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으로부터 400여년 전, 스페인의 작은 마을 라만차에서 돈키호테는 늙은 말 로시난테, 그의 시종 산초와 모험을 떠난다. ‘불의를 바로잡고 무분별한 일들을 고치고 권력의 남용’을 막아 ‘황금시대’를 여는 것이 여정의 목표였다. 이 사람은 편력기사에 대한 책을 너무 탐독한 나머지 자신이야말로 이곳저곳을 떠돌며 정의로운 일을 하는 데 적합한 기사라고 생각한다. 당연히 돈키호테는 엉뚱한 행동으로 가는 곳마다 놀림을 당하고, 두들겨 맞으며 상처는 깊어지고 참혹한 몰골로 변해간다. 그럴수록 돈키호테는 자신의 가치를 높이 끌어올려 모순된 세상에 당당히, 정의롭게 맞선다. 매번 반복되는 좌절 속에서도 너덜너덜해진 장비를 새롭게 갖춰 다시 길을 떠난다. 그가 회복하려는 황금시대를 위하여 미친 듯이 돌격하는 돈키호테.

그런데 수많은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돈키호테가 회복하고자 했던 황금시대는 어떤 시대일까. 부자들을 위한 나라였을까. 아니다. 돈키호테는 이렇게 말했다. “네 것과 내 것의 구분 없이 모든 것을 함께 소유하는 사회, 먹을거리를 위해 힘들여 일하지 않아도 되고, 정의는 강물처럼 흐르고, 샘물과 벌들과 떡갈나무 등 자연과 인간이 조화를 이루고, 악덕이 없고, 여성과 고아, 가난한 사람도 존중받고 살 수 있는 사회가 바로 황금시대이고, 나는 억울함은 풀어주고, 비뚤어진 것은 바로잡아주고, 불쌍한 사람은 보호해주기 위해 세상에 태어났다”고 말한다. 돈키호테는 자신이 뱉은 말을 바로 실천하는 행동가였다. 꼼수나 속임수는 없었다. 불의를 보면 돌격하고 전투에서 패하더라도 언제나 당당하게 스스로를 위무한다. 그리고 자신의 판단에 따라 곧장 움직인다. “자신을 이기는 것이야말로 가장 큰 승리다”라는 그의 말은 사실이었다. 단순한 망상이 아니라 아주 구체적으로 가치 있는 삶에 대해 명상하고 자유와 정의를 구현하기 위해 고군분투했다. 그의 모험담 중에서 빼어나게 아름다운 말들이 전해진다. “구부러진 쟁기의 무거운 쇠갈퀴도 우리들의 어머니인 대지의 자애로운 배를 가르거나 방문할 생각을 감히 하지 않았지요”라고 말하며 자연과 인간의 상보적인 생태계를 그린다. 산초가 우여곡절 끝에 영주가 됐을 때는 이렇게 이야기한다. “자네의 원수와 관련된 소송을 재판할 일이 생길 때는, 자네가 받은 모욕은 머리에서 떨쳐버리고 사건의 진실에만 생각을 집중해야 하네. …그런 일에서 자네가 만일 실수를 저지른다면 대부분의 경우 그 실수를 만회할 방법은 없을 것일세”라고. 한편 어느 시골에서 만난 공작 부부의 환대 속에서 안락하고 풍요로웠던 시간을 보낸 후 자유로운 몸이 되었을 때 돈키호테는 산초에게 말한다.

“산초, 자유라는 것은 하늘이 인간에게 주신 가장 귀중한 것들 중 하나라네. 땅이 묻고 있는 보물이나 바다가 품고 있는 보물도 자유와는 견줄 수가 없다네. 자유를 위해서라면 명예를 위한 것과 마찬가지로 목숨을 걸 만하고, 또 걸어야 하네.” 마지막으로 산초가 섬을 통치하러 가기 전에 “부자가 하는 말보다 가난한 자의 눈물에 더 많은 연민을 가지도록 하게. 그렇다고 가난한 자들의 편만을 들라는 건 아니네. 정의는 공평해야 하니까 말일세. 가난한 자의 흐느낌과 끈질기고 성가신 호소 속에서와 마찬가지로 부자의 약속과 선물 속에서도 진실을 발견하도록 해야 하네”라고 통치자의 덕목을 강조한다. 공동체의 가치를 귀하게 여기고, 타자를 향해 무한히 열린 이타심의 소유자, 인류의 보편적 가치들인 생태계 보전과 정의, 자유, 건강과 안전을 지키기 위해 정치하게 실천한 돈키호테. 어린 시절 접했던 돈키호테는 거대한 풍차를 향해 돌진하는 미치광이였다. 짧게 축약된 출판물로만 봤기 때문이다. 그러다 완역된 ‘돈키호테’를 다시 읽으며 정의와 자유를 사수하는 예외적인 인물, 돈키호테를 계속 발견한다. 비록 ‘하얀 달의 기사’와의 싸움에서 패해 기사로서의 꿈을 접고 고향으로 돌아가야 했지만, 그는 승자독식과 약육강식 사회에 철저하게 저항했다. 지금이야말로 다시 돈키호테가 필요한 시간. 돈키호테야! 돌아와 줘.

최연하 사진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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