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대학입시 ‘정시 확대’를 선언한 직후 대학들은 동요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일선 교육현장과의 사전교감 없이 정부가 십수년간 이어진 정책방향과는 정반대의 기조를 제시한 게 “황당하다”는 반응도 나왔다. 그러면서도 자칫 정부에 말을 잘못 꺼냈다가 ‘찍힐 경우’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며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경우가 상당수다.

문재인 대통령의 ‘정시 확대’ 발언 사흘 뒤인 28일 서울 시내 15개 대학 관계자들은 대부분 “당황스럽다”면서도 구체적인 입장 표명을 자제했다. 한 사립대 관계자는 “그간 교육부에서 준 가이드라인대로 해왔는데 갑자기 다른 얘기를 하니 황당하다”면서 “발표 전까지 각 대학에 사전 언질도 전혀 없던 상태라 섣불리 움직일 수가 없다”고 말했다. 다른 대학 관계자도 “섣불리 개별 대응하다가 찍힐 수 있기 때문에 조심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불과 4개월 전인 지난 6월에 2022년까지 정시비율을 30%로 맞추겠다고 밝혔던 서울대는 일단 정부 방침에 대한 입장을 밝히기를 보류했다. 서울대 관계자는 “아직 기존 입장은 그대로”라며 “정부 실태조사 결과까지 지켜보겠다”고 말했다.

지난 8월 김우승 총장의 정시 확대 방침 발언이 보도된 한양대는 “당시엔 사적인 자리에서 나온 총장 개인 견해일 뿐”이라면서 “논의된 게 없다”고 말을 아꼈다. 이외의 다른 대학들도 모두 방안을 논의 중이거나 정부 가이드라인을 지켜보겠다는 입장이다. 대학들 중에는 “익명이라도 코멘트를 안 하겠다” “불만이 있지만 어쩌겠나”라는 반응도 있었다.


정부안이 확정되면 당장 내년 입시부터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높다. 현재 예상되는 2022년도 정시 비중 목표치 40%에 미달하는 정도가 큰 대학일수록 매년 변화의 폭이 클 수밖에 없다. 익명을 요구한 한 대학 관계자는 “한꺼번에 정시 비중을 10% 넘게 올리는 상황은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면서 “여태까지 교육부 권고사항을 잘 지켜왔는데 난감하다”고 말했다. 현 2020학년도 입시에서 서울대 등 서울 지역 일부 대학은 정시 비율이 30%에도 미치지 못한다.

대학들은 정부가 재정지원과 정시 확대를 연계해서 압박하면 거스를 수 없는 형편이라고 입을 모았다.

한 대학 관계자는 “재정지원사업은 단순히 지원금을 받는 의미도 있지만 각 대학의 교세를 드러내기도 한다”면서 “정부 가이드라인을 무시했다가 지원대상에서 제외됐을 때 감당해야 할 학교 안팎의 반발은 치명적인 수준”이라고 설명했다. 다른 대학 관계자는 “사립대들이 등록금을 10년 가까이 동결하고 있는 사례도 있어 수익 자체가 좋지 못하다”면서 “정부 눈치를 볼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대학 관계자들은 이번 발표가 대학 서열화를 부추길 뿐 아니라 학령인구 감소라는 실태에도 맞지 않다고 지적했다. 한 대학 관계자는 “수시 체제가 대학 간의 합격 기준이 획일화되지 않도록 한 면이 있었는데 정시 확대로 수능 점수 위주가 되면 다시 대학들이 서열화에 민감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이번 발표를 바라보는 학계의 시선 역시 비판적이다. 김성천 한국교원대 교육정책전문대학원 교수는 “정시 확대는 과거로 회귀하는 방안”이라면서 “공정성이 곧 수능을 의미하는 게 아니다”고 비판했다. 김 교수는 “학력고사를 경험했던 386세대가 본인들의 경험만 가지고 제대로 된 교육철학 없이 여론에 따라 정책을 펼치고 있다”고 꼬집었다.

조효석 안규영 황윤태 기자 promen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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