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려움 속 목회자 조롱하는 ‘영적 깡패’들에 맞서

안호성 목사의 사자처럼 담대하라 <11>

울산온양순복음교회 성도들이 2007년 1월 주일 저녁예배 시간에 찬양하고 있다.

교회를 떠날 사람은 반드시 떠난다. 불만을 느끼고 떠난다 해서 그것을 맞춰주고 그 사람에게 매달리면 잠깐은 붙잡아 둘 수 있다. 하지만 그런 사람들은 언젠가 또 다른 이유로 떠난다.

성도들은 한 가정, 한 사람이 교회에서 나가면 그제야 문제를 인식한다. 하지만 목회자는 수개월 전부터 그 영혼의 심령의 강퍅해짐과 은혜의 메마름이 보인다.

자아가 하나님의 뜻과 충돌하며 말씀을 받아들이지 않고 튕겨내는 모습을 보면 마음이 아팠다. 어떻게 하든 교만한 성도를 회복시키려 피를 토하듯 그를 향해 말씀을 선포했다.

그러나 도저히 돌아서지 않고 내 노력으로 안 되는 선을 넘는 순간이 있었다. 더 이상 거룩한 분노가 그에게 나오지 않을 때 그때가 그 영혼이 내 손에서 떠나는 시간이었다. 그런 자를 인간적 감정이나 상황적 궁핍함에 잡아놓으려 해서는 안 된다. 그래서 교회를 떠난다는 사람에게 매달리거나 붙잡지 않았다.

“충분히 기도해 보았습니까. 후회하지 않겠습니까.” 이렇게 물어보고 뒤도 돌아보지 않고 보냈다. 어차피 떠날 사람에게 매달리면 영권만 손상을 입었다. 남아있는 성도들에게도 권위가 떨어지고 목회 사역이 위축되는 결과로 이어진다.

2004년 교회를 개척하고 광야의 시간을 보내고 있을 때다. 몇 안 되는 성도 중 다수를 차지하던 한 가정이 한꺼번에 나간 적이 있다. 그들은 사사건건 이런저런 요구를 했다. 그들은 교회를 자기중심으로 ‘경영’하고 싶어했다.

“안 목사님, 그렇게 하면 목회가 되겠습니까.” “목사님, 그런 설교는 그만하시죠.” 그들은 목회자조차 자기 소유물처럼 부리고자 했다. “아이고, 저희와 같이하셔야 이 울산 땅에서 밥은 먹고 살지 않겠습니까.” 그들은 조롱하듯 목회자를 길들이려 했다. 미자립교회를 협박하는 ‘영적 깡패’나 다름없었다.

이런 사실을 알지 못했던 다른 성도들은 아우성치기 시작했다. “아니, 성도 하나가 얼마나 귀한데 그러세요. 그 가정을 설득해서 교회로 다시 데려오시죠.” 남은 성도들이 압력을 가했다. 차마 그들이 했던 모욕과 조롱을 털어놓을 순 없었다.

“거참, 안 목사님. 교회에서 내보낼 때는 언제고 인제 와서 왜 그러십니까.” 등 떠밀리듯 회유하러 한번 찾아가다가 하나님의 불같은 진노를 느꼈다. 그 길로 돌아와 강단에서 선포했다.

“앞으로 주의 종에게 이런 짓 시키지 마십시오. 나는 다시는 주의 종의 권위를 포기하고 사람 앞에 무릎 꿇거나 매달리지 않을 것입니다. 이게 싫거든 여러분이 나가셔도 좋습니다.” 사실은 모험이었다. 내 삶과 가정, 자녀들의 미래를 송두리째 건, 두렵고 버거운 선포였다.

그때 배운 것이 있다. 주의 종은 눈앞에 죽을 것 같은 위기와 형편에도 영적 권위를 절대 포기해선 안 된다는 것이었다. 밥을 굶을지언정 절대 사람의 감정이나 관계에 호소하며 먹고 살기 위해 교회를 경영해선 안 된다는 것이었다.

물론 목회자가 성도가 나가든지 말든지 아집과 독선으로 마음대로 목회하라는 뜻은 아니다. 성도가 나가는 이유가 본질적인 것인가를 보라는 것이다. 비본질적이고 지극히 개인적이며 감정적인 것이라면, 불순종과 비신앙적 삶에 스스로 찔리고 부딪히는 경우라면 나가는 게 맞다.

그 가족이 나가고 교회가 문 닫고 망할 것처럼 두려웠다. 하지만 가감 없이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을 담대히 선포했다. 그런데 희한한 일이 벌어졌다. 2개월 만에 성도가 2배로 늘어난 것이다.

‘아, 하나님의 말씀을 타협하고 훼손하면서까지 사람을 붙들어서는 안 되는구나. 하나님께선 회복시킬 자는 회복시키고 떠날 자는 떠나게 하시는구나. 목회는 내 권한이 아니라 하나님의 것이구나.’

목회자는 보이는 상품을 파는 자가 아니다. 보이지 않는 소중한 영적 가치를 전하는 자다. 영권이 무너지고 손상당하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기력한 존재가 되고 만다. 어떤 상황에도 영적 자존심과 권위를 생명처럼 지켜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었다.

그때 교훈은 지금도 또렷이 남아 있다. ‘절대로 하나님만 두려워하라. 그러면 사람이 두렵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사람을 두려워하기 시작하면 그때부터 하나님이 가볍게 보일 것이다.’

안호성 목사

정리=백상현 기자 100sh@kmib.co.kr

트위터페이스북구글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