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렉스 웡 미국 국무부 북한 담당 부차관보가 5일(현지시간) 워싱턴에서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을 주제로 열린 싱크탱크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의 세미나에서 개회사를 하고 있다. 오른쪽 사진은 이날 세미나에서 마크 리퍼트(왼쪽 두 번째) 전 주한 미국대사와 캐슬린 스티븐스(오른쪽 첫 번째) 전 주한 미국대사 등 참석자들이 토론하고 있는 모습. 연합뉴스

알렉스 웡 미국 국무부 북한 담당 부차관보가 5일(현지시간) “한반도에서 지난 70년 동안 이어져 온 전쟁 상태가 영속돼선 안 된다”며 “평화체제는 북한의 보다 밝은 미래를 위한 비전의 핵심”이라고 말했다. 웡 부차관보는 또 “북한의 대량살상무기(WMD)는 체제 보장의 안전판이 아닌 불안정 요인”이라면서 ‘전략적 전환(strategic shift)’을 촉구했다.

웡 부차관보의 발언은 북한을 협상 테이블로 이끌기 위해 종전선언 등 체제 안전보장 메시지를 던진 것으로 풀이된다. 북한의 비핵화 조치를 이끌어내려면 먼저 북·미 관계 진전을 위해 평화체제를 구축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로드맵을 짠 것으로 보인다. 그동안 북한의 완전한 핵 폐기와 대북 제재 해제를 맞교환하는 ‘빅딜’ 방식의 타결을 고수했던 미국 정부가 ‘스몰딜’로 방향을 전환한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하지만 이 같은 방향 전환으로 인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대선 국면에서 북핵 폐기와는 연관 없는 북·미 합의를 추진하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동시에 제기된다.

이날 미 싱크탱크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의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 세미나에 참석한 웡 부차관보는 개회사에서 “(한반도 평화체제는) 북한과 협상을 통해 다뤄야 하는 광범위한 이슈들을 수반하고 있다”며 “평화체제는 북한의 보다 밝은 미래를 위한 트럼프 대통령의 비전을 구성하는 필수적인 부분”이라고 말했다.

웡 부차관보는 “평화체제의 개념은 WMD가 북한 안전보장의 원천이 아니라 불안정의 핵심 요인이라는 점을 보다 분명하게 해주는, 한반도에서의 전략적 전환의 가능성을 지니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의 언급은 ‘70년 전쟁 상태’ 종식의 필요성을 강조하면서 미국이 종전선언과 평화협정 체결, 북·미 국교 정상화 등을 염두에 두고 있음을 시사한 것으로 분석된다. 체제 안전이라는 선물로 북한을 대화 테이블에 이끈 뒤 비핵화 조치를 이끌어내겠다는 의도인 셈이다.

그러나 평화체제 구축 자체만으로는 북·미 양측이 원하는 알맹이가 없다는 단점이 있다. 미국으로선 구체적인 비핵화 조치가 없고, 북한 입장에선 가장 강력하게 원하는 제재 해제에 대한 언급이 없다. 북한이 미국의 평화체제 제안에 응할지는 미지수다.

웡 부차관보는 북·미 비핵화 협상의 새로운 ‘키맨’이다. 스티븐 비건 국무부 대북특별대표 밑에서 부대표를 맡아 왔다. 외부 행사에서 공개 발언에 나선 것은 이례적이다. 비건 대표가 국무부 부장관으로 승진하면 향후 북·미 협상에서 웡 부차관보의 역할이 확대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남북 및 북·미 대화가 교착상태인 가운데 이도훈 외교부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이 ‘모스크바 비확산회의(MNC)’ 참석차 7일 러시아를 방문한다. 마크 램버트 미 국무부 대북특사와 조철수 북한 외무성 미국 담당 국장도 MNC에 참석할 것으로 알려져 남·북·미 회동이 이뤄지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회동이 성사된다면 북·미 비핵화 협상에 돌파구가 될 수 있다.

그러나 권정근 북한 외무성 순회대사는 6일 담화를 내고 다음 달 한·미 연합공중훈련 ‘비질런트 에이스’ 실시 계획을 맹비난했다. 권 대사는 “조미(북·미) 대화의 불씨에 찬물을 끼얹는 극히 도발적인 행위”라며 “인내심이 한계점을 가까이하고 있으며 우리는 결코 미국의 무모한 군사적 움직임을 가만히 앉아 지켜보고만 있지 않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워싱턴=하윤해 특파원, 손재호 기자 justic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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