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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 DNA’ 심어준 아버지 소천 통해 ‘기도 사명’ 확고해져

최상일 목사의 ‘민족의 예배를 회복하라’ <8>

최상일 목사의 아버지인 최덕순 예광감리교회 원로목사가 2016년 서울 숭실대 한경직기념관에서 열린 ‘2016 홀리위크 서울집회’에서 축도를 하고 있다.

2017년 10월 6일 저녁, 우리 부부는 부모님과 밤늦게까지 대화했다. 아버지는 이 나라가 마치 멸망이 선포된 니느웨 같다고 걱정하셨다. 그러나 한국교회가 니느웨처럼 3일간 금식하며 기도하면 하나님이 이 나라를 살려주실 것 같다고 하셨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어머니의 전화가 왔다. 건강하시던 아버지가 갑자기 쓰러지셨다. 우여곡절 끝에 도착한 병원에서 세 차례나 심장마비가 왔고 심정지만 30분 이상 지속됐다. 이송과정을 거쳐 심장을 대신하는 에크모란 기계, 인공호흡기, 투석기로 생명의 줄을 붙잡아 놓은 상태가 되셨다.

일로만 바빴던 그때 가정과 교회, 청년들의 기도가 갑자기 깨어날 수밖에 없었다. 내가 언제 이렇게 간절한 기도를 해보았나 싶었다. 그러나 이 매우 급한 위기에도 홀리위크를 준비하는 사명 또한 놓을 수 없었다. 홀리위크 준비와 기도회 등으로 자정을 훌쩍 넘기면 나는 어김없이 한밤중에 중앙대병원 주차장을 향했다. 그 옥상 층에 올라가서 마주 보면 중환자실의 창문이 보이기 때문이었다. 거기 계신 아버지가 외로운 사투의 밤을 보내실 것 생각하면 밤에도 손을 들어 기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어느 날 아버지가 계신 그곳을 향해 운전하는 도중, 갑자기 주체할 수 없는 눈물이, 아니 정확히 말하면 통곡이 쏟아져 나왔다. 하루에 겨우 두 번 있는 면회시간도 놓쳐가며 이 일 저 일에 바빠야 하는 내 처지가 너무 힘이 들었다.

“아버지! 아버지!” 하나님 아버지를 부르는 것인지, 육신의 아버지를 부르는 것인지 나도 모르게 엉엉 울면서 어느덧 주차장 옥상에 올랐다. 여전히 창문으로 형광등 불빛이 새어 나오는 중환자실. 거기 내 아버지가 계시다. 나에게 나라를 사랑하는 신앙의 DNA를 심어주신 분이시며 가장 든든한 후원자시다. 이 사역이 너무 힘들다 보니 많은 청년이 합류했다가도 떨어져 나가곤 한다. 힘든 자리까지 함께하는 아이들은 결국 다 아버지로부터 길러진 청년들이다. 청년들과 새벽까지 어떤 날은 목이 터져라, 어떤 날은 펑펑 울면서 기도했다. 그런데 아버지의 회복을 위해 간절히 기도하던 우리에게 하나님이 주신 응답은 전혀 예상치 못한 것이었다.

“생사의 아버지를 위해 기도하는 자식의 심정으로, 이 나라와 민족을 위해 기도의 전쟁을 싸우라.”

아버지를 위한 절박함의 기도가 이 나라와 민족을 위해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왜냐하면, 지금 아버지 같은 이 나라가 다 죽게 됐기 때문이다. 아버지의 몸은 이 나라의 상황을 보여주시는 계시 같은 것이었다. 힘든 일정에도 3일을 금식했던 이유는 이 일이 결코 개인적인 일, 우리 가정의 일로만 여겨지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이를 청년들에게 설명하는 중에 더 깊은 깨달음을 주셨다. 아버지의 육신의 문제는 심장이 뛰지 않는 데서 초래됐다. 심장이 뛰지 않으니 혈압이 떨어지고 의식이 사라지고 여러 가지 문제들이 생겼다.

대한민국에 많은 문제가 있는데 그것은 근본적으로 대한민국의 심장이 뛰지 않기 때문이다. 그 심장은 바로 ‘기도의 심장’이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하나님의 기적을 바라는 기도밖에 없었다. 그런데 정말 기도할 때 기적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의사가 포기했던 심장이 3일이 지났을 때 다시 뛰기 시작했다. 수축률이 5%에서 25% 이상으로 회복됐다. 그러자 혈압이 잡히고 모든 수치가 정상으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아버지는 눈을 뜨고 반응하셨고 손가락으로 큰형님 이름까지 적으셨다.

대한민국도 기도의 심장이 다시 뛰면 우리의 힘으로 도저히 안 되는 일들이 해결될 것임을 몸으로 보여주셨다. 홀리위크는 이 기도의 심장을 다시 뛰게 하는 사명이 있다. 의사는 열흘 만에 에크모를 떼었고 모든 것이 순조로워 보였다. 나는 큰 근심을 덜고 대구까지 내려갔다. 그런데 요란한 구급차 소리에 깬 다음 날 아침 서울에서 전화가 왔다. 의사의 가족호출이었다. 그토록 기적적으로 호전돼 가시던 아버지가 안타깝게도 감염으로 매우 위험한 상태가 되셨다.

그로부터 며칠 후, 24년 전 교통사고로 죽음의 고비를 겪으셨을 때 80세까지 연장해주신다던 예언을 이루기라도 하시듯, 가족들이 보는 앞에서 아버지는 80년의 인생을 마감하고 하늘나라로 가셨다.

많은 성도와 청년들이 아버지가 천국에서 평화로운 모습으로 지내며 거기서도 설교하는 환상을 간증했다. 1000명 넘게 끊이지 않는 조문객들, 통곡하며 슬퍼하는 많은 목사님을 보면서 아버지가 참으로 훌륭하게 사셨음을 알게 됐다. 홀리위크를 일주일 앞두고 인쇄될 팸플릿에 아래와 같은 글을 적었다.

젊은 시절, 죽을병에서 살려주신 은혜로 시작하신 ‘사명’. 24년 전, 교통사고를 크게 당하셔서 절대안정 명령을 받았음에도 몰래 병원을 빠져나와 “사명이 있는 한 하나님께서 생명 지켜주실 줄 믿습니다”라고 고백하며 의자에 앉은 채 설교하는 모습에 모두를 울음바다로 만드셨던 아버님. 그 이후로도 오직 복음, 교회, 나라와 민족만을 위해 그 ‘사명’의 길 다 달려가시고 마지막 순간까지 3주간의 병상에서도 교회와 자녀들에게 ‘살아계신 하나님의 역사, 그러나 그리 아니하실지라도’의 믿음의 훈련을 시키신 후에 한국교회의 큰 별과 같으셨던 아버님 목사님께서 2017년 10월 26일 자정 22분경, 주님의 나라로 가셨습니다. 그러나 지금 홀리위크를 섬기는 청년들을 비롯해 수많은 신앙의 자녀들을 남겨두셨고, 거대한 밑거름을 일구시고 앞으로 거둬야 할 것이 더 많은 믿음의 씨앗을 심어두셨습니다. 아버지를 위해 기도하는 자식의 심정으로 우리 모두 나라와 민족을 위해 기도하겠습니다. ‘사명’을 이어가겠습니다.


최상일 목사

정리=김아영 기자 singforyou@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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