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체 질서유지에 있어 최종 기대야 할 것은 규범의 내면화
대한민국 리더 자처한다면 사람들이 보는 곳에선 정의와 공정을 외치고,
숨어서는 불법과 부도덕을 자행하는 부자유한 삶을 살아선 안 돼


A는 B가 거주하는 주택에 근접한 도로에서 확성기를 사용하여 무언가를 선전하고 있었다. 그 행위가 몇 시간째 계속되자 B는 A에게 가서 주거평온의 자유가 침해당하고 있다며 A에게 방송을 그만두라고 하였다. 이에 대해 A는 자신의 표현의 자유를 주장하며 방송을 멈추지 않았다. 참다못한 B는 A를 고소하였고, 이로 인해 A는 이웃주민의 ‘수인한도(受忍限度)’를 넘어 방송하였다는 이유로 경범죄처벌법 위반죄로 처벌을 받았다. 앙심을 품은 A는 ‘이런 법이 어디 있냐’며 다시 와서 방송하였고, B의 고소로 A는 또 처벌을 받았다. 이후에도 A가 방송하고, B는 고소하는 일이 되풀이되고 있다.

이 가상 사례에서 A와 B 두 사람의 충돌을 해결하는 길은 A가 방송을 그만두는 것인데, 이를 위해서는 법을 위반하고 있음을 자각하고 법을 지켜야겠다는 A의 결심이 선행되어야 한다. 여기에서 우리는 법을 지키도록 함에 있어서는 처벌보다는 공동체 구성원들로 하여금 법을 위반하지 않기로 마음먹게 하는 것이 근본적인 처방책임을 알게 된다. 아이러니하게도 ‘사회질서유지’ 기능을 가진 법이 그 기능을 제대로 수행하기 위해서는 사람들이 법을 지켜야 한다는 것이다.

규범인 법과 도덕률이 정당성이 인정되는 때에도 이를 수용하는 태도는 사람마다 다르다. 규범이 자아의 실현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을 거부하는 사람들은 규범을 자유의 제약으로 여긴다. 다시 말해, 이들은 자신의 가치나 목적을 자신이 자발적 독립적으로 정하지 않고, 규범을 통한 규제와 간섭으로 정하는 것은 자유의 침해라고 생각한다. 이들은 공동체가 정한 규범을 자신의 가치로 내면화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고, 자신의 가치나 이익에 반하는 규범을 지켜야 할 때면 내면에서 갈등을 겪을 가능성이 클 것으로 생각된다. 남이 보지 않는다면 별다른 가책 없이 규범을 어길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와는 반대로 공동체의 합의로 제정된 규범이 자유를 보장하거나 확장시켜 준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규범을 자신의 가치로 내면화하는 것에 대한 거부감이 적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사람들은 보는 사람이 있든 없든 상관없이 규범을 지킬 가능성이 클 것이다.

위와 같은 규범에 대한 사람들의 상반된 태도는 ‘자유주의’와 ‘공동체주의’의 대립과 맥락을 같이 하는데, 이는 인간의 본성에 관한 견해의 차이에서 출발한다. 인간이 본성상 공동체적이라는 견해는, 인간은 천성적으로 공동체성이 있으므로 공동체에서 사는 것이 혼자 사는 것보다 자연적이라고 주장한다. ‘인간은 정치적 동물’이라는 아리스토텔레스의 명제에도 이러한 전제가 깔려 있다. 이에 대해 에피쿠로스는 ‘인간은 본성적으로 공동체에서 사는 데 적합하지 않다’고 하며 아리스토텔레스의 주장에 반대한다. 에피쿠로스의 계보를 잇는 자유주의자들은 공동체 구성원 각자는 공동체의 성립 이전에 이미 존재하고 있는 자유롭고 독립적인 자아(이른바 ‘무연고적 자아’)를 가지고 있으므로, 개인의 가치와 목적을 형성함에 있어 구성원들로 하여금 자발적으로 선택할 수 있게 해야지 공동체가 개입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한다. 이들은 ‘모든 법은 자유의 침범’이라는 제러미 벤담의 주장처럼, 원칙적으로 규범이 자유의 제약이라고 본다. 이에 대해 아리스토텔레스의 계보를 잇는 공동체주의자들은 공동체의 구성원은 공동체 및 공동체의 나머지 구성원들과 분리해서는 온전히 파악할 수 없는 자아(이른바 ‘연고적 자아’)를 가지고 있다고 본다. 이들은 공동체가 그 구성원들을 공동체 활동에 자발적으로 참여시켜 그들로 하여금 공동체적 덕성을 함양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나아가 법이 있으면 소수의 난폭자로부터 다수 시민의 자유를 보호할 수 있듯이 규범은 자유의 제약이 아니라 보장이나 확장이 된다.

공동체의 질서유지에 있어 최종적으로 기대해야 할 것은 규범의 내면화이다. 헌법을 비롯한 공동체의 규범은 사회질서유지 기능을 수행하는 외에도 구성원들로 하여금 공동체의 목적이나 목표를 인식시키고 지향하게 하고, 공동체 구성원들을 연대하고 통합시키는 기능도 수행한다. 하지만 규범이 그러한 기능을 온전히 달성하기 위해서는 공동체 구성원들이 규범을 지키겠다고 마음먹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지금 우리가 속한 공동체는 대한민국이다. 스파이도 아니고 나그네도 아니라면 대한민국의 규범을 자신의 가치로 통합시키기 위해 노력하여야 한다. 예수는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를 자유롭게 하리라”고 선포했다. 이는 인간이 진리의 법을 단순히 아는 데 그치지 않고 자신의 가치관이나 성품으로 내면화시켜야 하고, 이것이 이루어지면 법과의 갈등이 사라져 자발적으로 법을 지킬 수 있게 됨으로써 자유를 누린다는 뜻이다. 대한민국의 리더라고 자처하는 자라면 사람들이 보는 곳에서는 정의와 공정을 외치고, 숨어서는 불법과 부도덕을 자행하는 부자유한 삶을 살아서는 안 된다. 유불리를 떠나 공동선인 규범을 지켜내는 자가 대한민국의 주인이고, 진정한 자유인이다.

천종호 부산지방법원 부장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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