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세 시대 ‘나이 수업’] 얻으려 애쓴 삶의 끝에서 비움으로 성숙해진다

<일러스트=이영은>

지은 지 30년 넘는 아파트에 사는 즐거움은 요즘처럼 깊어가는 가을날 붉고 노랗게 물든 이파리들을 머리에 이고 있는 커다란 나무를 바라보거나 그 밑을 지나는 것이다.

두 팔로 도저히 끌어안을 수 없을 만큼 굵은 밑동을 갖기까지 도대체 얼마의 시간이 흐른 것일까. 나처럼 작은 인간의 나이와는 견줄 수 없는 나무의 나이가 까마득하고 무거워 마음속으로 ‘나무님’이라 조용히 불러보곤 한다. 내 속내를 아는지 모르는지 무심한 나무는 불어오는 가을바람에 몸을 내맡긴 채 말이 없다. 나는 나무처럼 나이 들어가고 싶다. 나무처럼 늙고 싶다.

요즘 들어 노인복지관이나 교회 노인대학에서 수업할 때마다 ‘따지고 보면 우리는 모두가 인생 선후배지간’이라 하신 친정어머니 말씀이 자주 떠오른다. 어머니는 너나 할 것 없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인생길을 걸어가는 동행이며 동반자이니 나이 많다 자랑할 것도 없고 젊고 힘 있다고 뽐낼 것도 아니라고 늘 말씀하셨다. 그래서 어떤 때는 노인대학 학생들께 호칭을 골라보시라고 한 다음 원하실 경우에는 어르신이 아닌 선배님으로 불러드리는데 다들 웃으며 좋아하신다.

최선을 다해 정성껏 살아온 인생을 남이 아닌 나 스스로 칭찬하고 위로하는 일이야 노년에 해야 할 당연하고 바람직한 일이다. 하지만 지나침은 부족함만 못해서 자신의 살아온 이력을 내내 자랑만 하면 꽃노래도 한두 번이지 주위 사람들이 지쳐서 피하고만 싶어진다. 험난한 고생과 남다른 도전, 열정과 헌신으로 이뤄낸 성취의 개인사는 칭송받고 귀감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자신이 모두의 기준이고 모범이라는 생각은 자칫 사람들을 도망가게 만들 수 있다.

성숙한 모습으로 나이든 어른들을 보면 절대 자신의 것만을 고집하지 않는다. 자신이 살아온 세월이 귀하고 소중한 만큼 다른 사람이 살아온 길도 소중하기 때문에, 자기주장을 강하게 하더라도 결코 남을 무시하거나 우습게 여기지 않는다. 늘 긍정적이며 삶에 대한 낙관과 꿈을 버리지 않기에 아름다운 세상에 대한 소망을 간직하고 있다.

성숙한 분들의 넉넉함은 경제적인 이유에서 나오는 게 아니다. 돈이 있든 없든, 남이 높은 평가를 하든 알아주지 않든, 자기 자신의 자리를 지키면서 하고 싶은 일, 해야 하는 일, 할 수 있는 일을 해나가기 때문에 누구보다도 행복하고 보람 있는 노년을 보내면서 당당하고 여유롭게 생활하신다.

한 가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지금 힘들고 어렵게 사시는 어르신들이 결코 젊은 시절의 무능함 때문에 그렇게 사시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열심히 땀 흘리며 살아도 대를 물려 이어지는 구조적 빈곤 속에서 노후 대책을 생각하기는커녕 먹고살기에 급급해 앞만 보고 달려온 분들의 굽은 어깨와 휘어진 허리, 주름진 얼굴에 담긴 아픔은 누구라 할 것 없이 우리 모두가 나눠서 져야 할 짐이다. 이 짐을 함께 나눠서 질 때 모두가 아름답고 성숙한 노년을 맞을 수 있다.

사람들은 노년 이야기를 좋아하지 않는다. 노후준비를 걱정은 하지만 노년을 직접 바라보려 하지 않는다. 노후준비는 나의 일이지만 늙는 것은 여전히 남의 일인 것이다. 그러나 늙음을 저만치 치워 놓는 것이 아니라 늙음과 더불어 함께 살아갈 때, 우리는 온전한 인생을 알 수 있고 살 수 있다. 채워도 채워도 모자라기만 하고 가져도 가져도 목마르기만 한 삶이 아니라 비우고 덜어내는 노년, 얻으려 애쓴 삶의 끝에 이르러 내려놓는 삶이었으면 좋겠다.

가까운 가게에 갈 때는 슬리퍼를 신고 가지만, 먼 길을 떠나기 전에는 대부분 운동화를 찾아 신고 끈을 새로 묶는다. 노년을 알고 인생길을 간다는 것, 잘 늙는다는 것이 무엇인지 물으며 걸음을 옮겨놓는 것은 슬리퍼 대신 운동화를 준비하는 일이다. 이것이 바로 나이 듦 수업이다. 열심히 하다 보면 나도 좋은 인생 선배가 되리라는 희망을 품고 오늘도 나는 공부하러 어르신들을 만나러 간다.

“늙은 자에게는 지혜가 있고 장수하는 자에게는 명철이 있느니라 지혜와 권능이 하나님께 있고 모략과 명철도 그에게 속하였나니.”(욥 12:12~13)

유경 어르신사랑연구모임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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