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국적 취득을 위한 법적 절차를 진행하기 위해 방한한 라이따이한 일행이 17일 숙소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강경수, 정우근, 김상일, 안도남,김영희, 김상일씨의 어머니 쩐티응아이, 쩐티응옥지옙, 응웬티투우옌씨의 남편.

“우리가 누구의 자손인지, 대답을 해 달라는 겁니다. 우리가 개나 소의 자식입니까?”

서울 강서구의 한 호텔에서 20일 국민일보 기자와 만난 라이따이한 김상일(50·베트남 이름 다이낫트란)씨는 잔뜩 흥분해 있었다. “전두환 대통령 때부터 한국 대통령이 바뀔 때마다 30년 동안 청와대에 물어봤지만 아무도 답해주지 않았어요. 국회에도, 언론사에도 편지를 보냈지만 답이 없었어요. 우리는 누구에게 물어봐야 합니까.”

김씨와 그의 어머니를 포함한 라이따이한 일행 8명은 지난 17일 방한 첫 일정으로 서울 마포구 박정희기념관을 찾았다. 누구에게도 듣지못한 답을 베트남 파병 결정자인 박 전 대통령의 영혼에게라도 묻겠다는 의미였다. 김씨는 “이 자리가 문제의 시작점이기 때문에 박정희기념관을 방문했다”면서 “한국에서 책임 있는 답을 들을 때까지 계속해서 이곳을 찾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중 7명은 방한 못한 라이따이한 5명과 함께 한국 국적을 얻기 위해 법적 절차를 진행할 계획이다. 사건을 맡은 박종돈 변호사는 “집단으로 라이따이한들이 국적 취득을 위해 법적 행동을 취하는 건 이번이 처음”이라고 말했다.

라이따이한은 베트남전 파병 한국군 병사와 현지 베트남 여성 사이에 태어난 2세를 부르는 말이다. 미국 호주 등 참전한 다른 국가 남성의 2세들은 대부분 아버지 나라 국적을 얻었지만 라이따이한은 베트남에 남아 사회적 모멸을 견뎌야 했다. 파병 한국군 출신으로 이들을 도와온 윤휘남 목사는 “당시 국내 경제상황 상 개인이 자손을 찾는 일 자체가 쉽지 않았다”고 말했다.

현지에는 한국군 병사 외에도 전쟁 당시 베트남에 있던 사업가와 기술자 등 다양한 직종 남성의 자손들이 아버지를 찾지 못한 채 남아 있다. 이 중 소수는 1992년 국교 정상화 뒤 아버지와 재회했지만 금세 연락이 끊어졌다. 일행 중에는 부모가 모두 한국인이지만 베트남에서 태어나 버려진 채 장성한 경우도 있다.

김씨에게는 다른 한국인 아버지를 둔 누이 둘이 있다. 모두 어머니가 강제로 맺은 관계에서 낳은 자식이다. 김씨는 약 15년 전부터 사이공 현지에서 직접 자신 같은 라이따이한을 수소문해 500여명을 모았다. 함께 한국어를 배우고 국적 취득을 위한 공부도 했다. 돈을 모아 라이따이한 자손들에게 장학금을 지급하기도 했다.

이들에게 한국 국적 취득은 무엇보다 ‘정체성’의 문제다. 김씨와 방한한 라이따이한 김영희(48·베트남 이름 응웬윈티탄킴)씨는 “어릴 적 한국 축구대표팀이 경기를 하면 나도 모르게 응원했다. 친구들이 왜 너를 버린 사람의 나라를 응원하느냐고 나무랐지만 어쩔 수 없었다”면서 울먹였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해 3월 베트남전 참전과 관련해 베트남 정부에 포괄적 사과를 했지만 라이따이한에게는 공허한 얘기다. 현지 관계자는 “월남 지역의 피해 민간인들에게는 현재 베트남 정부 역시 가해자에 가깝다. 한국 정부가 베트남 정부에 사과를 해도 별 의미가 없다”면서 “외교적 제스처뿐 아니라 피해자 파악을 위해 실질적인 조치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들이 한국에서 법적 절차를 밟더라도 국적을 취득할 가능성은 높지 않다. 박 변호사는 “아버지가 누군지 특정되지 않는다면 소송 자체를 제기하기가 어렵다”면서 “시간이 흘러 아버지가 사망했을 경우도 한국의 친족들이 라이따이한을 인정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라 힘든 과정을 거쳐야 한다”고 말했다.

글·사진=조효석 기자 promen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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