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박종순 (26) 암 진단받고 당장 입원하라는 목사가 설교하러…

입원 앞두고 설교 약속 어길 수 없어 정해진 일정 마무리하고 입원…다행히 병 깊지 않아 일주일 만에 퇴원

박종순 목사(왼쪽 두번째)가 지난 9일 미국 뉴저지주 웨인 베다니교회에서 열린 ‘2019 선교적교회 콘퍼런스’에서 성찬식을 인도하며 위암 수술 이야기를 하고 있다.

교회에 도착했다. 차에서 내리자 교인들이 반갑다고 인사를 했다. 차 안에서 많은 근심을 했지만, 교인들을 만나니 언제 그랬냐는 듯 미소가 나왔다. 반갑게 인사하고 몇몇 교인과는 안부를 나눴다.

단에 올랐다. 준비한 대로 설교를 했다.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에 동참하는 삶을 살기로 다짐한 예배였다. 나의 고난을 교인들에게 말하고 싶었다. ‘절 위해 기도해 주세요. 곧 수술받으러 갑니다.’ 생각만 했고 말로 꺼내지는 않았다.

설교를 마치고 방으로 돌아오니 휴대전화 문자 메시지가 와 있었다. “목사님, 할렐루야 축구단입니다. 내일 동대문경기장에서 멕시코와 친선경기가 있습니다. 확인차 문자 드립니다.” 내가 이사장으로 있던 축구단이 국제경기를 한다는데 안 갈 수가 없었다. “내일 뵙겠습니다”라고 답을 보냈다.

봄바람이 원래 차다. 암 진단을 받고 나니 매사가 조심스러웠다. 아프다는 소릴 들어서인지 더 춥게 느껴졌다. 축사도 하고 축구경기도 관람했다. 경기가 끝난 뒤 집으로 돌아와 주일예배 설교를 준비했다. 주일에는 1부 예배부터 설교했다. 힘차게 설교하고 매 주일 저녁에 하던 교역자 회의까지 인도한 뒤에야 교회를 나섰다.

교회를 나오니 이미 어둠이 깊었다. 병원에서는 언제 입원할 수 있는지 계속 연락해 왔다. 이미 몇몇 장로님들께 수술을 받아야 한다고 말해 두었다. 장로님들도 빠른 입원을 권했다. “목사님, 어서 입원하셔서 수술받으시지요. 병원에서도 급히 수술하자는데 왜 기다리십니까.” “장로님 내일 A장로님이 남동공단에서 공장 준공식을 하잖아요. 준공 예배 설교까지는 하고 입원하겠습니다.”

마음대로 아플 수도 없는 게 목사다. 이미 정해진 일은 해야 한다. 그것도 설교이지 않은가. 설교 약속을 어길 수는 없다. 새벽 예배를 마치고 남동공단으로 향했다. 나를 기다리던 장로님은 연신 죄송하다고 했다. 암 진단받고 당장 입원하라는 목사가 설교하러 왔으니 그럴 법도 했다. 죄송할 일이 아니었다. 미리 약속한 일인데 당연한 일이었다. 주님 안에서 사업이 번창하길 기도했다.

“교회로 갑시다.” 장로님들이 병원으로 가는 게 좋겠다고 했지만, 교회로 돌아갔다. 사무실에 도착해 책상 정리를 한 뒤 원고를 쓸 수 있는 준비만 해서 병원으로 갔다. 가족들은 이미 입원에 필요한 물건을 챙겨 병원으로 떠났다.

입원한 뒤 3일 동안 재검사를 받았다. 틈틈이 신문에 연재하던 칼럼도 썼다. 언제 퇴원할지 몰라 설교도 미리 써 뒀다. 막상 입원하니 마음은 편했다. 찬송가도 부르고 기도도 하며 검사를 받았다. 다행히 암이 깊지 않았다. 수술을 받았다. 위 일부를 잘라내는 수술이었다. 마취에서 깨자 극심한 고통이 찾아왔다. 일생 느껴본 일이 없는 아픔이었다.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을 생각했다. 주님의 고통은 얼마나 크셨을까. 고통과 인내의 십자가를 날 위해 대신 지셨다고 생각하니 눈물이 흘렀다. 1966년 목사안수 받고 셀 수 없이 많은 설교를 했다. 그런데 정작 예수 그리스도가 느꼈을 아픔의 깊이와 넓이를 헤아리지 못했다. 주님이 수술을 통해 그 고통을 조금이나마 느끼게 해 주셨으니 이 또한 감사할 일이다.

나는 당시 아픔을 성찬식 때 종종 이야기한다. 예수 그리스도의 아픔을 함께 느끼기 위해서다. 주님은 나를 기념하라 하셨다. 우리는 그 아픔과 인내, 희생을 마음에 새기고 기억해야 한다. 회복하면서 30가지 감사기도를 썼다. 기도를 읽고 또 읽으며 받은 복을 세어봤다. 모든 게 은혜고 모든 게 축복이다. 입원과 수술, 회복까지 일주일이 걸렸다.

정리=장창일 기자 jangci@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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