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의 없이 정권의 자의적 판단으로 대책 내놓아
조국 사태로 나빠진 여론을 공정몰이로 바꾸려는 정치공학 수단이 된 정시 확대
대통령 한마디에 백년대계가 흔들리는 국정은 신권위주의


대통령의 말 한마디가 교육 현장을 들쑤셔 놓았다. 문재인 대통령은 조국 사태를 합법을 이용한 불공정의 문제로 파악한다. 따라서 조국 일가의 교육 비리가 문제가 아니라 그를 허용한 제도가 문제라고 진단한다. 갑자기 원흉은 수시가 된다. 정시를 늘리면 공정성도 확보된다고 본다. 그야말로 단순 논리다. 논리의 문제를 넘어 이런 진단과 해법은 이 정부의 국정 운영 방식에 대한 근본적인 회의감을 불러일으킨다.

먼저 이 정부에 교육철학이 있는지 묻고 싶다. 사실 사려 깊은 정권이라면 교육의 미래에 대한민국의 미래가 달려 있다는 생각으로 어떤 국정과제보다 교육 개혁에 심혈을 기울였을 것이다. 그런데 이 정부는 집권 2년 반 동안 교육 개혁에 ‘학업의 뜻’이 별로 없었다. 이렇다 할 교육 비전을 본 적도 없고, 미래를 위한 교육 개혁 방법에 대한 진지한 숙의의 모습도 보지 못했다. 기껏해야 지난해 정시 30% 확대 방안만이 있었을 뿐이다. 교육부가 일선 학교를 쥐고 흔드는 관료적 행정은 오히려 심화되었다. 그러더니 마치 정시 확대가 교육 개혁의 보물이나 되는 듯 내세운다.

국가의 관점에서 교육은 무엇일까. 두 가지 근원적 의미를 갖는다. 첫째, 교육은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이 자신의 자유와 행복을 영위하도록 만드는 원천이다. 덴마크 교육의 선구자 그룬트비는 “인간은 다른 사람에게 나아가기 전에 자기 자신에게 나아가야 한다”는 신념으로 교육을 일으켜 세웠다. 교육 개혁이란 이 나라에서 태어난 사람이 자신의 삶의 궤적을 스스로 그려가면서 자아실현을 이뤄가도록 하는 데 중점을 둬야 한다. 교육은 국민 행복의 가장 강력한 수단인 것이다.

둘째, 교육은 국가 발전과 경쟁력을 결정하는 핵심 요인이다. 교육이 약한 나라가 일류 국가가 되는 경우를 보지 못했다. 산업혁명의 영국이나, 이를 순식간에 따라잡은 독일이나 모두 우수한 교육제도가 일익을 담당했다. 최강국 미국도 뛰어난 대학들 없이는 불가능했을 것이고, 덴마크나 핀란드와 같은 강소국들도 탁월한 교육 덕분에 국민도 행복하고 나라도 부강해졌다. 대한민국 신화를 만든 것도 높은 교육열에 힘입은 바 크다.

지금 거의 모든 나라들이 교육 개혁을 국정의 핵심 화두로 삼고 있다. 인공지능혁명 시대에 과거의 교육 패러다임으로는 대응할 수 없기 때문이다. 물론 나라마다 교육의 역사와 조건이 다르기 때문에 교육 개혁의 내용은 일률적이지 않다. 그러나 적어도 한 사람 한 사람을 소중한 인재이자 훌륭한 시민으로 키우기 위해 창의성, 인성, 소통, 자기 개발에 초점을 둔 교육과정 개혁에 매달리는 데는 공통점이 있다.

이 새로운 교육 패러다임의 정착이 쉽지 않기 때문에 광범한 교육 거버넌스 기구를 통해 교육과정을 바꾸는 작업을 하고 있다. 프랑스는 교육과정심의위원회, 일본은 중앙교육심의회, 핀란드는 국가교육개혁위원회 등에 교육 전문가뿐 아니라 기업 학부모 언론 연예인까지 참여해서 숙의를 통해 미래지향적인 정책을 내놓는다. 교육 개혁이 정권 프로젝트가 아니라 국가 프로젝트로 진행해야 한다는 공감대에서 교육 비전을 세워놓고 그 전략을 차근차근 추진한다.

그런데 대한민국은 거꾸로 간다. 숙의도 없이 정권이 자의적 판단으로 대책을 내놓는다. 정시 확대가 조국 사태로 나빠진 여론을 ‘공정몰이’로 바꾸려는 정치공학의 수단이 되고 있다. 이런 대책은 국민을 행복하게 만드는 교육 개혁과도, 국가경쟁력을 높이는 교육 개혁과도 거리가 멀다. 물론 정시가 수시보다 평가의 일관성이란 측면에서 공정할 수 있다. 그러나 그 대가로 치러야 할 것이 너무 많다. 대학의 자율성, 공교육의 정상화, 인성 교육, 다양성 교육 등 지난 수십년 동안 교육 개혁의 중요한 가치였던 것들이 제물이 될 수 있다.

정시 확대가 과연 한국의 교육 환경에서 ‘결과의 정의’를 보여주는가도 문제다. 존 롤스에 의하면 정의가 허용하는 평등은 약자에게 이익이 돌아갔을 경우이다. 그러나 정시 확대는 약자에게 돌아갈 이익은 증명되지 않고 강자에게는 유리하다. 정시 확대가 사교육이 강한 강남에 더 유리하다는 것은 이미 입증되었다. 수십년 동안 수능 중심의 입시제도에서 서울과 지방, 강남과 비강남의 격차는 더 커졌다. 강남구 한 곳에서만 지난 3년간 347명이 서울대에 정시로 입학한 반면 4대 광역시 합격생은 모두 합해도 325명에 불과하다. 당장 정시확대가 발표되고 강남 부동산 업체들이 호재라고 떠들고 사교육 관련 주식이 올랐다. 사교육 의존 교육을 확대하고, ‘강남 중심의 입시’가 될 방법을 공정하다고 할 수 있을까.

더구나 주요 교육정책을 숙의하라고 만들어 놓은 국가교육회의가 이 과정에서 아무런 역할도 못했다. 졸속이라는 말은 이럴 때 쓰는 것이다. 대통령의 한마디에 백년대계가 흔들리는 국정이야말로 신권위주의가 아니면 무엇이라 부를까.

박형준 동아대 교수·전 국회사무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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