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하고 농사짓고 카페운영… 발달장애인들 ‘큰나무’로 자랍니다

장애인 자립 꿈 키워가는 ‘큰나무 캠프힐’ 공동체

큰나무 캠프힐 구성원들이 지난 2일 카페 앞뜰에서 손을 흔들며 파이팅을 외치고 있다. 강화=강민석 선임기자

인천 강화군 강화남로 428번길 70-11. 지난 2일 굽이굽이 마을길을 지나 찾아간 이곳엔 5400㎡(약 1800평) 규모의 텃밭에 가을 햇살을 머금은 농작물들이 자라고 있었다. 고구마 들깨 고추 등이 영글어 가는 밭을 뒤로하고 같은 모양을 한 건물 네 채가 눈에 들어왔다. 오전 9시가 되자 한 무리의 청년들이 건물 앞 돌담길을 따라 ‘카페(Cafe) 큰나무’ 팻말이 부착된 건물로 향했다.

“자~ 각자 맡은 곳으로 출발!”

손인실 사모의 힘찬 외침과 함께 청년들이 분주하게 움직였다. 세 살 때 손 사모와 처음 만나 23년째 인연을 이어가는 박상일(25)씨는 “테이블 아래를 깨끗이 정리하고 의자를 반듯하게 놓는 게 오픈 전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임무”라고 힘주어 말했다. 김두현(21)씨는 입구에 배달된 커피 원두 상자를 익숙하게 주방으로 옮겼다.

발달장애인 7명과 교사 6명이 공동체를 이루며 사는 ‘큰나무 캠프힐(이하 캠프힐)’의 아침 일상이다. 문연상 목사와 손 사모 부부가 2017년 11월 문을 연 캠프힐은 20년 넘게 장애인 사역을 펼쳐 온 두 사람이 발달장애인의 사회적 자립을 지향하며 일궈낸 결과물이다.

밭에서 상품성 있는 고구마를 선별하고 있는 구성원들. 자급자족이 생활화돼 있다. 강화=강민석 선임기자

자급자족 농경생활이 자립의 열쇠

이곳에선 자급자족이 생활화돼 있다. 밭에서 직접 키운 고추 마늘 양파 감자 고구마 등이 식탁 위에 오르고 카페 베이커리에서 생산된 건강한 빵도 주식이 돼준다. 모든 과정엔 공동체 전체의 손길이 닿는다. 같이 땀 흘리며 거둔 수확을 나누는 활동 자체가 사회 구성원으로서 스스로 서는 것의 본질이라는 믿음에서다.

“농사를 선택한 이유가 거기에 있습니다. 도시에선 발달장애인들이 할 수 있는 역할이 단순반복 작업으로 한정되기 쉬워요. 그에 비해 농사짓는 일은 훨씬 다양한 역할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역할의 다양성은 자기에게 어떤 임무가 적합한지 확인할 수 있는 기회가 많다는 것이고요. 깨끗한 자연을 누리고 정겨운 이웃과 격 없이 소통할 수 있는 건 덤이죠.”(문 목사)

소통 지향하는 가족공동체

발달장애인들과 삶의 터전을 옮겨 공동체를 이루는 과정에 어려움은 없었을까. 문 목사는 “지금의 캠프힐을 이루기까지 성경 속 ‘광야생활’ 같은 시기를 통과해야 했다”고 회상했다. 발달장애인 대안학교를 운영하던 6년 전, 문 목사는 나무숲이었던 현 부지를 매입해 농장으로 탈바꿈시켰다. 경기도 시흥과 강화도를 수시로 오가며 밭을 갈고 파종하고 닭도 키웠다.

“콩 심고 수확하는 과정을 설명해주시던 주민들 한 분 한 분이 농학박사님 같았어요. 동네 어르신부터 이장님까지 얼굴 맞대고 마음을 트면서 단순히 농사 체험하러 온 게 아니라 정말 이곳에서 같이 살려고 오는 것이란 인식을 심어줄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쏟은 정성 덕분에 캠프힐은 동네 주민들의 따뜻한 축하와 격려 속에 출발선에 설 수 있었다. 서울 강서구에서 장애아동 특수학교 설립을 놓고 극심한 갈등을 빚던 2017년 말이었지만 이곳 진강산 기슭에는 님비(지역이기주의)를 찾아볼 수 없었다. 오히려 영화 음악 책 모임을 갖는 주민들의 사랑방이자 관광객들이 쉬어가는 명소가 됐다. 큰나무 카페 주변엔 울타리 하나 없이 동네 가옥, 논밭과 연결돼 있다. 손 사모는 “수용된 상태로의 고립이 아니라 경계 없는 소통을 지향하는 캠프힐의 본질이 구조와 환경에 담긴 것”이라고 설명했다.

캠프힐 구성원이 카페에서 직접 내린 원두커피를 고객에게 내놓고 있다. 강화=강민석 선임기자

퀄리티가 신뢰·자립의 첫걸음

장애인 일터에서 만드는 ‘착한 제품’을 소비자가 구제의 의미로 구입하는 것이라 생각하면 오산이다. 설탕과 버터를 전혀 넣지 않고 천연발효종으로 건강하게 만든 빵을 맛보기 위해 원근각지에서 큰나무 카페를 찾는다. 정기적으로 빵을 먹고 싶어 하는 이들에겐 신청을 받아 배송도 해준다. 하얀 파티쉐 복장을 하고 주방에서 흑미찹쌀식빵을 만드는 문 목사 곁에 손글씨가 빼곡하게 적힌 빵 레시피책이 보였다. 수년 동안 건강하고 맛 좋은 빵을 연구해 온 결과물이자 보물 1호다.

밭에서 수확한 고구마 들깨 고추 등 지역 주민들에게 판매되던 농작물은 온라인 판매를 앞두고 있다. 최근엔 양봉을 통해 얻은 꿀도 판매대 한편을 당당하게 차지했다. 문 목사는 “장애인 자립을 위해선 경쟁력을 높이고 품질을 인정받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큰나무 캠프힐 구성원들이 일과를 시작하기 전 성경을 묵상하며 교제를 나누고 있다. 강화=강민석 선임기자

신앙 바탕으로 서로의 삶 응원

캠프힐에선 일과를 본격적으로 시작하기 전 빼놓지 않는 시간이 있다. 캠프힐 식구가 한자리에 모여 함께 노래하고 돌아가며 성경을 읽는 시간이다. 이따금 어눌한 발음이 새어 나오고 구절을 읽는 속도도 제각각이지만 말씀에 담긴 의미를 마음에 새기고 하루에 적용해 나가고자 하는 태도는 목회자 못지않게 진지했다.

손 사모는 “책임자에 의해 관리되는 체계가 아니라 구성원 모두가 가족의 일원으로서 삶이 서로를 향하게 하고 스스로 일어서는 과정을 응원해주는 게 캠프힐 운영의 핵심”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캠프힐 같은 공동체 모델도 장애인 자립을 위한 정답은 아니라고 선을 그었다.

문 목사는 “커뮤니티 케어가 주목받으면서 견학을 위해 방문하는 사람들도 많고 규모를 확대하자는 제안도 있다”며 “중요한 건 장애인이 주체적으로 살아갈 수 있는 방식과 선택의 폭이 넓어지는 것”이라고 전했다. 그러면서 “큰나무가 더 커지는 것보다 적당한 그늘이 돼줄 수 있는 나무가 여러 곳에 생겨 지역과 상생하는 게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진정으로 통합할 수 있는 길일 것”이라고 덧붙였다.

강화=최기영 기자 ky710@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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