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박종순 (22) 카자흐스탄국립대에 한국문화원 개원하다

국민의 73%가 이슬람교도인 나라

박종순 목사(오른쪽 세 번째)가 1996년 6월 카자흐스탄 수도 알마티의 카자흐스탄국립대에서 명예박사 학위를 받은 뒤 기념품을 받고 있다. 박 목사 왼쪽이 나리바예프 총장.

카자흐스탄은 러시아와 우즈베키스탄 사이에 끼어 있는 내륙 국가다. 세계에서 아홉 번째로 큰 나라이며 국민의 73%가 이슬람교도다. 구소련의 일원이었으면서도 러시아 정교회의 영향을 적게 받았다. 그만큼 이슬람 전통이 강하다.

우연히 이 나라를 방문해 교류하게 됐다. 소련이 붕괴된 직후의 일이었다. 그러다 1992년 충신교회가 카자흐스탄국립대에 한국문화원을 개원했다. 당시 나리바예프 총장은 구소련 시절 문화부 장관을 지낸 유력자였다. 교수들은 모두 이슬람교도였다. 말이 한국문화원이었지 사실 선교학과를 꿈꿨다.

내가 목사인 것도 다 알려졌다. 한국문화원 개원 소식이 알려지자 교수들이 일제히 반대했다. 기독교인이 하는 일에 동의할 수 없다는 게 이유였다. 나와 총장은 카자흐스탄과 한국의 교류를 확대하는 가교로 삼자는 공감대가 있었다. 한국문화원을 통한 선교도 꿈꿨지만, 민간 차원의 교류도 대폭 확대되길 바랐다.

교수들을 설득하는 건 총장의 몫이었다. 교수회의에서 총장이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한국과 교류할 기회가 생겼습니다. 지금 하지 않으면 언젠가 우리가 나서 교류의 기회를 찾아야 할지도 모릅니다. 우리가 안 하면 다른 대학이 합니다. 좋은 기회인 만큼 반드시 잡아야 합니다.”

결국 교수들도 동의했다. 문화원의 이름을 빌었지만 한국학과였다. 학과 개설은 그해 5월에 했다. 나는 기념 강연자로 초청됐다. 500여명의 교직원과 학생 앞에 섰다. 담담하게 우리나라 선교 역사를 소개했다. 그리고 경제가 급성장하는 과정에서 기독교가 어떤 역할을 했는지도 전했다.

이슬람교도들에게 직접 복음을 전할 수는 없었다. 대신 기독교의 긍정적인 면을 전했다. 결국, 교세와 한국경제가 동반 성장했다고 말하는 부분에서 우레와 같은 박수가 터져 나왔다. 강연은 90분 동안 이어졌다. 긴 시간이었는데 순식간에 지나 버렸다. 그만큼 청중의 집중도가 높았다. 이렇게 만들어진 문화원이 현재 카자흐스탄국립대 한국어학과의 전신이다.

92년에는 교회 밖으로 눈을 돌린 해였다. 김창환 선교사를 인도에 파송했고 경북 김천에 부황중앙교회도 개척했다. 93년에는 대구충신교회와 경주충신교회를 개척했다. 94년에는 조충일 선교사를 프랑스로 파송했고 경기도 고양 일산에 충신교회도 개척했다. 이 시기 교회는 해외 선교사 파송과 국내 교회개척에 힘썼다.

교회가 교회 내부로만 힘을 응축시키면 늘 문제가 생긴다. 교인이 늘고 재정이 늘면 반드시 교회 밖 사역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힘이 모이면 다툼이 일어나는 법이다. 충신교회도 마찬가지였다. 성장통에 이은 몸살감기로 신음하던 교회의 힘을 일시에 밖으로 향했다. 이런 아웃리치 전략은 성공적이었다. 요즘 유행하는 ‘선교적 교회’를 실천한 셈이다. 물론 막무가내로 교회 밖으로 향한 건 아니었다.

신중하게 교회의 형편을 살폈다. 나의 욕심과 이상만으로 밀어붙일 수는 없었다. 장로님들과도 충분하게 논의했다. 목회는 혼자 할 수 없는 일이다. 함께 만들어가는 종합예술이다.

‘천천히, 확실하게’가 지론이다. 천천히 하자는 건 미뤄둔다. 포기하자는 게 아니다. 준비이며 기다림이다. 목적을 정한 뒤 기다리는 건 성숙과 완성의 기회와 맞닿아 있다.

정리=장창일 기자 jangci@kmib.co.kr



(포털에서는 영상이 보이지 않을 수 있습니다. 영상은 미션라이프 홈페이지나 유튜브에서 확인하세요)

트위터페이스북구글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