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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재 기자 성기철의 수다] 조국한테 양심이란 게 있었다면


선악 구분 의지와 염치는 커녕 속임수 오만 무치로 갈등 조장
양심부재 현상 확산됐을 수도… 진작에 가족이나 챙길 것이지


‘언제나 어디서나 양심과 정의와 사랑에 살자’. 내가 졸업한 고등학교 교훈이다. 초등학교, 중학교, 대학교 교훈은 퍼뜩 떠오르지 않지만 고등학교 이 교훈은 뇌리에 꽉 박혀 있다. 재학시절 교훈 좋다고 주변에 자랑하고 다닐 정도였다. 그 나이에 양심, 정의, 사랑의 깊은 뜻을 제대로 이해했을 리 만무할진대 꽤나 멋있게 비쳐졌던 모양이다.

검찰 고위직을 지낸 선배는 교훈을 자신의 인생 좌우명으로 삼았으며, 꽤 여러 명의 동문이 가훈으로 정했다는 얘길 듣고 있다. 나이 들면서 기독재단 학교에서 왜 양심을 사랑에 앞세웠을까 가끔씩 생각해 본다. 하나님의 정의,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보다 인간 양심의 가치가 더 중요하단 말인가.

양심의 사전적 의미는 ‘사물의 가치를 변별하고 자신의 행위에 대해 옳고 그름과 선과 악의 판단을 내리는 도덕적 의식’(표준국어대사전)이다. 기독교에서는 ‘하나님의 뜻을 통찰하고 죄를 책망하며 선을 추구하려는 능력’(라이프성경사전)을 뜻한다. 양심의 영어 표현 ‘conscience’의 그리스어나 라틴어 유래를 보면 ‘함께 앎’ 혹은 ‘공통의 깨달음’이다. 민족이나 국가 종교 언어와 상관없이 공동체 구성원 전체가 옳다고 느끼는 생각을 가리킨다고 볼 수 있겠다.

우리나라 헌법(제19조)은 ‘모든 국민은 양심의 자유를 가진다’고 규정하고 있다. 국민 행복을 보장하는데 개인의 양심을 지켜주는 게 매우 중요하다고 판단하기 때문일 것이다. 헌법재판소는 헌법이 보장하려는 양심에 대해 ‘어떠한 일의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데 있어 그렇게 행동하지 아니하고서는 자신의 인격적 존재가치가 허물어지고 말 것이라는 강력하고 진지한 마음의 소리’라고 정의했다.

사전적 의미가 무엇이든, 헌법이 어떻게 규정하든 나는 양심을 ‘염치를 갖춘 정직한 마음’이라 생각한다. 염치, 즉 체면과 부끄러움도 없이 남을 속이려 드는 마음은 당연히 비양심이겠다. 보통의 인간이라면 보편적 도덕에서 벗어난 자신의 속임수를 체면 때문에 부끄럽게 여기는 게 정상이다.

우리나라 사람은 양심적인 편일까. 그렇지 않은 편일까. 내가 감당하기에 다소 어려운 질문이긴 하다. 하지만 나는 우리나라에 유달리 사기사건이 많다는 점 하나만으로도 양심적인 편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우리나라 연간 사기사건은 무려 24만건에 이른다. 2분 만에 1건씩 발생하며, 이는 인구 대비로 미국 일본 등 선진 외국의 10~100배 높은 수준이란다.

사기죄는 사람을 속여 재물을 얻거나 재산상의 이익을 취득하는 범죄이다. 속이는 것, 즉 기망(欺罔)이 핵심 구성 요소이다. 돈 떼먹은 사람 잡아 처벌해달라는 고소·고발이 하도 많아 검경이 골치를 앓고 있다. 사기사건이 많은 것과 관련, 수사 검사들 얘길 들어보면 처벌 형량이 약해서 그렇기도 하지만 자신의 양심을 속이는 사람이 의외로 많기 때문이란다.

양심 속이는 사람이 왜 그렇게 많을까. 그 이유를 나는 성장기 새치기와 커닝 경험에서 찾는다. 중고등학생들이 주로 찾는 공공도서관에 가보면 뒤늦게 도착해 눈속임 새치기로 먼저 입장하는 몰염치한 모습을 자주 발견하게 된다. 지성의 전당이라는 대학에선 중간시험이나 기말시험 때 예상 답안을 책상이나 벽에 몰래 적었다 베끼는 커닝이 심심찮게 이루어진다. 이들이 어른이 되어 사기 행각을 벌인들 양심의 가책이나 느끼겠는가.

사기 범죄로까지 곧잘 변질되는 인간의 비양심은 개인적, 사회적 학습 효과로 인해 증폭 확산되는 속성이 있다. 아메리카 인디언 사회에 이런 얘기가 전해 내려온다. 그들은 양심을 마음속 삼각형이라 생각한다. 양심에 반하는 행위를 하면 삼각형이 돌아가며 쿡쿡 찌르는 바람에 마음을 아프게 한다. 그러나 삼각형이 계속 돌아가다 보면 모서리가 무뎌져 나중에는 아프지 않게 된다는 비유다.

한 달 이상 온 나라를 분열과 갈등의 도가니에 몰아넣었던 조국 사태가 알게 모르게 우리 사회의 ‘양심 부재’ 현상을 확산시켰을 것 같다. 검찰 수사와 언론 보도를 통해 확인된 조 전 법무장관과 그 가족의 속임수는 보통 사람들의 양심에서 크게 벗어난 수준이다. 여러 편법으로 스펙을 쌓아 입시에 활용한 것은 누가 봐도 기망 행위이다. 공정과 정의에 반하는 사람이 입만 열면 검찰 개혁을 부르짖어 국민들을 짜증스럽게 했다. 대학교수들과 젊은이들이 분노하고 반발한 이유다.

염치가 없다는 사실은 사람들을 더 분노케 했다. 보통의 양심을 가졌다면 청문회 직후 장관 임명 때 사양했어야 했다. 기회를 놓쳤다면 광화문과 서초동에서 집회가 시작될 즈음 백배사죄하고 물러났어야 했다. 과거 자신의 위선적 언행이 부지기수로 드러났기에 더 말할 필요도 없다. 장관직을 불명예 사퇴하면서까지 검찰 개혁을 말하고, 아내 건강문제를 거론한 것도 염치없음의 단면이다.

조 장관과 정반대의 길을 택한 사람이 있다. 정치 비사 한 토막. 모 야당 비례대표 국회의원이 정치 9단 총재 마음에 쏙 들었던 모양이다. 총재가 차기 총선 때 지역구에 출마할 것을 권했다. “고향이든 수도권이든 원하는 곳 찍기만 하세요. 어디라도 공천할 테니 당선돼서 나를 계속 도와주세요”.

하지만 그는 선출직에 자신 없다며 극구 사양했다. 임기 마치고 국회를 떠날 때 총재가 불출마 이유를 다시 물어봤다. 대답은 상식 수준의 양심이었다. “총재님 제게 부끄러운 이력이 있습니다. 혼외 자식이 하나 있거든요. 선거 과정에서 이 사실이 알려지면 아이한테 상처가 될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제 양심이 출마를 허용하지 않았습니다.”

성기철 경영전략실장 겸 논설위원 kcsu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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