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박종순 (27) 억울한 옥살이 재미교포 이한탁 구명운동 펼치다

방화범으로 종신형 수감 중인 이씨 화재 원인 밝혀졌는데도 재심 안해… 한국교회 힘 합쳐 풀려나

박종순 목사(왼쪽)가 김영호 미국 이한탁구명위원회 위원으로부터 2016년 4월 서울 마포구 한국교회지도자센터에서 감사패를 받고 있다.

2000년 4월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한 재미교포가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교도소에 억울하게 수감 중이라는 소식을 들었다. 무슨 소리인가 싶어 들어봤다. 종신형을 선고받은 뒤 수감 중인 교포의 이름은 이한탁이었다.

1989년 7월, 이씨는 우울증을 앓고 있는 딸과 미국 펜실베이니아의 한 교회 수련원을 찾았다. 그런데 하필 그날 밤 수련원에 화재가 발생했다. 이씨는 살았지만 딸이 목숨을 잃고 말았다. 슬픔도 잠시, 이씨가 영어를 잘하지 못하자 초동 수사를 하던 경찰들이 그를 방화범으로 오인한 것이었다. 느닷없이 딸의 살해범이 됐다.

재판 결과는 종신형이었다. 사정을 들어보니 억울한 일이었다. 소수민족에 대한 졸속 재판이라는 주장도 이해됐다. 화재 원인도 누전으로 밝혀졌는데 재심도 없었다. 이미 교포들이 대대적인 구명운동을 진행하고 있었다.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교계 지도자들을 만나 논의했다. 모두 내 뜻에 공감했다. 이씨를 돕기 위한 구명운동을 대대적으로 벌이기로 했다. 그해 5월 18일 서울 조선호텔에서 이한탁 구명운동 한국본부를 출범했다. 나는 대표회장을 맡았다.

한국본부를 출범한 건 미국에 한국에 대한 바른 시각을 심어주고 교포들의 인권 보호를 위해서였다. 출범식에서 나는 “일방적 재판 때문에 종신형을 받은 이한탁씨 사건은 백인사회의 두꺼운 벽과 소수민족이 처한 열악한 현주소를 보여주는 일이다. 한국교회가 서명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해 억울한 이씨에게 격려와 함께 동포애를 확인시켜 주자”고 했다.

운동본부는 2만여명의 서명을 받았고 3만5000달러를 모금했다. 나도 이씨를 면회하기 위해 교도소를 찾았다. 뉴욕에서 차로 5시간이나 가야 했다. 먼 곳이었지만 떨리는 마음으로 갔다.

면회하는 내내 이씨는 눈물을 감추지 못했다. 울면서도 “저는 죄가 없습니다”라고 호소했다. 진심이 전해졌다. 우리 사이를 막고 있는 벽이 없다면 그를 안아주고 싶었다. 오랜 수감 생활로 건강도 좋아 보이지 않았다. 기도해 준 뒤 헤어졌다.

그 뒤 나와 이씨는 편지를 주고받으며 서로의 안부를 물었다. 나는 꿈과 희망을 전했다. 결국, 이씨는 2014년 화재감식전문가의 무죄 주장으로 재심이 받아들여지면서 풀려났다.

25년 억울한 옥살이에서 자유로워진 것이었다. 모두의 기쁨이었다. 미국처럼 엄격한 법치주의 국가에서 종신형 선고를 받은 사람이 25년 만에 석방된 건 기적과도 같았다. 운동본부 관계자들과 감사기도를 드렸다. 모든 게 주님의 은혜였다.

석방된 이씨와 전화통화를 했다. 기쁨을 나눴다. 그가 흘렸던 감격의 흐느낌이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난다. 그는 신앙의 힘으로 긴 수감생활을 견뎠다. 미국 구명위원회가 면회를 갈 때마다 “하나님은 나의 편이다. 기도 생활을 하고 있다. 기도 부탁드린다”고 했다고 한다.

나는 2016년 미국 이한탁 구명위원회로부터 감사패를 받았다. 그날 나는 담담하게 소감을 전했다. “같은 동포로서 이씨의 억울한 사연을 외면할 수 없었습니다.” 성경도 그렇게 말하고 있다. 선한 사마리아인 이야기만 봐도 그렇지 않은가.

정리=장창일 기자 jangci@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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