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른미래당 창당 주역인 안철수 전 의원의 정계복귀 문제를 놓고 시끄럽다. 바른미래당의 유승민계가 해외에 있는 그가 돌아오기를 바라고 있는데 금방 오지 않는다니까 짜증을 내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들의 바람과는 달리, 안 전 의원은 아직 올 준비가 안 돼 있는 것 같다.

안 전 의원이 9일 공식 출간한 책 ‘안철수, 내가 달리기를 하며 배운 것들’을 읽어보면 그가 정치를 하면서 입은 내상이 예상보다 훨씬 크다는 걸 알 수 있다. 책 곳곳에 정치 때문에 생긴 ‘깊은 상처’ ‘괴로운 마음’ ‘아픈 마음’이 드러나 있다. 2017년 대선 때 드루킹 공격에 대한 분함도 있고, 현대사에서 3김과 정주영 전 현대그룹 회장만이 해낸 창당 후 국회 교섭단체 구성을 이뤄냈는데도 약한 정치인으로만 평가되는 데 대한 서운함도 피력했다. 또 지난해 서울시장 후보로 나선 것을 조롱하는 세간의 평가에 대해 “승산이 없는 것을 알면서도 나를 믿고 따라온 지방의원 한 명이라도 더 당선시키기 위해 출마했다”고 설명했다.

그만 괴로운 게 아니었다. 대선 때 상대 후보 측의 각종 의혹 제기에 시달렸던 부인 김미경 교수도 ‘왜곡된 사실’로 공격받은 일 때문에 안 전 의원보다 더 괴로워했다고 한다.

지난해 7월 독일로 간 부부는 마음속 상처를 떨쳐내고 싶어서 마라톤을 시작했다. 그는 “달릴 때면 괴로움을 잊을 수 있었기 때문에 뛰었다”고 적었다. 이 멀쩡하고 남부럽지 않던 부부가 얼마나 힘들었으면 괴로움을 잊으려고 마라톤에 매달렸을까. 그래서 그들은 독일 생활을 ‘순례의 길’ ‘견뎌내는 삶’이라고 불렀다.

5㎞, 10㎞부터 시작한 마라톤은 1년 사이 부부를 풀코스 주자로 만들었다. 그 사이 상처가 치유되는 경험을 했다고 한다. 그래서 자신들처럼 못 견디게 괴로운 일이 있는 이들에게 시도해보라며 마라톤을 시작하기 위한 도움말을 상세히 적어놨다.

책을 덮었을 때 ‘독일판 무릎팍도사’를 본 것 같았다. 정치에 뛰어들기 전 강호동의 ‘무릎팍도사’에 출연해 많은 이들에게 어필했던 안 전 의원 본연의 선한 마음이 느껴져서다. 공공과 미래세대를 위한 연구를 하고 있고, 아픔을 이겨낸 경험을 다른 이들과 공유하려고 애쓰는 마음도 예전의 그다웠다.

하지만 안 전 의원은 심신이 좀 회복됐을지라도 치유가 완전히 끝난 상태는 아닌 것 같다. 부부는 이달부터 미국 스탠퍼드대학 쪽으로 거처를 옮겼는데, 그들의 순례는 거기에서도 한동안 이어질 것 같다.

순례 중이고, 치유 중인 부부를 정계개편의 도우미로 쓰려고 부르는 건 좀 잔인한 처사다. 입원 중인 환자를 불러다 또 앵벌이를 시키려는 것과 마찬가지다. 안 전 의원 개인만의 문제가 아니라, 정치 트라우마에 시달린 가족 전체의 문제이기도 하다. 설사 정계복귀를 한다고 해도 온전히 치유된 뒤라야 더 큰 정치력을 보일 수 있을 것이다.

안 전 의원은 향후 거취에 대해 “우리 사회를 위한 문제해결사로서의 내 역할을 해나갈 것이다. 내가 경험한 좋은 것들을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계속 알려주며 살지 않을까 생각한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에 늘 최선을 다해왔던 내가 어디 멀리 가지 않을 것이다”고 적었다.

그의 정치복귀 가능성은 반반인 것 같다. 현재 인공지능 시대의 차세대 교육 문제, 대기오염 문제 등을 연구하고 있지만, 그게 대선 공약을 염두에 두고 하는 일 같지는 않다. 여차하면 지금 연구하는 일들을 계속하는 것으로 사회에 공헌하는 삶을 살지도 모른다.

다만 그가 과거 했던 말 중에 오래 기억에 남는 말이 하나 있다. “저는 뭘 한번 시작하면 10년은 하고 끝냅니다”라는 말이다. 2012년에 정치를 시작했으니, 다음 대선이 있는 2022년이 10년이 되는 해다. 안철수 지지자는 아니지만, 그가 잘 회복해 돌아온 뒤 어떤 형태이든 우리 사회에 계속 공헌하는 역할을 해주길 바란다.

손병호 정치부장 bhso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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