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가족과 이웃 관계에만 머무는 저신뢰사회… 고립 예방 위한 사회적 관계망 형성 시급
민간·공공기관·정부 협력 통해 도시와 농어촌 공동체 회복해야만 지속적인 사회 유지돼


지난달 24일 통계청 발표에 따르면 2018년 자살 사망자 수가 전년 대비 9.5%나 증가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들 가운데 잠시 내준 자살률 1위를 되차지할 전망이다. 극단적인 선택으로 생을 마감하는 자살은 개인적 행위이지만 높은 자살률은 심각한 사회적 문제이다. “뜻밖의 질병, 금전 또는 고민 때문에 어려움에 처했을 때 도움을 요청할 친척이나 지인이 있는지”를 묻는 갤럽 세계여론조사에 우리 국민은 78%만이 있다고 응답했다. 이웃한 일본이나 OECD 평균인 89%에 한참 못 미치는 최하위 수준이다. 이러한 수치들은 한국에서의 삶이 팍팍하고 어렵다는 지표이며, 우리나라가 과연 공동체가 유지될 수 있는 지속가능한 사회인가에 심각한 의문을 가지게 한다.

일상생활에서 미리 형성된 상호 신뢰관계가 전제돼야만 위기발생 시 도움을 요청할 수 있다. 신뢰의 대상은 동심원의 안쪽에서부터 가족, 친구와 이웃, 직장동료, 같은 나이·직업·종교 등 공통속성의 사람들로 확대된다. 공동체가 지속하려면 사회구성원인 사람에 대한 신뢰와 더불어 학교, 종교단체, 정부, 기업 등과 같은 사회제도에 대한 신뢰 또한 일정 수준을 넘어야 한다.

과거 농촌 지역 중심의 대가족 공동체에서는 위기가 발생할 때 신뢰할 수 있는 가족 및 이웃 주민과 같은 1차 집단에 의존했다. 산업화 이후 사회 규모와 지리적 유동성이 확대되고, 복합적이며 다문화적인 사회에서는 사회적 신뢰가 구축된 2차 집단 구성원들에게도 도움을 요청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세계가치관조사에 의하면 한국인의 가족과 이웃 주민에 대한 신뢰는 높은 반면 낯선 사람에 대한 신뢰는 매우 낮은 편이다. 산업화 이후에도 한국인의 신뢰 대상은 여전히 가족과 지인에 한정되며, 일반적인 타자에게까지는 확대되지 않아 저신뢰사회에 머물고 있다.

최근에는 1인 가구가 30%를 차지하는 등 대가족제도가 급속하게 해체되고 있다. 1인 가구가 늘어난다는 것은 도와줄 가족과 친척도 없는 사람들이 많아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한국은 원래 개인주의적이라고 생각했던 서구 국가들보다도 사회적으로 고립된 사람이 훨씬 많아진 것이다.

고립된 사람들은 주변에 도움을 요청할 사람이 없으므로 단기적으로는 지역사회의 정부, 학교, 봉사단체, 종교단체와 같은 사회제도가 그 역할을 맡아야 한다. 최근 서울시는 급속히 증가하는 1인 가구를 정책대상으로 하는 맞춤형 대책을 본격 가동한다고 발표했다. 1인 가구의 사회적 고립을 예방하고 건강한 독립생활을 지원하기 위해 운동·문화·여가 활동을 통해 ‘사회적 관계망 형성’에 최우선 방점을 둔다는 것이다. 사회적 관계망의 사각지대에 놓인 위기 가구를 임대료, 전기료 및 수도요금 연체 등과 같은 빅데이터 분석을 통해 적극적으로 발굴하는 한편, 이들을 찾아가는 방문지원 체계도 정교하게 설계해 실행해야 한다. 지방자치단체뿐 아니라 자원봉사단체와 종교단체에서도 이러한 역할을 보다 많이 분담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무엇보다도 경제발전과 IMF 경제위기 극복과정에서 부지불식간에 내면화된 자기중심적 성과지상주의가 완화돼야 타인을 배려하는 여유를 가질 수 있다. 유아교육에서부터 대학교육에 이르기까지 개인 간 경쟁보다는 학생들의 협동심과 배려심 등이 자연스럽게 함양될 수 있도록 교육과정이 재편돼야 한다. 그간 소홀하게 다루었던 예술 및 팀 스포츠 활동 참여를 늘리고, 민주시민교육을 강화해 협력과 배려의 중요성을 인식하도록 해야 할 것이다.

도시개발방식에도 변화가 필요하다. 신도시 건설과 노후 시가지 재개발사업으로 골목길 한솥밥 공동체였던 지역이 입주자들끼리 층간소음으로 다투는 대로변 아파트단지가 됐다. 아파트에 거주하는 인구비율은 2000년 33.6%에서 꾸준히 증가해 2018년에는 50.1%가 됐다. 아파트는 이웃 간 소통 및 교류가 거의 없으며, 세계에서 유례없이 익명화되고 개인화된 공동체이다.

학계 연구에 따르면 다양한 배경을 가진 주민들이 독서모임 조기축구 등 스포츠 동호회 모임, 자원봉사활동과 같은 자발적 결사체 활동으로 의사소통이 활발해지고 상호작용 빈도가 높아질 때 사회적 신뢰가 형성된다. 지역사회의 작은 도서관, 놀이터, 공원, 생활체육시설, 복지시설 등이 지역주민들이 어울려 소통하고 교류하는 터전이다. 앞으로는 뉴타운 건설과 같은 삭막한 도시재개발이 아니라 기간이 다소 소요되더라도 주민 의견을 최대한 수용해 도시 또는 농촌 지역의 고유한 특성이 반영된 공동체의 원형을 유지하면서 커뮤니티를 살리는 도시 재생으로 도시 기능에 활력을 불어넣어야 한다.

민간부문, 공공기관 및 정부의 협력을 통해 도시와 농어촌 공동체를 회복하고 사회적 신뢰를 구축해야 한다. 그래야 누구나 곤경에 처했을 때 도움을 요청할 수 있는 사람과 조직이 늘어나게 되고 지속가능한 사회가 유지될 수 있다.

남궁근 서울과기대 행정학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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