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게티이미지뱅크

매개체 쥐 서식환경 변해
토양·물에 균 유입 늘어
올 환자 28% 가까이 증가
쯔쯔가무시증, 진드기 유충 주범
심방세동 동반 땐 사망률 높아져
설치류 매개 신증후군출혈열 위험


가을 들녘에 추수가 한창이다. 단풍 구경 등에 나선 야외 나들이객도 늘고 있다. 하지만 이맘때의 논·밭이나 산, 하천 등에는 뜻하지 않은 ‘건강 복병’이 도사리고 있어 주의가 필요하다.

렙토스피라증과 신증후군출혈열, 쯔쯔가무시증 등 가을철 3대 열성 감염병이다. 야외 활동에서 노출될 수 있는 설치류(들쥐 등), 진드기가 매개한다. 셋 다 10~11월에 집중 발생한다. 질병관리본부는 28일 “쯔쯔가무시증은 전체 환자의 90%가 가을철에, 렙토스피라증과 신증후군출혈열도 60% 이상 발생하고 있다”고 밝혔다. 특히 렙토스피라증은 올해 유난히 잦았던 가을 태풍이 지나간 곳에서 수해 복구나 농작업 시 쉽게 옮을 수 있어 각별히 신경 써야 한다.

태풍 휩쓴 농경지 렙토스피라증 조심

렙토스피라증은 등줄쥐나 소 돼지 개 등 가축에 있는 렙토스피라균이 오줌을 통해 배출되고 토양과 물을 오염시켜 이에 접촉한 사람에게 옮는다. 오염된 흙과 물을 만질 경우 피부 상처나 눈·코 점막을 뚫고 들어와 병을 일으킨다. 고열과 심한 두통 및 근육통, 오한, 눈(결막)충혈, 구토가 주요 증상으로 유행철을 맞은 독감(인플루엔자)과 비슷해 자칫 오인할 수 있다.

서울아산병원 감염내과 정지원 교수는 “국내 발생 렙토스피라증은 호흡기 증상과 폐출혈을 동반하는 것이 특징으로 항생제를 쓰면 대부분 치료된다”면서도 “5~10%에서 콩팥과 간 기능 악화, 급성 호흡곤란, 황달 등을 초래하는 ‘웨일씨병’으로 진행돼 목숨을 잃을 수 있다. 이 경우 치사율은 20~30%에 달한다”고 설명했다.

렙토스피라증은 매년 100명 안팎 발생하고 있다. 올해는 지난달 30일 기준 78명의 환자가 신고됐다. 전년 같은 기간(61명)보다 27.8% 늘어난 수치다.

환자 증가의 정확한 원인은 올해 전체 발생 데이터를 집계해 면밀히 따져봐야 파악될 수 있겠지만 잦은 가을 태풍이 영향을 미쳤을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태풍이나 홍수가 발생하면 등줄쥐의 서식처와 환경변화로 흙이나 물속으로 렙토스피라균이 많이 유입돼 사람에게 직간접으로 노출될 가능성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질본 관계자는 “렙토스피라증 환자의 50% 이상은 농축산 관련 종사자이고 20~30%는 야외활동 시 오염된 물, 흙을 접촉했던 이들이 차지한다”고 했다. 설치류가 좋아하는 습한 토양이나 물 가까이 사는 사람들, 낚시꾼, 군인 등에게 흔히 발생한다. 특히 태풍 이후 논에서 쓰러진 벼를 세우거나 추수할 때 주의해야 한다. 정 교수는 “부득이하게 논에서 일손을 거들어야 한다면 렙토스피라균이 피부를 뚫고 들어오지 못하도록 보호복과 긴 장갑 및 장화, 마스크를 착용하는 것이 안전하다”고 조언했다. 아울러 야외활동 시 오염된 것으로 보이는 웅덩이나 고인 물에 함부로 들어가거나 이를 만지지 않도록 해야 한다.

역시 설치류가 매개하는 신증후군출혈열도 매년 300~500명씩 발생하고 있다. 올해는 지난달 30일 기준 207명이 신고됐다.

신증후군출혈열은 렙토스피라증처럼 세균이 아니라 바이러스 감염에 의해 일어난다. 한탄 바이러스는 국내 들쥐의 72~90%를 차지하는 등줄쥐가 주로 옮기고 서울 바이러스는 도시의 시궁쥐가 전파한다. 이들이 침이나 오줌, 분변을 통해 바이러스를 체외로 내보내면 이것이 말라 먼지와 함께 공기 중에 떠다니다 호흡기를 통해 사람에게 옮는 것으로 추정된다. 역시 발열, 오한, 두통, 근육통, 결막충혈, 콩팥기능 저하 등이 관찰된다. 겨드랑이나 입천장에 점 형태 출혈이 나타나기도 한다. 야외활동이 많은 남자, 군인, 농부 등이 잘 걸리므로 이들에겐 예방백신 접종이 권장된다. 감염 예방을 위해 야생 설치류는 가급적 만지지 말고 만약 접촉했다면 손씻기를 절대 잊어선 안 된다.

쯔쯔가무시증의 주요 증상인 검은 딱지 ‘가피’(위)와 피부를 물어 가피를 유발하는 활순털진드기의 전자현미경 모습. 질병관리본부 제공

쯔쯔가무시증 걸리면 심장도 위험

쯔쯔가무시증은 풀숲에 사는 털진드기 유충에 물려 발생한다. 병원체는 ‘오리엔티아 쯔쯔가무시’로 세균과 바이러스의 중간 성질을 갖고 있다. 국내 서식하는 털진드기 51종 가운데 이 병을 옮기는 건 8종으로 확인됐다. 대표적 종이 활순털진드기와 대잎털진드기다.

여름에 산란하고 알에서 부화한 유충이 번데기로 변하는 과정에 사람이나 동물의 체액이 필요하다. 이 때문에 유충이 활동을 시작하는 9월부터 증가해 11월 초에 가장 많은 환자가 발생하고 이후 감소 경향을 보인다. 매년 6000~1만여명이 감염된다.

진드기에 물린 뒤 1~2주 잠복기가 지나면 열이 나고 온몸에 발진이 돋는다. 심한 두통과 오한도 동반돼 감기나 독감으로 착각할 수 있다. 정 교수는 “진드기 물린 부위에는 1㎝ 정도의 가피(검은 딱지)가 나타나는데, 이는 쯔쯔가무시증 진단의 중요한 단서가 된다”면서 “겨드랑이나 사타구니, 오금 등 피부가 겹치고 습한 부위에서 잘 발견되므로 야외 활동 후에는 몸 전체를 살펴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대부분 항생제 치료를 하면 수일 안에 증상이 좋아지지만 드물게 쇼크가 발생하거나 중추신경계를 침범해 장애를 초래할 수 있다. 치사율은 0.1~0.2% 수준이다.

최근 중증의 쯔쯔가무시증에 감염되면 ‘심방세동(불규칙한 심장박동)’이 생길 수 있고 이 경우 심장 합병증이 동반될 위험성이 커지는 동시에 3개월 내 사망할 확률도 크게 높아진다는 사실이 대규모 연구를 통해 밝혀져 학계 주목을 받았다. 을지대병원 심장내과 강기운 교수팀이 2006~2016년 쯔쯔가무시증 환자 23만3473명을 전수 조사해 세계 처음으로 밝혀냈다.

쯔쯔가무시증 진단 이후 심방세동이 새로 나타난 환자들은 그렇지 않은 이들보다 급성 심부전(심장기능 저하)과 허혈성 심질환(심장 혈관이 좁아져 혈액 공급이 잘 안됨)이 발생할 확률이 각각 4.1배, 1.9배가량 높았다. 또 급성 심부전과 허혈성 심질환이 생긴 이들은 쯔쯔가무시증 감염 후 3개월 내 사망할 가능성이 각각 2.4배, 13.7배 증가했다. 강 교수는 “쯔쯔가무시증을 일으키는 병원체는 다른 감염병과 달리 혈관염을 유발하거나 장기를 직접 공격하는 특성이 있다”면서 “병원체가 심장을 직접 공격하거나 병원체에 의한 면역반응 혹은 독성 때문에 심장 합병증을 일으키는 걸로 추정된다”고 했다.

정지원 교수는 “논과 밭, 야산 등이 많은 곳에서 도토리나 밤 줍기, 텃밭 가꾸기, 등산 등을 하다 털진드기에 물리기 쉽다”면서 “야외활동을 할 때는 장화와 운동화를 신고 긴 바지, 긴소매 옷, 모자, 목수건, 토시 등을 착용하고 풀숲 바닥에는 가급적 돗자리를 깔고 앉고 옷도 함부로 벗어놔선 안 된다”고 말했다. 야외활동 후 입었던 의복은 곧바로 세탁하고 즉시 목욕이나 샤워를 해 혹시 몸에 붙어있을 진드기를 떼내야 한다.

민태원 의학전문기자 twmi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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