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국 전 법무부 장관 때문에 그런 건데…, 조국 사태로 학종(학생부종합전형)의 어두운 측면이 너무 드러났다. 이게 여론과 맞물리면서 대통령이 그동안의 논의 과정을 갈아엎고 정시 확대를 받은 것이다. 대통령이 이렇게 직접 얘기하는 건 사실 바람직하지는 않다.”(더불어민주당 중진 의원)

문재인 대통령의 발언이 등장한 배경과 조 전 장관 사태가 무관치 않다는 이야기는 여권도 기정사실로 받아들이는 분위기다. 민주당의 다른 의원은 사견을 전제로 “대통령은 정무직이다. 조 전 장관 논란 과정에서 ‘공정’이 이슈가 됐고 정시 확대 여론이 높아 그런 결론을 내린 것 같다”며 “정치인이 여론을 수렴하는 것은 문제될 것이 없다”고 말했다. 국회 교육위원회 민주당 간사를 맡고 있는 조승래 의원은 총선을 의식한 행보가 아니냐는 질문에 “갑자기 정시 확대 논의가 나온 것은 아니다. 선거가 있다고 해서 입시제도의 공정성에 대한 문제제기를 모른 척 덮고 갈 수는 없다”며 “학종의 불공정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제도 개선과 정시 비중 확대를 동시에 진행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여권 얘기를 종합하면 결국 내년 4월 치러지는 총선을 의식, 조 전 장관 논란으로 돌아선 민심을 달래기 위해 정시 확대 카드를 꺼내들었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대입 제도 변경에 정치 논리가 스며든 것이다. 전문가들이 이번 정시 확대 방향 역시 사교육 시장의 승리로 끝이 날 것이라고 내다본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왜 사교육 시장만 승자가 됐을까

김성천 한국교원대 교육정책전문대학원 교수는 28일 현 사교육 과열 양상에 대해 “개미지옥에 갇힌 상황”이라고 꼬집었다. 김 교수는 “실패해도 계속 반복하는 프레임 안에 정책이 갇혀 있어 빠져나올 수가 없게 된 것이다. 미시적인 정책만 쏟아져 나오고 있는데 그마저도 엇박자가 나면서 학부모들의 불신을 가져왔다”고 분석했다. 특히 정시 확대 방침은 고교학점제와 같은 문재인정부의 주요 교육정책과 배치된다는 점을 지적했다. 김 교수는 “학부모들은 정책들이 어긋나는 현상을 ‘각자 알아서 해결해야 한다’는 신호로 받아들였다. 이런 상황에서 사교육은 승리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구체적인 설계나 큰 비전 없이 혼란만 부추기는 정책 발표가 정권마다 반복되면서 이를 파고드는 사교육 생태계만 공고해진다는 것이다.

우왕좌왕하는 교육정책이 이어지면서 사교육 업체들은 적응력을 길렀다. 이성호 중앙대 교육학과 교수는 “그동안의 경험을 통해 사교육 시장은 어떤 정책이 나오든지 살아남는 법을 터득했다. 이번 정시 확대 방침으로 학원가가 방향은 선회하겠지만 곧 적응해서 프로그램을 발표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 교수는 “입학사정관 도입 당시에도 정부는 사교육비 경감에 자신감을 보였지만, 전문가들은 ‘보나마나 비교과 과외가 생길 것’이라고 예상했다. 결과는 딱 맞았다. 이번에도 마찬가지다. 정책 방향(정시 확대) 자체가 맞다고 하더라도 중요한 교육정책이 대통령의 한마디로 이렇게 발표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공교육의 시스템 적응 속도가 교육정책 변화 속도를 따라오지 못하는 것도 사교육 시장을 키운 원인으로 꼽힌다. 정제영 이화여대 교육학과 교수는 “대기업과 벤처기업의 차이처럼 공교육 시스템이 변하는 데는 시간이 더 걸린다. 정책을 바꾼다는 것 그 자체는 일시적으로 사교육 시장을 늘리는 결과를 초래한다”고 말했다. 최미숙 학교를사랑하는학부모모임 상임대표는 “대학입시는 예측이 가능하고 신뢰가 있어야 하는데 너무 자주 바뀌어버리면서 사교육이 대입의 전문가가 됐다. 학생과 학부모가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믿을 건 사교육만 남게 됐다”고 말했다.

혼란을 먹고 크는 사교육 시장

“즉흥적으로 나온 정책인 것 같아서 신뢰가 안 간다. 정권이 바뀌면 제도가 또 바뀔 것 같은 불안감이 있다.” “정치적인 발언이 아니길 바란다. 현 입시제도를 제대로 분석해 적절한 조치를 해달라.”

이번 정시 확대 방향 역시 수험생과 학부모들의 사교육 의존성만 높일 수 있다는 우려는 현장 목소리에서도 그대로 묻어났다. 국민일보가 입시업체 종로학원하늘교육에 의뢰해 고교 1학년(정시확대 적용 학년) 학생과 학부모 309명을 대상으로 지난 24∼25일 양일간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대입개편 움직임 이후 사교육업체 입시설명회 등을 통해 추가 정보를 얻어야 할 필요를 느끼는가’라는 질문에 응답자의 83.5%(258명)는 ‘그렇다’고 답했다.

‘자주 교육제도가 바뀌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 ‘일관성있는 교육정책이 필요하다’ ‘더 이상 바꾸지 않았으면 좋겠다’ ‘학부모와 학생이 충분히 숙지하고 준비할 수 있는 제도가 되길 바란다’. 교육정책 변화에 대해 자유롭게 적어달라는 요청에는 이 같은 대답들이 쏟아졌다. 특히 정시 확대 찬반 의견을 제외하면 교육시장에 미칠 혼란을 최소화해 달라는 당부와 함께 “바뀌는 정책으로 인해 생기는 문제점들에 대한 대책도 함께 세워 달라”는 지적도 있었다.

과열된 사교육 시장을 잠재울 수 있는 방법에 대해서는 전문가들마다 해법이 달랐다. 김 교수는 “표준화된 문제보다 수행평가나 과정평가를 과감하게 늘리면 학원이 소용없게 된다. 평가에 대한 다양한 시도가 필요하다. 다만 사교육 문제는 대입정책, 더 나아가 대학 서열화 문제나 노동시장 임금격차 문제까지 연결돼 있다. 대입 하나로만 풀리지 않는 문제이기 때문에 사회정책과 연결된 교육정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정 교수는 “대입제도나 고등학교 유형 학교제도는 교육 근본제도이기 때문에 법률로 정해야 한다고 본다. 그만큼 정치적인 변동에 의해서 영향을 받지 않고 여야 합의에 의해서, 사회적 합의 과정을 거치게 되면 제도적 신뢰를 높이는 방향으로 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제안했다.

김유나 김판 기자 spri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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