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故) 김용균씨의 어머니(뒷줄 마이크 든 이)가 지난달 26일 서울 중구 시립미술관에서 열린 사단법인 김용균재단 출범대회에 참석해 발언을 하고 있다. 김씨는 한국서부발전 태안화력발전소 하청업체인 한국발전기술에서 계약직으로 일했다. 지난해 12월 석탄을 운반하는 컨베이어벨트에 끼여 목숨을 잃었다. 연합뉴스

“법 위반할까봐 협력업체 안전교육은 저희가 못 시켜요.” 충남 지역에 위치한 대기업 A사의 공장 안전교육 담당자 김모 부장은 이렇게 하소연했다. 이 공장은 완제품을 포장해 트럭에 싣는 작업을 협력업체 B사에 맡기고 있다. 법적 기준으로 보면 업무를 ‘도급’하는 형태다.

그런데 ‘도급’의 경우 협력업체 직원에게 직접 업무지시를 할 수 없다. 현행법은 원청인 A사 직원이 도급사인 B사 직원에게 지시할 수 없도록 한다. 직접 업무지시를 하면 ‘불법 파견’에 해당하게 된다. 생명과 직결된 문제인 안전사고 예방교육, 안전조치 지시조차도 이 테두리를 벗어나기 쉽지 않다.

그렇다고 직접 지시가 가능한 파견 근로자로 대체하기도 어렵다. 도급과 달리 파견 근로자는 2년 이상 고용할 수 없다. ‘파견 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이하 파견법)’은 파견 근로자를 2년 이상 고용할 경우 원청에 직접 고용 의무를 부과한다. 기업 입장에서 인건비 부담이 늘게 된다. 산업안전보건법(일명 ‘김용균법’) 개정으로 올해부터 원청업체의 사고 책임이 강화됐는 데도, 불법 파견으로 판정 받을까봐 안전교육을 하거나 안전조치 지시를 하지 못하는 촌극이 산업현장에서 잦은 이유다. 김 부장은 “예전에는 같이 안전교육도 받고 했지만, 지금은 법이 강화돼서 그리 못 한다”고 설명했다.

A사 공장의 실태는 현장과 동떨어진 법 체계가 비정규직 안전에 구멍을 만든 단적인 사례다. 기업은 아직 발생하지 않은 안전사고보다 눈앞에 있는 법이 무서울 수밖에 없다.


당장 정부 지침만 봐도 선뜻 도급업체 직원에게 안전교육을 하기 힘들다. 고용노동부가 2007년 마련한 ‘사업장 점검 요령’을 보면 근로감독관들이 업무지시·감독권을 살펴보도록 하고 있다. 일일 작업 지시서, 안전교육 일지, 조회 개최 여부 등을 살펴볼 항목으로 든다. 2012년에 만든 ‘위장도급 점검 지침’을 봐도 불법 파견의 일반적 형태로 A사 사례와 같은 포장, 상·하차 작업을 적시하고 있다.

비정규직 안전사고를 예방하기 위해 개정한 산업안전보건법도 파견법 앞에서 무력하다. 올해 시행한 산업안전보건법은 안전사고 발생 시 원청업체 처벌을 강화했다. 산업재해 관련 비용을 도급업체에 떠넘기는 계약조항 금지를 적시한 하도급법처럼 원청업체가 안전 교육·관리를 철저히 하도록 유도한 것이다. 하지만 개정 산업안전보건법 어디에도 다른 법에 앞서 적용한다는 내용이 없다.

이런 법 체계 허점이 한국의 높은 산업재해 발생건수를 설명하는 단초일 수 있다. 7일 국제노동기구(ILO)에 따르면 지난해 한국의 인구 10만명당 산업재해 사망자 수는 5.1명에 이른다. 2012년(7.3명)과 비교해 2.2명 줄었지만 국제 기준으로는 여전히 매우 높다. 2016년 유럽연합(EU)의 인구 10만명당 산업재해 사망자 수는 2.2명이다.

전문가들은 제도를 정비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다. 익명을 요구한 한 노무사는 “아무래도 ‘오해’의 소지가 있다. 안전 관련 문제에 대해서는 원청업체가 직접 지시를 할 수 있도록 법을 개정하는 방안을 검토해야 한다”고 말했다.

세종=신준섭 기자 sman321@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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