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의 마지막 비서실장 데니스 맥도너가 백악관에서 기자간담회를 할 때였다. 대통령이 불쑥 들어왔다. 기자들과 농담을 하는데 맥도너가 말했다. “6시30분입니다.” 오바마가 대화를 끊지 못하고 이어가자 다시 말했다. “대통령님!” 그래도 계속되니 목소리가 커졌다. “저녁 먹으러 가시라고요!” 당시 백악관의 오후 6시30분은 오바마 대통령이 관저인 3층에 올라가 가족과 식사하는 시간이었다. 불가피한 상황이 아닌데 이 시간을 내지 못하면 비서들은 미셸 여사의 성난 얼굴을 마주해야 했다. 가족 식사를 의식 치르듯 챙긴 건 무거운 판단과 결정의 연속인 대통령의 일상에 쉼표를 찍는 일이었다. 큰 결정을 위한 작은 휴식, 직무 수행을 위한 사생활을 미국 대통령들은 이렇게 강요당하듯 지켜왔다.

그 간담회장에 있었던 월간지 애틀랜틱의 백악관 출입기자가 최근 트럼프 백악관의 풍경을 전했다. ‘외톨이 트럼프’라는 제목을 붙였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을 보좌한 전·현직 비서들은 “대통령에게 라이프가 없다”고 했다. 그의 일상에 쉼표를 찍어주려고 비서진이 시도한 것도 ‘캐주얼한 저녁식사’였다. 고위 참모들에게 “부시 대통령의 단골 중식당이 있는데 대통령 좀 데려가라”는 식으로 옆구리를 찔렀다. 그런 제안이 전달될 때마다 트럼프의 답변은 “싫어”였다. 사업하면서 하루 4시간 이상 자는 걸 죄악시했던 그는 백악관에서도 일과 휴식의 균형을 찾지 못했다. 그런 일상은 점점 질서를 잃어갔다. 오전에 웨스트윙으로 내려가 두세 건 회의를 주재하고 점심 후 뉴스를 살피다 다시 회의와 면담을 소화하던 일과가 지금은 내킬 때 내려오고 원할 때 회의하는 식이 됐다.

이런 라이프스타일을 맥도너처럼 바로잡아줄 분신 같은 참모도 없다. 첫 비서실장이 반년 만에 그만둔 걸 비롯해 트럼프 백악관의 3년은 물갈이의 연속이었다. 스스로 천재라 여기는 이 대통령은 감정의 배출구가 없는 일상에서 신뢰하는 보좌진도 없이 모든 것을 혼자 판단하고 결정하는 중이라고 한다. 그러다 보니 밥상머리에서나 꺼낼 감정 섞인 얘기를 대중에게 쏟아내고 있다. 폭풍 트윗은 갈수록 거칠어지고 대중 연설은 갈수록 격해진다. 미국의 불안정한 외톨이 대통령은 숱한 조약과 협약을 파기했고 무역분쟁을 일상으로 만들었으며 이제 우리에게 5조원 방위비 청구서를 보냈다. 불과 3년 만에 세계는 딴 세상이 됐다. 지구적인 불행이 아닐 수 없다.

태원준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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