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백마를 타고 첫눈이 내린 백두산을 달리고 있다. 김 위원장 여동생 김여정 노동당 제1부부장이 말을 탄 채 뒤따르고 있다. 조선중앙통신이 16일 공개한 사진이다. 김 위원장은 백두산 인근 삼지연군에서 “미국을 위수로 하는 반공화국 적대세력들이 강요해온 고통은 이제 우리 인민의 분노로 변했다”고 말했다. 연합뉴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과거 중요한 정치·외교적 결정을 앞두고 찾았던 백두산을 다시 올라 미국을 강하게 비판했다. 지난 2월 ‘하노이 노딜’ 이후 8개월째 북·미 비핵화 협상이 교착된 가운데 김 위원장이 미국을 향해 ‘최후통첩’을 보내려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노동신문과 조선중앙통신은 16일 “김 위원장이 백두의 첫눈을 맞으며 몸소 백마를 타고 백두산정에 올랐다”며 “동행한 일꾼들은 김 위원장이 백두령봉에서 보낸 위대한 사색의 순간을 목격했다”고 보도했다. 또 “동행한 일꾼들은 우리 혁명이 한 걸음 전진될 웅대한 작전이 펼쳐질 것이라는 확신을 받았다”고 전했다.

김 위원장의 ‘위대한 사색’과 ‘웅대한 작전’의 내용이 무엇인지에 관심이 쏠린다. 백두산을 포함하는 삼지연군은 김일성 주석의 ‘혁명활동 성지’로 선전돼온 곳이다. 이 때문에 김 위원장이 중대한 결정을 구상하는 무대로 이곳을 자주 활용했다. 고모부 장성택을 처형하기 직전인 2013년 2월, 김정일 국방위원장 3주기 탈상을 앞둔 2014년 11월, 한반도 정세 변화가 시작되기 직전인 2017년 12월에 백두산에 올랐다.

김 위원장은 이번에 다시 백두산과 삼지연을 찾았다. 김 위원장은 삼지연 건설 현장에서 “지금 나라의 형편은 적대세력들의 집요한 제재와 압살 책동으로 의연 어렵고 우리 앞에는 난관도 시련도 많다”며 “미국을 위수로 하는 적대세력들이 우리 인민 앞에 강요해온 고통은 이제 더는 고통이 아니라 우리 인민의 분노로 변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적들이 우리를 압박의 쇠사슬로 숨 조이기 하려 들면 들수록 자력갱생의 위대한 정신을 기치로 들고 보란 듯이 우리의 힘으로 앞길을 헤치고 계속 잘살아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민생 현장을 시찰하면서 이례적으로 미국을 직접 비난한 것이다. 미국의 제재에 굴하지 않고 강경 대응하겠다는 의지가 담겨 있다.

‘위대한 사색’과 ‘웅대한 작전’에 대해 북한 매체가 설명하지는 않았지만, 핵실험 및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발사시험을 재개하려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최근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미국과의 실무협상에 나섰던 김명길 북한 외무성 순회대사는 협상이 결렬된 뒤 핵실험 및 ICBM 발사시험 중단 조치를 철회할 가능성을 내비친 바 있다.

이날 북한은 한·미 해병대 연합훈련도 강력 비난했다. 조선중앙통신은 논평을 통해 “우리 공화국을 힘으로 압살하려는 미국과 남조선 당국의 침략적 목적은 변함이 없다. 상대방을 겨냥한 위험천만한 침략전쟁 훈련이 계획되고 있는 속에서 대화와 평화를 논할 수 있겠느냐”고 주장했다.

최고지도자가 백마를 타고 민족의 영산에 올라 사색하는 장면을 대대적으로 보도한 것은 내부 민심을 다독이려는 목적도 있다. 북한은 올해 잦은 자연재해로 식량난이 가중된 데다 아프리카돼지열병(ASF)이 전국적으로 발생해 내부 불만이 팽배한 것으로 알려졌다. 국가정보원은 최근 국회에 “평안북도의 돼지가 전멸했고 돼지고기가 있는 집이 없다는 불평이 나올 정도”라고 보고했다.

전직 통일부 고위 당국자는 김 위원장의 백두산 방문에 대해 “인민들에게 현재 상황이 어렵다는 것을 우회적으로 드러내면서 조금 더 버티자는 결기를 드러낸 것”이라며 “인민을 장악하고 단합시켜야 할 필요에 따른 연출”이라고 평가했다.

최승욱 손재호 기자 applesu@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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