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박종순 (17) 선거운동 없이 기도로만… 부총회장에 당선

주변에서 부총회장 선거 출마 권유… 전국 교회 위해 봉사할 기회라 생각

박종순 목사(오른쪽)가 1996년 9월 13일 서울 소망교회에서 열린 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 81회 총회에서 총회장에 취임하고 있다.

총회장이 되기 전, 총회에서 봉사한 경험이 많지 않았다. 이단대책위원장과 전도부장이 총회 경력의 대부분이었다. 총회장이 되기 위해 반드시 거쳐야 한다는 총회 임원도 하지 않았다. 정치적 계보가 없었기 때문에 어떤 총회장도 임원회를 구성할 때 나를 찾지 않았다.

총회장이 되겠다는 꿈이 없었기 때문에 그에 필요한 경력을 쌓을 필요도 없었다. 교회는 안정됐고 성장했다. 총회 활동 대신 전국 교회를 찾아 말씀을 전하는 데 힘썼다. 가보지 않은 지역이 없을 정도로 전국을 누볐다.

그러던 중 주변에서 부총회장 선거에 나가보라는 권유가 이어졌다. 내가 속한 대한예수교장로회(예장) 통합 총회는 선거를 통해 부총회장에 당선되면 이듬해 총회 총대들의 추대를 받아 자동으로 총회장이 됐다. 총회장이 되기 위해서는 부총회장 선거만 거치면 되는 것이었다.

1500명의 총회대의원들이 부총회장 선거의 유권자다. 전국 교회를 대표해 투표권을 행사하는 분들이다. 선거는 선거다. 선거운동을 반드시 해야 했다. 전국 총대들에게 나를 소개해야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애초에 총회장이 되고 싶은 마음이 없었기 때문에 딱히 선거운동까지 해 가면서 선거전에 뛰어들고 싶지 않았다.

그래도 전국 교회를 위해 봉사할 기회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를 추대한 분들께 분명히 말씀드렸다. “전국을 순회하는 선거운동은 할 수 없습니다. 교회를 비우고 선거운동을 할 수는 없습니다. 다만 기도로 선거운동을 하겠습니다. 이렇게 해도 된다면 부총회장에 도전해 보겠습니다.”

좀 황당한 제안이었다. 선거운동을 하지 않고 부총회장 선거전에 뛰어든다니, 내게 권유하셨던 분들도 당황하셨을 것이다. 그래도 나를 믿고 지지해 주셨다.

본격 선거전이 시작됐다. 나보다 학식이나 교회 규모 등 모든 면에서 뛰어났던 목사님과 경선을 해야 했다. 부담은 컸다. 하지만 내심 ‘나는 이미 선거운동을 했다’고 여겼다. 전국 교회로부터 부흥회 강사로 초청받은 일이 많았다. 실제 교회들을 방문해 보니 형편이 어려워 보였다. 그래서 강사 사례비를 받으면 교회에 반환했다. 교회 형편에 따라 목적 헌금을 했다. ‘건축 헌금’ ‘목회자 자녀 장학금’ 등 명목으로 모두 교회에 돌려 드렸다.

나는 지역교회를 이렇게 도운 게 선거운동이라고 생각했다. 고맙게도 지역에 있는 선후배 목사님들이 “걱정하지 말아라. 이 지역은 내가 맡겠다”는 연락을 해 주셨다. 대가를 기대하고 한 말이 아니었다. 선의였다.

결전의 장소는 서울 명성교회, 1995년 9월 21일이었다. 예장통합 제80회 총회가 열린 날이었다. 나는 교인들에게 총회 장소에 와 나를 대신해 총대들에게 인사해 달라는 부탁도 하지 않았다. 대신 홀로 기도했다. 명성교회에 부탁해 작은 방 하나를 빌렸다. 그곳에서 점심도 배달해 먹으면서 기도했다.

선거가 시작됐고 2~3시간쯤 지나 결과가 발표됐다. 내가 부총회장에 당선됐다. 기적적인 일이 벌어진 것이었다. 내 나이 55세 때였다. 역대 총회장 중 서울 지역 교회 목사로는 가장 젊은 부총회장이 탄생한 순간이었다.

당시 총회장은 정복량 목사님이셨다. 덕장이셨다. 정 목사님을 모시고 드디어 부총회장의 직임을 수행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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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리=장창일 기자 jangci@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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