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널에 갇힌 것처럼 마음의 시야가 좁아졌다. 도무지 빠져나갈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 “정신과 상담을 받아볼까?” “그런 곳을 왜 가. 아이를 보고 참고 살아야지.” 어렵게 꺼낸 말에 남편은 만류했다.

당시 A씨는 남편과의 불화와 경제 문제로 매일 술에 의지해 잠이 들었다. 다른 사람들과도 왕래하지 않고 혼자 집에 갇혀 지냈다. 돈 문제로 친정과도 담을 쌓은 지 오래였다.

그녀는 더 깊은 우울감 속으로 침전됐다. 그렇게 며칠이 흘렀고, 어느 날 ‘오늘은 죽어야겠다’며 혼잣말을 되뇌던 게 마지막 기억이 됐다. 자고 있던 두 아이 목을 차례로 졸랐고, 자신도 목을 맸다. 정신을 차려 보니 기둥이 부러져 있었다. 누워 있는 아이를 보다가 남편에게 문자를 보냈다. “내가 애를 죽였어.” 사건을 담당했던 경찰은 “이때 정신과 치료만 받았더라도 비극은 벌어지지 않았을 텐데…”라며 안타까워했다.

자녀 살해 후 자살 사건에서는 일반 자살 사건에서처럼 가해자 상당수가 ‘우울증’을 겪고 있었다. 마음의 병은 털어놓고 적절한 치료를 받으면 완치가 어렵지 않은 질병이다. 하지만 A씨처럼 주변 사람들이 심각한 상황이라고 인지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치료는커녕 진단조차 받지 못해 자신이 우울증이었다는 사실조차 모르고 범행을 저지르는 것이다.

홍현주 한림대 성심병원 정신의학과 교수는 “사건이 발생한 이후 심리부검이나 사후 조사를 통해 ‘우울증을 겪었구나’ 알지만, 그 당시 본인이나 주변은 우울증을 겪는다는 것을 인식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고 분석했다. 중앙자살예방센터장을 맡고 있는 백종우 경희대 정신의학과 교수는 “가족 중 한 명이 설득을 해 병원이나 센터를 찾아 치료 서비스 안에 들어오게 되면 그 다음 자살률은 높지 않다”며 “우울증만 치료하는 것이 아니라 가족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함께 고민하게 되는데, 외부 도움을 요청하지 않으면 잘못된 선택을 할 가능성이 높아진다”고 지적했다. 제때 치료가 중요한 이유다.

치료를 중단하면서 우울증이 재발해 비극을 맞는 경우도 있었다. B씨는 첫째를 낳은 뒤 심한 산후우울증을 겪었고, 한 달간 입원 치료를 받았다. 집중 치료를 받으며 상태가 호전됐다고 여긴 가족들과 B씨는 치료를 중단했다. B씨가 정신과 치료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강하게 거부한 것도 치료 중단의 원인이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B씨는 둘째를 임신했다. 그러나 둘째를 출산하면서 B씨의 우울증은 재발했다. 남편이 잠시 쓰레기를 버리며 자리를 비운 25분, 그 사이 B씨는 아이들을 살해하고 자신도 목숨을 끊으려 했다. 경찰은 “범행 직후 진단을 해 보니 우울증 정도가 심해 ‘자해 우려가 매우 높다’는 소견이 나왔을 정도”라며 “꾸준히 치료를 받았다면 발생하지 않았을 일이어서 아이들의 죽음이 더 안타깝다”고 말했다.

김유나 기자 spri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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