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예배 365-10월 19일] 잃어버린 것을 찾는 기쁨


찬송 : ‘나 주를 멀리 떠났다’ 273장(통 331장)

신앙고백 : 사도신경

본문 : 누가복음 15장 1~32절

말씀 : 우리나라 곳곳에 분실물 센터가 설치되어 있고 잘 운영되고 있습니다. 물건을 잃어버린 사람의 심정은 잃어버린 사람만이 알 수 있을 겁니다. 물건을 다시 찾았을 때의 기쁨 역시 말할 수 없이 좋습니다. 하지만 잃어버린 것을 찾기보다 새 제품을 다시 구입하는 사람들이 많아 분실물 센터의 물건들을 폐기하는 때도 있다고 합니다. 어딘가 씁쓸합니다.

본문엔 잃어버림에 대한 비유가 3가지나 됩니다. 첫째는 잃은 양을 찾은 목자의 비유, 둘째는 잃은 드라크마를 찾은 여인의 비유, 셋째는 잃은 아들을 되찾은 아버지의 비유입니다. 모두 잃어버렸다가 찾은 이야기인데 앞의 두 비유는 잃은 것을 찾는 적극성을 보여줍니다. “찾아내기까지 찾아다니지 아니하겠느냐.”(4절) “부지런히 찾지 아니하겠느냐.”(8절) 반면에 세 번째 비유는 잃어버린 아들이 스스로 돌이켜 아버지께로 돌아가는 것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아들을 보자마자 버선발로 달려오는 아버지의 모습은 코끝을 찡하게 만듭니다. 아버지는 아들이 집을 나간 순간부터 대문도 잠그지 않고 아들이 오기를 기다렸을 것입니다. 앞의 두 비유보다 더 큰 울림을 줍니다. 기다림의 적극성이랄 수 있습니다.

이 비유는 1~2절에 나온 이들 때문에 시작되었습니다. 예수님이 모든 세리와 죄인을 영접하며 그들과 함께 먹고 마시는 모습을 본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수군거리며 예수님을 비방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영접한 이들은 결코 같이할 수 없는 죄인들입니다. 하지만 주님은 그들을 영접하였습니다. 그들과 함께 먹고 마셨습니다. 주님께는 그들이 잃었다 다시 찾은 자들이었습니다.

그러나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은 몹시 못마땅했습니다. 마치 돌아온 탕자의 형과 같은 모습입니다. 탕자의 형은 허랑방탕한 동생이 돌아온 것도 못마땅했고, 그런 동생을 아들로 다시 받아준 것도 모자라 잔치까지 벌이는 아버지는 더욱더 못마땅했습니다. 그런 큰아들을 위해 아버지가 타이릅니다. “아버지가 이르되 얘 너는 항상 나와 함께 있으니 내 것이 다 네 것이로되 이 네 동생은 죽었다가 살아났으며 내가 잃었다가 얻었기로 우리가 즐거워하고 기뻐하는 것이 마땅하다 하니라.”(31~32절)

그런데 이후 형의 대답이 없습니다. 동생을 받아들인다는 것인지, 모른 척한다는 것인지, 그렇다고 바리새인과 서기관의 반응도 없습니다. 이 이야기는 독자들에게 공을 넘깁니다. 당신은 과연 이 둘째 아들을 영접할 것인지 아니면 모른 척하고 수군거릴 것인지 말입니다. 주님은 잃었다가 얻은 이로 인해 기뻐하는 것이 마땅하다 하십니다. 주님의 마음을 품기 바랍니다.

기도 : 사랑의 주님, 잃은 것을 다시 찾았을 때는 마냥 기쁘고 즐거운 줄로만 알았는데, 탕자의 형은 전혀 기쁨이 없었습니다. 죄인을 영접한 주님을 보고 바리새인과 서기관은 못마땅해합니다. 주님은 모두를 주님의 것으로 여기시기에 잃으셨다 하시는데, 우리는 왜 잃었다는 마음이 생기지 않는 걸까요. 저도 모르게 바리새인과 서기관의 마음을 품고 있는 것 같습니다. 주님 제가 먼저 죄인임을 깨닫게 하옵소서. 저를 받으신 주님의 마음을 품게 하시고, 저도 잃은 영혼을 다시 찾을 때 누구보다 기뻐할 수 있는 마음을 가지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주기도문

조춘성 목사(공주 상서감리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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