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년간 미제였던 화성연쇄살인사건의 진범이 특정되면서 다른 미제사건들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사진은 왼쪽 상단부터 시계방향으로 ‘아산 갱티고개 살인사건’의 진범 중 한 사람이 피해자 카드로 돈을 인출하는 CCTV 장면, ‘용인 교수 부인 살인사건’의 범인이 현장검증을 하는 모습, 화성사건이 발생한 위치를 그려둔 지도, 경찰이 화성 5차 사건 현장을 살펴보는 모습, ‘약촌오거리 택시기사 살인사건’의 진범이 전주지검으로 압송되는 모습, 1992년 ‘개구리소년 찾기’ 캠페인이 진행되던 모습이다. 연합뉴스·뉴시스

“미치도록 잡고 싶었던” 화성연쇄살인사건의 피의자로 이춘재(56)가 지난 14일 정식 입건됐다. 그러나 마지막 살인의 공소시효마저 2006년 만료된 지금, 현행 법체계 내에서 이춘재를 단죄할 길은 이미 사라졌다.

안타까운 일이지만 우리 사회에 진전이 없었던 건 아니다. 2015년 7월 시행된 일명 ‘태완이법’(살인죄 공소시효 폐지법) 덕에 오랜 미제사건의 진범이 처벌받는 경우가 속속 나오고 있다. 공소시효 폐지 후 진범을 잡은 사건은 최근까지 7건이다. 무죄를 받은 경우는 제외했다.

결국은 DNA

이춘재는 1994년 처제를 성폭행·살해한 혐의로 1995년 10월부터 부산교도소에서 무기수로 복역 중이다. 그러던 중 화성연쇄살인사건 증거물 속 DNA와 이춘재의 것이 일치하면서 용의자로 특정됐다. 이와 비슷한 방법으로 ‘나주 드들강 여고생 살인사건’과 ‘대구 노래방 여주인 살인사건’의 진범이 붙잡혔다.

2001년 2월 전남 나주 드들강 유역에서 박모(당시 17세)양의 시신이 발견됐다. 수사당국은 범인의 DNA를 확보했으나 일치하는 용의자를 찾지 못했다. 그러다 2012년 대검찰청 유전자 감식 결과 이 DNA가 다른 사건으로 복역 중인 무기수 김모(42)씨의 DNA와 일치하면서 반전을 맞았다. 재수사에 나선 경찰은 사건 당일 박양과 김씨의 채팅사이트 접속 기록을 발견했다. 또 ‘합의하에 성관계를 맺었고 살해는 하지 않았다’는 김씨의 주장과 달리 “박양의 생리혈과 김씨의 정액이 섞이지 않은 것은 성관계 후 바로 살해된 탓”이라는 법의학자 분석이 나와 김씨의 살인 정황이 드러났다. 김씨는 2017년 12월 무기징역을 확정받았다.

2004년 6월 대구 북구의 한 노래방에서는 여주인(당시 44세)이 흉기에 찔려 살해됐다. 수사당국은 13년간 용의자조차 특정하지 못했다. 그러던 2017년 11월, 대구 중구에서 길 가던 여성을 둔기로 때리고 가방을 뺏으려던 A씨(49)가 경찰에 붙잡혔다. 경찰은 현장에서 수거한 담배꽁초에서 A씨 DNA를 검출했고, 13년 전 살인사건 용의자의 DNA와 일치한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A씨는 2009년 대구 수성구에서도 노래방 여주인(당시 47세)을 살해했고, 결국 2명을 살해한 강도살인 등의 혐의로 지난해 11월 항소심에서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

언젠가는 잡힌다

태완이법은 경찰이 미제사건들을 다시 들춰보는 계기를 만들었다. 과거 실마리도 찾지 못했던 사건의 매듭이 하나둘 풀렸고, 네 건의 사건이 해결됐다.

‘용인 교수 부인 살인사건’은 태완이법 이후 처음 유죄확정 판결이 나온 사건이다. 2001년 6월 경기도 용인에 위치한 대학교수 심모(당시 55세)씨의 자택에 괴한이 침입해 아내 이모(당시 54세)씨를 흉기로 찔러 살해했다. 심씨는 중상을 입었다. 단서를 잡지 못해 14년간 미제였던 사건은 태완이법이 시행되면서 전환점을 맞는다. 재수사에 착수한 경찰은 당시 김모(55)씨의 진술이 엇갈린 점에 주목했고, 김씨가 사건 현장 근처에서 공범인 또 다른 김모(사망당시 52세)씨와 통화한 것을 확인했다. 추적 결과 두 사람은 교도소 동기로 드러났다. 경찰의 출석요구서를 받은 공범 김씨는 출석 전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김씨에게는 2017년 11월 무기징역이 확정됐다.

사건 당시 기술력의 한계로 용의자를 특정하지 못했던 미제사건이 태완이법을 계기로 재수사에 착수해 진범이 드러나기도 했다. ‘구로구 호프집 여주인 살인사건’과 ‘원주 다방 여주인 살인사건’에서는 현장에서 채취해뒀던 쪽지문을 공소시효 폐지 이후 재감식해 범인을 잡았다. 구로구 살인사건은 15년, 원주 살인사건은 14년 만에 피해자의 원한을 풀었다.

‘아산 갱티고개 살인사건’에는 프로파일러가 투입됐다. 돈이 궁했던 두 남성은 평소 알고 지내던 노래방 여주인을 살해하고 충남 아산 갱티고개에 유기한 뒤 피해자 카드에서 195만원을 인출했다. 15년간 미제였던 이 사건은 수사기록을 재검토한 뒤 CCTV 속 복면의 남성 2명을 검거하는 데 성공했다. 두 사람은 지난해 무기징역을 확정받았다.

16년 만에 누명 벗은 소년

태완이는 16년간 누명을 쓴 소년의 한도 풀어줬다. 영화 ‘재심’의 실제 사건으로 잘 알려진 ‘약촌오거리 택시기사 살인사건’은 공소시효 만료 직전 태완이법이 시행돼 재심이 가능해졌고, 10년 옥살이 후 만기출소한 최모(35)씨는 무죄 판결을 받을 수 있었다.

목격자였음에도 진범으로 몰려 옥살이를 했던 최씨는 2000년 8월 10일 사건이 벌어졌을 당시 16세 소년이었다. 강압수사로 허위진술을 했던 최씨가 수감된 지 3년째 되던 해 경찰은 “진범이 따로 있다”는 첩보를 입수하고 재수사에 돌입했다. 그렇게 진범 김모(39)씨가 붙잡혔다. 하지만 김씨의 자백에도 검찰은 증거부족을 이유로 구속영장을 계속 기각했다.

시간이 흘러 최씨는 만기출소했고 2013년 재심을 청구했다. 하지만 검찰이 대법원에 항고하면서 사건의 공소시효는 끝나가고 있었다. 그러던 중 태완이법 시행으로 공소시효가 폐지됐고, 16년 누명을 썼던 최씨는 결국 무죄 판결을 받아냈다. 진범 김씨는 지난해 징역 15년을 확정받았다.

제2의 이춘재 찾을까

진범을 찾은 7건과 달리 3대 미제사건은 진범을 찾더라도 처벌이 불가능하다. 태완이법의 적용을 받지 않는 2000년 8월 이전 사건이기 때문이다. 화성연쇄살인과 개구리소년실종, 이형호군 유괴살인 사건이다. 국민 분노가 커지자 국회는 최근 ‘화성연쇄살인사건 공소시효 적용 배제에 관한 특별법’을 발의했다.

하지만 공소시효 폐지 소급적용이나 특별법을 통한 처벌을 두고 전문가 의견은 분분하다. 김성룡 경북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소급 입법으로 공소시효를 없애 처벌하는 방법도 막혀 있진 않다. (특별법 제정도) 국민 다수가 원한다면 가능하다고 본다”며 “법은 절대적이지 않기 때문에 논의를 통해 합리적인 방법을 찾는 것도 필요하다”고 찬성 의사를 밝혔다. 다만 향후에도 일관되게 적용할 수 있는 원칙은 세워야 한다고 덧붙였다.

반면 오윤성 순천향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공소시효가 끝난 사건을 처벌하려면 특별법을 만들어 소급 입법해 처벌해야 하는데 그건 법정신에 맞지 않는다. 법을 집행하기 위해 법을 무시해야 하는 상황이 되는 것”이라며 “그럼에도 미제사건에 대한 수사는 계속 이뤄져야 한다. 실체적 진실을 밝히는 건 국가의 책무인 만큼 처벌 여부와 관계없이 진실은 밝혀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진영 기자 you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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