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마란 하지즈. 그를 만났을 때 나이가 서른아홉이었으니 이제 쉰둘쯤 되었을 것이다. 그는 직접 만난, 이름을 아는 유일한 쿠르드족이다. 사진첩에는 쿠르드족을 찍은 사진이 꽤 있고, 쿠르드족과 함께 찍은 사진도 몇 장 있다. 환한 표정의 아이들과 같이 찍은 사진을 볼 때마다 슬그머니 웃음을 짓게 된다. 자동소총을 든, 늙수그레한 민병대 전사와 둘이 찍은 사진을 볼 때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이름을 아는 사람은 그뿐이다. 다른 이름은 기억나지 않는다.

이라크 전쟁 혹은 제2차 걸프 전쟁으로 불리는 미국의 ‘이라크 자유 작전’ 당시 이라크 북동부 쿠르드자치구는 연합군의 일원이자, 자치구 내 최대 도시였던 아르빌에 주둔한 한국군 자이툰 부대의 동맹이었다. 현지 취재를 위해 2006년 3월 며칠간 이라크 아르빌에서 머물렀을 때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C-130 수송기의 전술비행도, 폭탄테러 현장의 모습도 아니었다. 그건 자이툰 부대에 대한 쿠르드인들의 태도였다.

자이툰 부대 주둔지는 과거 이라크 후세인군의 5군단 포병여단이 머물렀던 곳이었다. 후세인군은 쿠르드인들을 탄압했고 그 때문에 지역민들은 외부 군대에 적대적이었지만 자이툰 부대에 대한 주민들의 반응은 달랐다. 부대를 나설 때마다 주민들은 장병들이 탄 차량을 향해 손을 흔들어줬다. 아이들은 물론 어른들도 마찬가지였다. 이라크 전체에서 4번째로 큰 도시인 아르빌 시내는 테러의 흔적 등 상처가 여전했다. 그럼에도 그들이 머나먼 이국의 군인들에게 호의를 표시한 것은 자이툰 부대가 실질적인 도움을 주는 동맹이었기 때문이다.

자이툰 부대는 장병들을 투입해 인근 마을에서 ‘그린앤젤 작전’을 수행했다. 책걸상밖에 없던 초등학교에 놀이시설 등을 설치해주고 마을의 오·폐수관 공사도 진행했다. 공터와 도로에 대한 평탄화 작업도 벌였다. 임무 완수 뒤엔 잔치도 열었다. 쿠르드족 초등학생들이 연극과 율동 무대를 선보였고, 의장대와 태권도 시범이 이어졌다. 부대원과 주민들은 줄다리기와 씨름 대결도 펼쳤다. 서로 부둥켜안고 무동태우기도 했다. 그린앤젤 작전의 수혜를 입은 갈락초등학교 카마란 하지즈 교장은 “우리 마을을 위해 훌륭한 일을 해줬다”고 고마워했다.

시리아 북부에 주둔했던 미군의 민사작전이 어땠는지 정확히 모르지만 자이툰 부대와 크게 다르지 않았으리라 생각한다. 군사적 긴장을 억제하는 역할을 하는 동시에 인근의 쿠르드족 거주민들을 위한 활동을 펼쳤을 게다. 매일이다시피 만나는 주민들도 많았을 것이다. 터키군의 공격이 시작된 시점에, 심지어 인종청소 우려가 제기되는 상황에서 동맹이었던 그들의 곁을 떠나는 미군의 심정을 헤아리긴 어렵지 않다.

미군 중부사령관을 지낸 데이비드 퍼트레이어스 전 중앙정보국(CIA) 국장이 20일(현지시간) CNN과의 인터뷰에서 한 말은 그래서 더 가슴을 울린다. 그는 “미국은 오랜 동맹이자 친구인 쿠르드족을 배신하고 버렸다. 쿠르드인들이 ‘산 말고 우리의 친구가 없다’고 하기에 ‘미국이 친구’라고 말했는데 그런 말을 쓸 수 없게 됐다”고 토로했다. 역사적으로 여러 번 배신당했고, 이번에도 버려지듯 남은 시리아 북부 쿠르드족의 운명이 국제 역학관계를 따져보면 사실상 예고된 것이었다는 전문가들의 분석을 매일 국제뉴스에서 접한다. 미국 매체 악시오스는 21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쿠르드족의 삶을 보장해주자는 합의에 동의한 적이 없다. 소규모 미군 병력을 시리아에 남겨둘 수는 있다. 석유를 지키기 위해서다. 다른 이유는 없다”고 말했다며 그의 시리아 전략을 ‘떠나라. 하지만 석유는 지켜라’로 정의했다.

시리아 북부의 쿠르드족이 떠나는 미군을 향해 “가라, 배신자”라고 일갈했다는 기사를 읽으며 13년 전 3월 어느 날, 한나절을 같이 보냈던 쿠르드족들을 떠올렸다. 빛바랜 취재수첩에는 그들의 이름이 남아 있지 않지만 그들이 평안했기를, 앞으로도 평안하기를 빈다.

정승훈 국제부장 shju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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