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태극기가 나타났다. ‘태극기 부대’가 모이는 광화문을 말하려는 게 아니다. 서초동이었다. 지난 토요일의 2차 집회에서였다. 참여자 200만명 숫자 논란을 불러일으켰던 1차 집회에서는 없던 일이었다. “태극기는 그들의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흔들고 있는 태극기는 우리가 접수하도록 하겠습니다.”

‘검찰 개혁 촛불집회’ 주최 측은 태극기 부대의 전유물로 인식돼 버린 태극기를 다시 돌려놓겠다고 했다. 대형 실물 태극기가 등장했다. 사람들은 한 손엔 촛불, 한 손에 태극 팻말을 들었다. ‘그래도 조국’이든, ‘조국은 싫지만’이든 검찰 개혁 대의를 위해 모인 시민들이 ‘장대한 십자로’ 인파를 형성한 그 날 집회의 진짜 뉴스는 태극기의 등장이었다. 중요한 시도로 보였다. 태극기는 모두의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보수의 아이콘으로 전유됐기 때문이다.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 마지막 회엔 의미심장한 장면이 나온다. 만주 벌판, 거대한 태극기 깃발 아래 모인 의병들의 모습이다. TV 앞에서 모두 뭉클했다. 대중문화평론가 황진미씨가 이제 국권침탈의 이미지로 명성황후가 아니라 의병을 떠올리게 한 것이 드라마 최대의 공이라고 평가한 이유다. 그 드라마가 보여줬듯이 태극기는 민초들의 구국의 기호였다. 태극기는 개항기인 고종 시대에 도입됐다. 외국에 문호를 개방하며 국가 상징 표식이 필요했다. 1882년 조·미수호조약 체결 당시 조선의 깃발인 태극기가 성조기와 함께 게양됐다. 그러나 황제는 무능해 제국은 몰락했고, 의병들이 일어섰다. 그들은 태극기 아래 모였다. 그 의병이 모태가 된 독립군과 임시정부 요원들이 일제강점기에 끝까지 놓지 않은 해방의 희망처럼 품고 다닌 것이 태극기였다. 남녀노소가 태극기를 들고 거리로 뛰쳐나온 3·1 만세운동은 이전까지 다양한 형태로 존재했던 태극기가 현재대로 일원화되는 계기가 됐다고 태극기 연구자 김연갑씨는 말한다.

태극기는 어쩌다 초기 역사적 맥락에서 벗어나 태극기 부대의 전유물이 됐나. 모두가 알듯이 2016년 겨울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에 항의해 박근혜 전 대통령 퇴진을 주장하며 모였던 시민들의 광화문 촛불집회가 계기가 됐다. 시위는 이미지전이다. 박근혜 지지 세력은 상징으로 촛불을 쓸 수 없자 대신 태극기를 들었다. 국민의 집단 기억을 건드리는 탁월한 전략이었다. 태극기는 개발독재 시대 박정희 전 대통령이 국민 억압과 체제 동원을 위해 사용한 통치 장치였다. 국가와 애국의 이름으로 자유가 억압되고 인권이 유린당했다. 국기에 대한 맹세는 통치자에 대한 절대 충성의 다짐에 불과하였다. 오죽하면 영화 ‘변호인’(2013)에서 악질 고문 경찰 차동원 경감(곽도원 분)이 대학생을 구타하던 중 국기 하강식 애국가가 흘러나오자 돌연 경례 자세를 취하는 장면을 넣었겠는가. 태극기는 또 박정희 향수의 다른 이름이었으니 그의 딸 박근혜에 대한 동정심을 유발하는 데 안성맞춤의 상징물이었다.

문제는 태극기가 특정 세력의 전유물이 되며 일어나는 부작용이다. 이념 대결이 첨예화하면서 “태극기 할배” “당신, 태극기야” 식의 비아냥 용어가 됐다. 태극기와 성조기를 앞뒤로 붙인 보수의 샴쌍둥이 깃발이 어떻게 만주 벌판 추위를 이기며 싸우던 독립군의 품속 태극기와 같은 뜻일 수 있겠는가. “김구 선생이 무덤에서 벌떡 일어나 의병을 끌고 나와 대로할 일”이라고 한 페이스북 친구의 통탄은 그래서 공감이 간다.

페미니즘에선 ‘미러링’ 전략을 쓴다. 남성이 여성에게 한 혐오 발언을 그대로 돌려주는 것이다. 이를테면 ‘김치녀’ 조롱에 ‘한남’이라고 되받아치는 식이다. 결은 다르지만, 보수 세력의 소유가 된 태극기를 진보 세력이 함께 사용함으로써 태극기의 왜곡된 의미를 무력화시킨다는 점에서는 일맥상통한다. 서초동 집회의 태극기 팻말은 태극을 앞면에, 4괘를 뒷면에 인쇄했다. 태극기는 민중의 품에서 자랐다. 다시 말하지만, 집회는 이미지전이다. 그것만으로 태극기를 민중의 것으로 되돌리기에는 허약해 보인다. 이미지의 의미를 증폭시키는 것은 캡션이다. 태극 뒷면에 ‘공정’ ‘사다리’ ‘개혁’ 등의 글자는 어떤가. ‘개혁 태극기’ ‘사다리 태극기’로 읽힐 수 있게 말이다. 미국의 개념미술가 바버라 크루거가 페미니즘 집회 때 이미지와 함께 사용했던 붉은 색 캡션을 ‘커닝’해보는 것도 좋겠다.

손영옥 미술·문화재 전문기자 겸 논설위원 yosoh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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