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9년 4월 15일, 10~67세 축구팬 96명이 영국 셰필드 힐스버러 스타디움에서 압사했다. 교통체증으로 늦게 도착한 수천명의 리버풀 팬들을 경찰이 입석 관중석에 밀어 넣으면서 먼저 입장한 사람들이 관중석 철망에 짓눌려 질식사했다. 펜스 일부가 무너진 뒤에도 경찰은 상황을 파악하지 못했다. 탈출한 관중이 응급환자를 광고판 들것에 싣고 내달릴 때 경찰은 막아섰다. 훌리건의 난동으로 여긴 것이다.

황당한 건 경찰만이 아니었다. 사람들이 죽어가는데 경기장 밖에 대기 중인 앰뷸런스 42대 중 출동한 건 3대뿐이었다. 언론은 리버풀에 대한 비난으로 도배됐다. “술 취한 팬들이 입장권도 없이 관중석에 밀려들었다” “도둑 떼가 사망한 팬들을 상대로 강도질을 했다”는 식의 출처 모를 보도가 쏟아졌다. 압권은 루퍼트 머독이 소유한 타블로이드 ‘더 선’ 1면이었다. ‘진실’이라는 제목의 기사는 리버풀 팬들이 시신의 주머니를 털고, 경찰을 향해 오줌을 갈겼으며, 인공호흡을 하는 경찰들을 두들겨 팼다고 전했다. 정보의 출처는 현지 경찰과 보수당 하원의원이었다. 에디터는 “정보원이 거짓말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다”고 변명했다.

천만에. 당시 경찰에는 거짓말할 이유가 차고 넘쳤다. 관중석 상황을 모른 채 사람들을 좁은 공간으로 밀어 넣어 참사를 만든 건 경찰이었다. 피해자들을 탓하지 않으면 책임은 경찰이 져야 했다. 마거릿 대처의 보수당 의원에게도 경찰을 두둔할 이유는 많았다. 사우스요크셔 경찰은 대처가 업적으로 자랑하는 80년대 광부 파업 진압에 공을 세운 주인공이었다.

힐스버러 참사에 대한 조사는 보수당과 노동당 집권기를 오가며 최소 5차례에 걸쳐 이뤄졌다. 사고 이듬해인 90년 테일러 보고서가 작성됐고, 첫 번째 검시관의 조사에 이어 97년에는 법원 재조사가 이뤄졌다. 노동당 정부에서 이뤄진 이 조사가 결실 없이 끝난 뒤 희생자들은 혹독한 시간을 보냈다. 이 무렵 나온 게 당시 기자였던 보리스 존슨 현 총리가 쓴 비난 칼럼이었다. 그는 리버풀 시민들을 향해 ‘희생자 놀이를 그만두라’고 조롱했다. 억울한 건 알겠는데 이제 그만하자, 존슨은 영국 사회에 퍼진 힐스버러 피로감을 그렇게 이용했다.

하지만 유족들은 포기할 생각이 없었다. 그들의 끈질긴 노력으로 2009년 힐스버러 독립 패널의 조사가 개시됐다. 패널 보고서(2012)에서 경찰의 충격적인 은폐 행각이 드러났다. 경찰은 어린이까지 포함해 시신의 피를 뽑아 혈중알코올농도를 측정하고 피해자들의 전과기록을 뒤졌다. 술 취한 훌리건들의 난동으로 사건을 조작하기 위해서였다. 목격자 164명의 진술 중 116건은 경찰에 유리하게 수정됐다. 의료진 대응도 형편없었다. 희생자 96명 중 41명은 제때 응급조치만 이뤄졌어도 생존 가능성이 있었다는 게 확인됐다. 보고서를 토대로 법원은 2016년 희생자 96명이 과실치사로 사망했다고 결론 내렸다. 경기장 안전책임자였던 데이비드 두켄필드 전 경찰서장 등 6명이 과실치사, 증거은닉 등 혐의로 기소됐다. 그리고 지난달 7일, 두켄필드는 법정에 섰다. 사고 발생 30년5개월22일 만이었다.

지난달 31일 세월호 참사 당시 바다에서 발견된 10대 희생자가 20분 내 이송이 가능한 헬기 대신 5척의 배를 바꿔가며 4시간41분 만에 병원으로 옮겨졌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맥박이 살아있던 학생 대신 헬기를 탄 것은 해경청장이었다. 이 기막힌 발표 아래 줄줄이 악플이 달렸다. “지겹다, 그만 좀 해라” “총선 다가오니 또 시작이다” “그만 우려먹자”. 세월호 진상조사를 하면 국가 시스템 전체가 멈춰서는 건가. 아니면 세월호란 단어가 공론의 장에서 금기어라도 된 걸까. 조사위가 조사를 하는데 대체 어느 대목이 지겹다는 건지 나는 이해할 도리가 없다. 그러나 걱정할 거 없다. 관전자보다 피해자들이 훨씬 끈질기다. 리버풀 유족은 끝까지 갔다. 세월호도 그렇게 하면 된다. 끝나지 않은 긴 이야기의 마지막 장이 시작됐다.

이영미 온라인뉴스부장 ymle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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