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박종순 (18) 총회장 취임 후 개혁 위한 컨설팅 맡겼는데…

총대 박수 받으며 추대 책임감 막중… 컨설팅 보고서 나왔지만 이듬해 사장 두고두고 아쉬워

박종순 목사(오른쪽)가 1996년 9월 13일 서울 소망교회에서 열린 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 제81회 총회에서 총회장에 취임하며 최영자 사모와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1995년 9월 26일 대한예수교장로회(예장) 통합 제80회 정기총회가 막을 내렸다. 부총회장은 총회장만 잘 보필하면 된다. 1년 동안 총회장의 직무를 배우는 기간이다. 부총회장이 나설 일은 없다. 정복량 총회장 옆에서 도움을 드렸던 시간이었다.

나는 96년 9월 12일 서울 소망교회에서 열린 예장통합 제81회 정기총회에서 총회 대의원(총대)들의 박수를 받으며 총회장에 추대됐다. 총회는 오후 2시에 개회한다. 총회장을 비롯해 총회 임원들과 본부 직원들이 성경과 헌법, 총회 깃발을 앞세우고 입장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입장을 기다리며 예배당을 둘러봤다. 소망교회 예배당은 천장이 높다. 윗부분에는 큰 유리창이 있었다. 오후의 햇살이 밝게 비쳤다. 1500명의 총대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 걸음을 내디딜 때마다 심장 뛰는 소리가 점점 크게 들렸다. 무거운 책임감이 날 누르고 있었다.

개회예배가 끝나고 회무가 시작됐다. 첫날에는 부총회장 선거가 진행된다. 81회기 부총회장은 청주 복대교회 민병억 목사가 선출됐다. 저녁 식사를 한 뒤 총회장 이취임식이 진행됐다. 이때까지는 축제다. 새 총회장과 부총회장을 축하하는 잔치인 셈이다.

본격적인 회의는 둘째 날부터였다. 아침 기도회가 끝나자 분위기가 냉랭해졌다. 전투 전야의 긴장감이 돌았다. 나는 경력이나 경험이 짧았다. 당연히 회무처리가 서툴렀다. 전국에서 모인 총대 중에는 별 사람들이 다 있었다. 총회 참석 자체에 의미를 두는 총대부터 뭔가 작심하고 이를 갈고 있는 총대, 법률 전문가를 자처해 교단 헌법 책에 밑줄을 치며 벼르는 총대, 안건토의 때마다 ‘회장’을 외치며 발언권을 요구하는 총대….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이 다양한 총대들이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이미 15명이 총회를 좌지우지한다는 걸 알고 왔다. 총대 중 1%가 총회 분위기를 쥐고 흔드는 셈이었다. 이분들이 여기저기서 발언을 요청하는데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정신을 바짝 차리지 않으면 안건토의의 흐름을 놓치기 일쑤였다.

이분들의 발언은 마치 무슨 사명을 받은 것처럼 절박했고 날카로웠다. 날이 선 발언은 반드시 상대가 있었다. 일격을 당한 상대도 가만히 있질 않았다. 예장통합 총회는 총대들에게 발언 시간을 3분 동안 준 뒤 마이크를 끈다. 하지만 이분들은 신경 쓰지 않았다. 마이크는 꺼졌지만 육성으로 주장을 펼쳤다. 목소리가 어찌나 큰지 넓은 예배당을 갈랐다.

기도했다. ‘주님, 저들의 마음을 만져주시고 절 지켜주소서.’ 힘겹게 이어지던 총회가 어느덧 폐회를 향했다. 어떻게 지났는지 지금 생각해도 아찔하다. 장로교 총회장은 정기총회 진행을 잘해야 한다. 영어로 총회장이 ‘마더레이터’(moderator) 아닌가. 분쟁의 조정자나 토론의 사회자라는 의미다. 이 역할에 충실하기 위해 무던히 애썼던 시간이었다.

정기총회가 끝나자 ‘박종순 총회장’의 임기가 시작됐다. 늘 궁금했던 게 있었다. 과연 예장통합 총회의 현주소가 어디인가였다. 현실을 알아야 미래 청사진도 그릴 수 있지 않은가. 한국생산성본부에 의뢰해 총회 컨설팅을 했다. 임기 중 컨설팅 보고서가 나왔다. 총회 개혁을 위한 지도나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교회들은 변화를 싫어했다. 이듬해 총회 때 보고 과정에서 보고서가 사장됐다. 무척 아쉬운 일이다. 그때 보고서를 바탕으로 총회 개혁을 위한 로드맵을 그렸다면 어땠을까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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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리=장창일 기자 jangci@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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