박세환] 좋은 상사의 조건

‘불쾌한 공격형’은 무능·무책임 상사의 자기방어기제… 여권내에는 이런 갑질이 없는가


옆사람 바지 지퍼가 열려 있다. 당신의 선택은? 조용히 다가가 “너 지퍼 열렸다”고 몰래 알려줄 수 있다. “저 사람 지퍼 열렸다!”라고 소리치는 짓궂은 사람도 있을 거다. 상대방이 불쾌할 수 있으니 일부러 침묵하는 경우와 아예 관심을 끄고 지나치는 이도 존재할 것이다. ‘실리콘밸리의 팀장들’ 저자 킴 스콧은 상사의 유형을 이렇게 네 가지로 구분한다. 이상적 상사는 ‘완전한 솔직함’을 지닌 사람이다. 부하나 후배의 잘못을 분명히 지적하되 배려심 있게 행동한다. 관심 없이 대립만 하는 ‘불쾌한 공격’형은 부하를 낮춰보는 유형이다. 일방적으로 공격만 하고 조언에는 관심이 없다. ‘파괴적 공감’형은 갈등을 피하고자 일부러 친절하게만 대하는 상사다. 아예 관심도 대립도 없는 이기적인 보스도 존재한다.

현실에서 완전한 솔직함을 갖춘 좋은 상사를 만나기란 하늘의 별 따기다. 막말하며 물컵을 던지거나(조현민 전 대한항공 전무), 직원의 뺨을 때리고(양진호 전 한국미래기술 회장), 운전기사에게 욕설을 퍼붓는(이해욱 대림산업 회장) 상사가 즐비하다. 오너의 갑질은 그나마 얼굴 볼 기회라도 있는 임원 또는 최측근 몫이라 쳐도, 직급이 낮아질수록 내리갈굼과 모욕은 눈덩이처럼 불어난다. 별수 있나. ‘난 저렇게 되지 말아야지’ 하며 참는 게 ‘을’들의 숙명이다.

청와대와 정부는 좀 다를까 싶었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해 한 회의에서 “갑질 문화는 국민의 삶과 자존심을 무너뜨리는 불공정 적폐다. 우월적 지위를 내세워 상대를 무시하거나 인격적 모독을 가하거나, 부당한 처우를 하는 것은 이제 국민이 용납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청와대는 9대 생활 적폐 중 하나로 공공 분야 ‘불공정 갑질’을 선정했다. 정부가 나서서 부당한 기업·조직 문화를 바꿔야 한다고 선언한 것으로 이해됐다.

최근 김현종 국가안보실 2차장의 무릎 사건은 그래서 더 놀라웠다. 지난달 뉴욕 유엔총회 당시 김 차장은 주유엔대표부 소속 A서기관의 의전 실수로 한·폴란드 정상회담에 참석하지 못했다. 김 차장은 그를 숙소로 불러 강하게 질책했고, A서기관은 이 과정에서 무릎을 꿇었다고 한다. 김 차장은 지난 4월 대통령의 중앙아시아 순방 도중 강경화 외교부 장관과 언쟁을 벌였는데, 외교부 직원을 심하게 질책한 것이 원인이었다. 외교가에서는 “터질 게 터졌다”고 한다. 김 차장은 뛰어난 업무능력과 별개로 평소 직원들을 가혹히 몰아붙이는 것으로 유명하다. 그에게 심하게 당했다는 일화가 수도 없이 튀어나온다. 김 차장은 정말 화가 나면 영어로 사람을 혼내는데 “무슨 말인지 몰라 차라리 낫다”는 우스갯소리도 돈다.

여권은 “혼날 짓 한 것 아니냐” “외교가 살얼음판을 걷고 있는데 직원들 기강 잡는 게 뭐가 문제냐”는 논리로 방어하고 있다. 한 여권 관계자는 “A서기관은 원래 무릎을 잘 꿇는 사람”이라는 인격모독적 발언도 했다. 남에겐 가차 없고 자기편엔 한없이 관대하다.

김 차장뿐 아니라 현 정부 인사 중엔 부하에게 가혹한 이들이 많다. 차기 대선 주자로 꼽히는 한 고위 인사는 보고서 표현 하나, 직원의 말투 하나를 두고도 심하게 질책한다고 한다. 그는 ‘자네는 도대체’라는 표현을 자주 쓴다. 기획재정부 출신 세 관료의 이름도 공공연히 회자된다. 쉴 틈 없는 지시와 지적으로 기재부 공무원들이 숱한 어려움을 겪은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 내 불쾌한 공격형 보스의 소문이 끊이지 않는다.

나랏밥 먹는 이에게 실수란 용납되지 않는다. 한 번의 실수가 돌이킬 수 없는 국가적 위기를 부르기에 늘 긴장해야 한다. 다만 공무원도 사람이자 직장인이다. ‘큰 것(성과)을 위해 작은 것(인간에 대한 예의)을 포기해야 한다’는 폭력적인 논리는 무능하고 무책임한 상사들의 전형적인 자기방어 기제다. 문 대통령은 “수평적이고 자유로운 조직에서 창의력이 발휘된다”고 강조해 왔다. 왜 청와대와 정부는 이 명제에서 벗어나 있는가. “혼내야 말을 잘 듣고, 성과도 난다”는 철 지난 논리에서 왜 탈피하지 못하는 건가.

한반도 비핵화와 검찰 개혁, 정말 중요하다. 하지만 이런 목표들이 직원을 향한 갑질과 강압, 폭언으로 이뤄진다면 무슨 소용이 있겠나. 높은 분들께서 먼저 가슴에 손을 얹고 자신이 좋은 상사인지 돌아봐야 한다. 가까운 사람 마음도 붙잡지 못하는데 하물며 북한과 국회는 어떻게 설득할는지.

박세환 정치부 기자 foryou@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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