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리송한 용어가 등장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22일 국회 연설에서 조국 사태와 관련해 “국민의 요구는 제도에 내재된 합법적인 불공정까지 바꾸자는 것”이라고 말했다. 전날 종교 지도자 간담회에 이어 이틀째 ‘합법적 불공정’을 언급했다. 법을 어긴 건 아니지만 공정하지 못한 일을 뜻하는 표현이었다. 이 말이 성립한다면 ‘불법적 불공정’도 있어야 할 것이다. 법을 어겼고 공정하지 않은 일. 좀 어색하지 않은가?

법을 어기는 건 범죄다. 공정을 논하기 전에 그 행위 자체로 처벌을 받아야 한다. 자유한국당 김성태 의원은 딸을 KT에 부정하게 취업시킨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다. 정당한 절차를 안 거치고 다른 이의 취업 기회를 박탈해 공정하지 못한 일이지만, 이 사건은 불공정 문제 이전에 범법행위로 심판대에 올랐다. 우리가 공정의 잣대를 들이대는 건 대부분 법의 테두리 안에서 부당한 일이 벌어졌을 때다. 얼마 전 서울시의 합법적인 정규직 전환에 대해 감사원이 채용 과정의 불공정을 지적한 것처럼. 그러니까 불공정 앞의 ‘합법적’이란 수식어는 중언부언인 셈이다. 쓰지 않아도 될 말을 굳이 붙인 것은 앞서 했던 말 때문이지 싶다. 조국 장관을 임명하면서 “명백한 위법행위”를 잣대로 제시했다가 국민 눈높이에 미치지 못함을 확인했다. 이에 ‘위법이 아닌 문제도 바로잡겠다’는 뜻을 강조하느라 이런 표현이 나온 것 같다.

어색한 수식어가 붙긴 했지만 ‘검찰 개혁’ 구호에 묻혔던 공정의 문제가 다시 전면에 서게 됐는데, 27번이나 공정을 말한 대통령의 연설은 왠지 기시감을 줬다. 마이클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 열풍이 일었던 2010년 이명박 대통령은 광복절 경축사에서 ‘공정한 사회’란 국정 키워드를 꺼냈다. 미지근하던 여론의 반응은 다음 달 유명환 외교통상부 장관의 딸이 딱 한 명 뽑는 외교부 특채에 합격한 게 밝혀지며 돌변했다. 사람들은 “이게 공정한 사회냐” 아우성을 쳤고 여러 이슈에 공정의 잣대를 들이대기 시작했다. 이명박 정권의 공정은 그것을 외친 정부가 공정하지 못한 모습을 몸소 보여주면서 신드롬이 됐다. 지금의 공정 이슈도 정권 핵심 인사 가족의 불공정한 모습이 촉발했다는 점에서 10년 전과 크게 달라 보이지 않는다. 강산이 바뀌었는데 같은 말을 반복하고 있다는 건 공정 사회로 가는 길이 그만큼 멀다는 뜻일 테다. 그래도 가야 한다. 이번 사건으로 한층 높아진 국민의 공정 눈높이에 맞추려면 정부도 분발해야 할 것이다.

태원준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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