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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희의 인사이트] 크게 통회합니다


한국교회는 1907년 평양 장대현교회에서 일어났던 대각성 부흥운동으로 학교와 병원을 많이 세웠다. 1919년 3·1운동은 널리 알려진 대로 기독교인이 주도한 일제 치하의 독립운동이다. 기미독립선언서를 작성한 민족대표 33명 중 16명이 기독교인이다. 당시 기독교인이 전체 인구의 1.5%에 불과했던 것을 감안하면 한국 역사를 바꿔놓을 정도로 기독교인의 활약은 컸다. 일제 강점기 주기철 목사와 손양원 목사 등은 신사참배를 거부하다 옥고를 치르고 순교했다. 일제의 모진 고문과 죽음 앞에서도 굴하지 않고 유일신 하나님에 대한 신앙을 지켰다. 1950년 한국전쟁 때는 교회가 나서서 피난민과 전쟁고아를 돌봤다.

대한민국은 자랑스러운 믿음의 선배들이 굳게 지키고 만들어온 나라다. 기독교인은 세상이 혼탁하고 어지러울 때 고통당하는 민족과 함께 울며 하나님의 지상명령을 좇아 ‘빛과 소금’의 역할을 해왔다. 교회와 성당은 핍박받는 자들의 피난처가 되고 안식처가 됐다. 명동성당은 군부독재 시절 민주화운동의 성지였다. 1976년 3·1 민주구국선언이 발표됐고 1987년엔 5·18광주민주화운동 7주기 추모 미사가 거행됐다. 향린교회도 6월 민주항쟁의 거점으로 사용됐다. 1987년 5월 종교계와 정치계, 학생운동조직 등 각계 인사들이 모여 민주헌법쟁취국민운동본부를 결성한 곳이다.

한국 역사를 반추해 볼 때 한국교회가 헌법에 규정된 정교분리 원칙을 넘어 세상에 참여할 때는 대의명분이 있었다. 일제에 빼앗긴 나라를 되찾기 위한 열망이 있었고, 군부독재에 맞서 이 땅에 민주주의를 이뤄내려는 ‘타는 목마름’이 있었다. 하지만 최근 일부 목회자들의 정치 참여나 망언은 나라를 생각하는 충정도, 애국심의 발로도 아니다.

조국 법무부 장관 사임 전 두 차례 집회에 이어 25일에도 광화문 보수집회를 주도한 목사는 자신을 나치시대 히틀러의 폭거에 저항해 히틀러 암살계획을 세운 독일의 행동주의 신학자 디트리히 본회퍼에 비유하며 문재인 대통령 하야를 주장하고 있다. 대통령에게 ‘빨갱이’라는 막말도 서슴지 않고 ‘문 대통령이 대한민국을 해체하고 사회주의로 가려 한다’는 가짜뉴스를 퍼트리며 혹세무민하고 있다. 지난 9일 집회에선 1억여원의 헌금을 걷어 기독시민단체에 의해 고발당했다. 두 갈래로 나뉜 진흙탕 싸움에 교회가 끼어들어 싸움을 부추기고 있으니 불편하다. 더구나 여의도순복음교회가 보수집회에 30만명을 동원한다거나, 한국교회 주요 교단이 가입해 있는 한교총이 집회에 참여한다는 거짓 주장을 펴며 한국교회 전체를 욕먹이고 있다.

나라의 통합을 위해 기도하고 상처 난 국민의 마음을 다독여줘야 할 목회자들이 세상의 근심을 사는 것도 모자라 한국사회 갈등을 조장하고 국론을 분열시키는 데 앞장서고 있으니 안타깝다. 말씀으로 돌아가 자숙하고 기도해야 할 때다. 위정자들이 잘못한 것이 있으면 솔로몬과 같은 지혜를 내려주도록 간구하고, 나라가 어둠 속에서 빛을 찾아가도록 인도해야 하는 게 신앙인들이 할 일이다.

개신교 원로 31명이 지난 6월 발표한 호소문처럼 하나님의 이름을 빌려 낡은 극단적 적대 이데올로기를 내세우고 기독교회와 교회연합기구를 구태의연한 이데올로기의 도구로 추락시키는 것은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지 말라’는 십계명을 위반한 반성경적, 반복음적 폭거이고 신앙적 타락이다. 교회를 정치화하거나 정치정당화해선 안 될 일이다. 1200만 기독교인이 크게 염려하고, 크게 통회한다.

한 보수 칼럼니스트는 “순교를 각오하고 밤비를 맞으며 청와대 앞 밤샘 농성을 한 개신교 리더들과 신도들의 처절한 영적 투쟁이 조국 사퇴를 불가피하게 만든 중요한 계기가 되었음을 부인할 수 없다”고 견강부회했지만, 일부 목회자들의 반이성적 행동이 오히려 한국교회를 수치 대상으로, 조롱거리로 만들고 있다.

본회퍼 목사와 함께 나치에 저항한 ‘고백교회’는 1934년 독일 바르멘에서 성서와 신앙을 중시하고 종교에 대한 국가의 지배와 정치적 목적의 이용을 반대하는 ‘바르멘 신앙선언’을 채택했다. 이 선언문의 기초를 마련한 신학자 칼 바르트는 “교회는 한 손에 신문을, 다른 손에는 성경을 들고 살되 말씀으로 세상사를 꿰뚫어 보고 해석하고 답을 마련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고 했다. 질곡의 한국 역사 속에서 종교 지도자들의 역할은 컸다. 성경 위에 바로 서서 혼돈에 빠진 나라를 제 길로 인도하고 국민의 마음을 위로해야 할 때다.

이명희 종교국 부국장 mheel@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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