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 불가피한 약속으로 외출을 했다. 약속 장소가 서울 서대문이었다. 차가 밀렸다. “다들 제정신이 아닌 것 같아.” 누군가 아주 작은 소리로 말했다. 옆 사람이 친구로 보이는 동행자에게 하는 말이었다. 동행자는 친구의 목소리보다 조금 크게 “서초동은 괜찮고?”라고 물었다. 이들의 대화는 거기서 끝났다. 버스에서 내려 언쟁을 벌였을지 토론을 했을지 알 순 없지만 어떤 상황이 벌어졌을지 머릿속에 그려졌다.

세상이 너무 시끄럽다. 두 주장만 있다. 치킨게임 양상이다. “대중에게는 생각이라는 것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다. 그들이 말하는 생각이란 다른 사람들이 한 말을 그대로 반복하는 것일 뿐이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 독일 제국선전부 장관이었던 파울 요제프 괴벨스의 말이다(괴벨스, 대중 선동의 심리학, 랄프 게로르크 로이드, 2006).

확증편향을 연구하는 학자들은 “대체로 어떤 현상에 대한 강렬한 감정이나 의견은 그 사안을 깊이 이해하고 있어야만 나오는 것이 아니다”라고 말한다. 신뢰하는 사람의 주장에 수긍하면서 다 안다는 착각에 빠져 그 주장을 그대로 따른다는 것이다. 내년 총선을 앞둔 정치권의 수 계산, 조금 성급한 언론 보도 등도 문제지만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듣게 하는 기술들도 편향성을 심화시키는 역할을 했다.

네이버가 8일 ‘네이버 커넥트 2020’을 열었다. 창작자와 소규모 사업자 1500명을 초청해 올해 성과와 내년 계획을 공개하는 행사다. 이 자리에서 한성숙 네이버 대표는 “네이버의 기술을 사용자가 직접 설계하는 기술 플랫폼으로 발전시켜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네이버의 여러 기술을 담당하는 책임자들이 차례로 검색, 광고, 온라인 비즈니스 등 각 영역의 계획을 발표했다. 핵심은 검색과 AI(Artificial Intelligence 인공지능) 기술을 고도화해서 더 나은 서비스를 제공하겠다는 것이다. AI 추천 기술을 많은 부분에 적용하겠다는 설명이 귀에 들어왔다. 상거래나 광고에 ‘똑똑한’ 기술을 적용하면 네이버와 소규모 사업자의 매출을 높이는 방안이 될 수 있다.

그러나 검색 결과에도 이를 적용할 계획이라고 했다. 뉴스판에 에어스(AirS)라는 추천 기술을 적용했더니 페이지뷰가 늘었다고 설명했다. 검색 결과에 기사만 노출되진 않지만 내 관심사를 반영한 기사 검색 결과를 정확하다고 할 수 없을 것 같았다.

영국의 옴니버스 드라마 ‘블랙 미러’ 중 한 편은 보고 싶은 것만 보게 할 때 생길 수 있는 문제점을 지적한다. 엄마가 어린 딸을 사회의 위험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양육을 위한 첨단 시스템 ‘아크엔젤’(Ark Angel)을 선택하게 되고 그 부작용으로 파국을 맞는 이야기다.아크엔젤은 어린이 보호 시스템이다. 뇌 속에 칩을 심어 아이의 모든 것, 위치 감정 건강 등을 태블릿PC로 파악할 수 있다. 아이가 보고 듣는 것도 실시간으로 보인다. 스트레스 요인을 알아내 현실에서 모자이크로 가릴 수 있다. 드라마에서 엄마는 공격성 높은 개의 모습을 모자이크로 가린다. 짖는 소리도 막아버린다. 딸이 피를 싫어해 모든 피를 모자이크 처리했다. 욕에도 민감하게 반응해 아예 욕을 듣지 못하게 설정했다. 성장하면서 통제에 대한 부작용이 나타났다. 아이는 위험 상황에 대처하지 못했다. 말에 담겨 있는 상대의 감정을 이해하지 못했다. 피가 철철 나는 상처를 어떻게 지혈해야 하는지 몰랐다. 그저 바라만 보고 있을 뿐이다.

비슷하거나 같은 의견들에 파묻혀 ‘내가 알고 있는 것이 전부고 진실’이라는 착각에서 벗어나려면 다양한 정보와 상황, 다른 의견들 속에서 객관성을 찾아 사실을 사실로 인정하는 법을 배우는 길밖에 없다. 그 방법을 정치권이, 미디어를 다루는 기관이 마련해야 한다. 합의를 도출하고, 사실을 점검해야 한다. 정쟁에 빠져 있을 때가 아니다.

전재우 사회2부 부장 jwjeo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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