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장거리 폭격기 B-1B ‘랜서’가 2017년 12월 6일 한반도 상공에서 한·미 양국 공군 전투기들과 편대비행을 하고 있는 모습. 이 비행은 한·미 연합 공중훈련 ‘비질런트 에이스’ 일환으로 실시됐다. 공군 제공

미국이 한·미 연합 공중훈련을 예정대로 실시한다고 거듭 밝혔다. 북한이 ‘전쟁연습’이라며 중단을 촉구한 지 하루도 지나지 않았는데 훈련 계획에 변함이 없다는 점을 못 박은 것이다. 최소한의 연합 대비태세를 유지하기 위한 훈련은 중단할 수 없다는 뜻이다. 북·미 양측이 비핵화 대화 재개를 앞두고 샅바싸움에 들어간 것 아니냐는 분석도 제기된다.

데이브 이스트번 미국 국방부 대변인은 “우리는 북한의 분노에 기반해 훈련을 시행하거나 규모를 조정하지 않는다”고 말했다고 미국의소리(VOA) 방송이 7일 전했다. 이스트번 대변인은 “우리의 훈련은 외교 당국자들이 북한과 열린 대화를 갖는 데 필요한 공간을 허용하는 와중에 한·미 간 준비태세를 보장하고 상호 운용을 증진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스트번 대변인은 대규모 한·미 연합 공중훈련인 ‘비질런트 에이스(Vigilant Ace)’를 대체하는 대대급 이하 연합훈련에 대해 설명한 것이다. 북한이 강력 반발하고 있지만 대체훈련마저 생략할 수 없다는 취지다. 한·미는 지난해부터 대대급 이하 연합훈련만 실시하고 있다. 이번 훈련은 이달 넷째 주에 진행될 예정이다.

외교적으로는 미국이 현재의 한·미 연합훈련 유예·축소 상태에서 한 발 더 밀릴 경우 북한에 계속 끌려다닐 수 있다는 판단도 깔려 있다. 북한은 지난달 6일 북·미 비핵화 실무협상 결렬을 선언하며 미국의 ‘대북 적대시 정책’을 철회하지 않을 경우 협상을 하지 않겠다고 했다. 한·미 연합훈련이나 미 전략자산의 한반도 전개를 중단해야 협상 테이블에 다시 앉을 수 있다는 의미다.

미국 입장에선 공식 협상을 시작하지도 못했는데 연합훈련을 완전히 중단하라는 북한의 요구를 먼저 받아들일 수 없다. 반면 북한은 지난해 6·12 북·미 정상회담 공동성명에 명시된 ‘북한에 대한 안전보장’에 한·미 연합훈련 중단이 포함돼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권정근 북한 외무성 순회대사는 전날 밤 담화를 통해 “스톡홀름 조·미(북·미) 실무협상이 결렬된 지 한 달 만에 미국이 연합 공중훈련 계획을 발표한 것은 우리에 대한 대결선언으로밖에 달리 해석할 수 없다”고 말했다. 권 대사는 “결코 미국의 무모한 군사적 움직임을 가만히 앉아 지켜보고만 있지 않을 것”이라며 “인내심이 한계점에 가까이하고 있다”고도 했다.

다만 한·미가 매년 12월 실시했던 연합 공중훈련을 11월로 당긴 이유는 12월에 북·미 대화를 진전시키기 위한 것 아니냐는 관측도 제기된다. 지난해와 마찬가지로 이번 훈련에는 대규모 항공 전력이 투입되지 않을 방침이다. 한·미는 ‘비질런트 에이스’라는 훈련 명칭도 쓰지 않고 있다. 최현수 국방부 대변인은 정례 브리핑에서 “한·미 훈련은 이미 계획되고 조정된 형태로 진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군 소식통은 “이번 훈련에서 B-1B 폭격기를 비롯한 미 전략자산이 한반도로 전개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했다.

북·미 대화 재개 여부는 러시아에서 열리는 ‘모스크바 비확산회의(MNC)’에서 그 기류를 확인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이도훈 외교부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이 이 회의에 참석키 위해 이날 출국했다. 마크 램버트 미국 국무부 대북특사, 조철수 북한 외무성 미국담당 국장 등도 회의에 참석할 예정이다. 남북 또는 북·미 간 접촉이 이뤄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김경택 기자 ptyx@kmib.co.kr

트위터페이스북구글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