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전 원주에서 기차를 타고 서울에 올 때였습니다. 청량리역에 접어들 무렵 한 사람이 눈에 띄었습니다. 대부분 사람이 자리에서 일어나 짐을 챙기고 있는데 느긋하게 앉아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가만 보니 낯이 익었습니다. 한참 생각하다 마침내 누구인지 떠올랐습니다. 고집쟁이 농사꾼의 세상 사는 이야기가 담긴 ‘혼자만 잘 살믄 무슨 재민겨’의 저자 전우익 선생이었습니다. 책 속에서 이목구비가 또렷한 사진을 여러 장 보았던 게 기억난 것입니다. 기차에서 내려 전 선생님이 내리길 기다렸습니다. 마침내 인사를 드렸고 점심까지 함께 먹게 됐습니다. 즐거운 이야기가 시작됐습니다. 그날 들은 이야기 중 지금까지 기억에 남는 게 있습니다. 책을 읽고 언젠가는 꼭 뵙고 싶었노라 인사드렸을 때 들은 말입니다.

“만날 만한 사람은 만날 만할 때 만나기 마련이지요.” 꾸밈없는 백발의 노인, 허름하면서도 편안한 옷차림과 유독 눈길을 끌던 흰 고무신, 그리고 형형한 눈빛이 지금도 기억에 남아 있습니다. 세월에 잘 익은 그분이 들려준 이야기는 씨앗처럼 남았습니다. 만날 만한 사람은 만날 만할 때 만나는 법입니다. 세상을 살아가며 좋은 사람을 지나치는 일이 없도록 좋은 사람으로 살아가는 것은 그만큼 소중한 일입니다. 모든 만남 속에 담긴 복을 고마움으로 누린다면 우리 삶은 신비한 기쁨으로 가득 차지 않을까요.

한희철 목사(정릉감리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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