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국 사태가 초래한 ‘쪼개진 나라’는 주말이나 휴일의 서울 광화문과 서초동, 여의도만이 아니다. 낯선 사람과는 물론 절친한 친구, 지인 사이에도 보이지 않는 단단한 벽이 생겼다. 함부로 정치 얘기를 꺼냈다간 분위기가 얼어붙기 십상이다. 조금 더 나가면 얼굴 붉히는 설전으로 이어진다.

카톡이나 밴드 등 온라인 문자대화 공간에서도 ‘조국 후유증’이 심각하다. 대구의 한 고교 동기회 단체카톡방은 최근 두 쪽 났다. ‘조국 사퇴’와 ‘조국 수호’를 둘러싸고 의견이 맞서다 양측의 감정이 격해졌다. 조국 수호 측 수십명이 이런 카톡방에 남아 있을 필요가 없다며 단체로 탈퇴했다. 부산의 한 고교 재경동창회 밴드에서도 비슷한 일이 벌어졌다. 한 동문이 “이번 주말 광화문에서 만나 점심이나 하자”는 문자를 올렸다. 조국 법무장관 사퇴 집회에 모이자는 걸 에둘러 표현한 것이다. 뒤늦게 이 뜻을 파악한 다른 동문은 “동문 밴드에 서 정치적인 내용은 삼가자”고 반발했다. 서로 공방이 오가다 ‘동문 온라인 모임의 정치화’에 반대하는 동문 여러 명이 못 참겠다며 탈퇴했다.

조 장관이 물러났지만 얼어붙은 카톡방에 봄은 오지 않는다. 586세대인 대학 동아리 친구들의 카톡방에 한 친구가 조 장관이 대통령의 사표 수리 20분 만에 서울대 복직신청서를 제출한 것을 꼬집는 자유한국당 원내 대변인의 성명을 올렸다. 신랄하면서도 조리 있게 조 장관의 후안무치를 잘 드러냈다는 설명과 함께. 이에 대해 대학 졸업 후 미국에 이민 간 친구까지 가세해 개인의 인격을 함부로 대하는 것 아니냐고 반박해 격론이 벌어졌다. 한 변호사는 “사회가 참 살벌해졌다”고 했다. 친구를 만나도 말이 끊기며 어색한 침묵이 흐를 때가 많아졌다고 한다. 살아가는 얘기하다 보면 자연히 정치나 경제 등을 화제 삼게 마련이었는데, 이제는 눈치 보고 말을 꺼내길 꺼린다는 것이다. 선진국에서는 타인의 종교를 묻지 않는 게 기본 예의이다. 바야흐로 한국 사회에서는 종교뿐 아니라 정치 얘기도 금기가 되는 듯하다.

다 조국 사태가 낳은 기괴한 풍경이다. 공직에 대한 기본 윤리의식조차 없는 파렴치한 개인, 그리고 가치의 문제를 정치적 셈법으로만 바라본 여권이 한국 사회에 남긴 상흔이 크고 깊다.

배병우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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