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금강산관광지구를 시찰하며 관계자들에게 지시하는 모습. 노동신문은 지난달 23일 이를 보도하면서 김 위원장이 금강산관광지구 내 남측 시설의 전면 철거를 지시했다고 전했다. 뉴시스

북한은 지난달 31일 600㎜ 구경의 초대형 방사포를 연속 발사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문재인 대통령에게 모친상을 위로하는 조의문을 보낸 지 하루 만이다. 친필 조의문을 보내는 한편 도발을 멈추지 않는 북한의 이중적 태도는 살얼음판 같은 남북 관계의 현주소를 그대로 드러낸 것이다.

지난해 남북은 평창 동계올림픽에 대표단을 보내겠다는 김 위원장의 신년사와 함께 ‘1월의 봄’을 맞았다. 북한이 그 두 달 전까지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쏘아올리며 ‘국가 핵무력 완성’을 선언한 점을 감안하면 문재인정부에는 기적 같은 일이었다. 남북 정상은 지난해에만 세 차례 만났고, 4월과 9월 두 차례 ‘정상 합의문’을 발표했다. 양 정상은 남북 경제협력의 상징인 금강산 관광과 개성공단 정상화도 천명했다.

그러나 지난 2월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 노딜’ 이후 모든 게 달라졌다. 북한은 미국과의 비핵화 협상이 진전되지 않자 남북 관계를 뿌리째 흔들고 있다. 북한은 중재자를 자임한 문재인정부를 향해 더 이상 북·미 대화에 끼어들지 말라고 경고했다.

뿐만 아니라 우리 정부의 인도적 교류·협력 및 지원 사업에도 일절 반응하지 않고 있다. 올해 초 정부가 지원키로 한 독감 치료제 타미플루는 북측의 거부로 군사분계선(MDL)을 넘지 못했다. 1300억원 상당의 국내산 쌀 5만t도 끝내 선적하지 못했다. 매주 한 차례 열기로 했던 개성 남북공동연락사무소 소장회의는 2월 22일 이후 단 한 차례도 열리지 않았고, 김 위원장은 급기야 지난달 23일 금강산 관광지구 내 남측 시설의 전면 철거를 지시했다.

그러는 사이 북한의 비방 수위는 계속 높아졌다. 김 위원장은 지난 4월 최고인민회의 시정연설에서 문재인 대통령을 향해 “오지랖 넓은 중재자 행세를 하지 마라”고 일갈했다. 조국평화통일위원회는 지난 8월 문 대통령의 평화경제 구상에 대해 “삶은 소대가리도 웃을 노릇”이라고 비아냥거렸다.

전문가들은 문재인정부가 현 상황을 타개하려면 북한이 돌변한 이유를 정확히 파악하는 동시에 거듭된 도발과 무리한 언행에는 단호히 대응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홍민 통일연구원 북한연구실장은 4일 “김 위원장이 금강산의 남측 시설 철거를 지시한 것은 대남 기조 변화를 결정했다는 것”이라며 “기존의 남북 관계를 깨고 패러다임을 바꾸고 싶어 한다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 때문에 정부가 북한에 금강산 발전 구상 논의를 제안할 게 아니라 북한이 비핵화 과정에서 원하는 체제 안전보장 문제 등이 진척될 수 있도록 더 적극적인 역할을 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아울러 현 정부가 현실을 직시하고 임기 내 모든 것을 하려고 서두르지 말아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신범철 아산정책연구원 안보통일센터장은 “정부가 임기 내 남북 관계에 있어 획기적인 변화가 이뤄지기 어렵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며 “그렇게 되면 북한의 잘못에 대해서도 따끔하게 지적할 수 있을 것”이라고 주문했다. 신 센터장은 “오랜 시간이 걸리더라도 남북 간 상호 예측 가능한 관계를 만들지 않으면 지난해 세 차례 정상회담에도 불구하고 결국 원점으로 돌아가는 일이 미래에도 반복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정부가 남북 관계 개선을 위한 노력을 계속 기울이되 북한의 잘못에 대해선 분명하게 문제제기를 해야 지금과 같이 모든 것이 하루아침에 뒤집어지는 사태를 피할 수 있다는 주문인 것이다.

최승욱 손재호 기자 applesu@kmib.co.kr

트위터페이스북구글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