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저녁 약속을 마치고 차량공유서비스인 우버를 탔을 때 얘기다. 중년 백인 남성이 운전사였다. 그는 “직장을 다니고 있는데, 수입이 충분치 않아 파트타임으로 가끔 우버를 한다”고 먼저 말을 건넸다. 대화를 하다 보니, 화제가 내년 미국 대선으로 이어졌다. 그는 “(민주당의 대선 경선 후보인)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을 지지한다”고 말했다. 그래서 “당신은 민주당이 내년 대선에서 이길 것이라고 생각하느냐”고 물었다. 평범한 미국 사람들의 의견이 듣고 싶어서 던진 질문이었는데, 그는 “민주당이 이길 수 있겠어?”라는 의미로 받아들인 것 같았다. 우버 운전사는 “당신이 트럼프 지지자라면 돈을 안 받을 테니, 지금 여기서 내려도 된다. 나는 트럼프 지지자는 안 태운다”고 정중한 톤으로 말했다. 오해는 풀렸지만 기사로만 썼던 ‘반(反) 트럼프’ 정서를 실감했던 순간이었다.

요즘 미국 정치를 보면 한국과 닮아도 너무 닮았다. 트럼프 시대의 미국도 완전히 둘로 갈라져 있다. 광화문에 태극기가 있고, 서초동에 촛불이 있는 한국과 다를 바가 없다. 미 NBC방송과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내년 미 대선을 정확히 1년 앞뒀던 지난 3일, 공동 여론조사 결과를 내놓았다. 이 여론조사에서 민주당 지지자의 88%는 트럼프 탄핵에 찬성했으나 공화당 지지자의 90%는 탄핵에 반대했다. 미국의 두 집단은 따로 대규모 집회를 열지 않는 것이 차이라면 차이로 느껴졌다. 지난달 23일엔 미국에서도 ‘동물 국회’가 연출됐다. 공화당 소속 의원들이 하원 비공개 탄핵 조사실에 난입한 것이다. 여야 의원들은 소리를 질러댔다. 한국에서 많이 봤던 모습이다.

여당 의원들이 벙어리가 된 것도 한국과 비슷하다. 워싱턴포스트(WP)는 탄핵 조사를 불러온 ‘우크라이나 스캔들’과 관련해 비판적인 액션을 취하고 있는 공화당 상원의원은 전체 53명 중 3명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대다수는 트럼프 대통령의 기에 눌려 침묵하고 있는 것이다. WP는 공화당 상원의원들이 양심과 정치적 계산 사이에서 갈등하고 있다고 전했다.

대통령의 말이 국민에게 답답함을 주는 것도 공통점이 된 듯하다. 트럼프 대통령의 막말이야 어제오늘 일이 아니지만 최근엔 광기가 더 심해졌다. 그는 탄핵 조사를 주도하는 민주당의 애덤 시프 하원 정보위원장을 향해 “반역죄·사기죄로 심문해야 한다”고 주장했고, 민주당의 리더인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의 면전에서 “3류 정치인”이라고 불렀다. 문재인 대통령이 평양에서 열렸던 월드컵 축구 예선 남북 대결이 무관중·무중계로 치러진 사흘 뒤였던 지난달 18일 청와대에서 주한 외교사절단을 만나 2032년 서울·평양 올림픽 개최에 지지를 당부한 것은 국민 정서를 몰라도 너무 모르는 발언이라는 비판이 제기됐다.

트럼프 시대의 미국을 아무리 얕잡아 봐도 지금 미국에 있는 세 가지가 한국에는 없다. 우선 경제호황이다. 미국의 9월 실업률은 3.5%를 기록하면서 1969년 12월 이후 50년 만에 최저치를 경신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인기는 낮지만, 미국 경제 호황이 계속 이어질 경우 재선될 확률이 높다는 전망이 쏟아지는 이유다.

강력한 야당도 없다. 지리멸렬했던 미국의 민주당은 지난해 11월 중간선거에서 하원을 장악하면서 기력을 회복했다. 트럼프 탄핵에 실패하더라도 탄핵 반대에 표를 던진 공화당 상원의원들이 민심의 역풍을 맞아 민주당이 상원을 탈환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NBC·WSJ 공동조사에서 민주당 지지자들의 85%는 민주당 대선 후보들에게 만족한다고 답했다. 지지자들에게 한숨을 안기는 한국 야당과는 차원이 다르다.

마지막으로 현직 대통령에 대한 탄핵 조사에도 당당히 임하는 공무원들이 미국엔 있다. 현재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에서 근무하는 알렉산더 빈드먼 육군 중령 같은 사람이 대표적이다. 개인에도 충성하지 않고, 조직에도 충성하지 않고, 오로지 대한민국에만 충성하는 공무원들이 한국에도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

워싱턴=하윤해 특파원 justic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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