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영설의 문화산책] 집사님, 오늘 점심 최고예요!


인터넷에서 교회를 소개해달라는 재미있는 글을 보았다. ‘○○에 있는 큰 교회를 좀 알려주세요. 학생회가 큰 교회였으면 좋겠어요. 되도록이면 밥도 맛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글의 내용을 보니까 어느 학생이 쓴 글이었다. 사람이 음식을 먹는 것은 영양분을 공급받아 육체활동을 위한 에너지를 얻기 위해서이다. 더 중요한 것은 음식이 일과 행사를 윤택하고 아름답게 하며, 인간관계를 부드럽고 넉넉하게 하는 촉매가 된다는 점이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는 속담이 있다. 국어사전에는 ‘아무리 재미있는 일이라도 배가 불러야 흥이 나지 배가 고파서는 아무 일도 할 수 없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라고 했다. 그만큼 먹을거리를 해결하는 것은 일에 앞서 중요하다는 뜻이다. 사람에게 먹을거리가 중요하기에 일용할 양식에 만족하지 않고 소유욕망에 사로잡히기 쉬운 것인가? ‘먹방’ 인생에 매료된 오늘의 세상을 보면서 소유욕망과 낭비는 적절하지 못한 심리가 똑같다는 느낌이다.

내 어린 시절의 기억에는 주일예배에 참석한 교인들에게 점심을 제공하지 않았다. 다만 주일예배 후에 찬양연습을 마친 찬양대원들에게만 국수나 라면을 대접하는 정도였다. 1년 중 한두 번 정도 중국식당에서 먹었던 자장면은 찬양대원을 특별 대접하는 날이었다. 언제부터인지 주일예배에 참석한 교우들이 점심을 함께하는 것이 일반화되었다. 주일저녁예배가 오후예배로 바뀌면서 대부분의 교회들이 점심을 함께하는 문화가 생겼기 때문이다.

성도의 교제라는 측면에서 음식을 나누는 것은 교회의 본질에 해당한다. 그러나 이 본질을 나타내려면 누군가 헌신하고 섬겨야 한다. 어린 시절 나의 어머니는 삼복(三伏)더위와 엄동설한(嚴冬雪寒)에 친척집이나 이웃집을 방문하는 것을 피하도록 하셨다. 삼복과 겨울은 활동이 쉽지 않은 때라 손님 대접이 더 어렵기 때문이다. 교회도 마찬가지다. 아름다운 성도의 교제가 되려면 누군가 음식을 만들고 설거지를 하는 등 헌신과 수고가 있어야 한다.

그런데 음식을 준비하기 위해 겪는 어려움은 어느 교회나 형편이 같다. 누가 음식을 만들고, 누군가 설거지를 하며, 반찬은 몇 가지를 준비하느냐이다. 기념일에 특별한 음식을 차리려면 종류가 많아져 더욱 분주하게 된다. 그뿐 아니라 음식을 만드는 이들은 예배를 드릴 수 없다며 어려움을 호소한다. 그래서 음식을 조리할 사람을 고용하자는 이야기도 나온다. 해결책은 국과 반찬 두 가지만 준비하고, 설거지는 남자 성도가 담당하는 것이다.

음식을 먹는 사람은 즐거운 교제의 자리가 되지만 음식을 준비하는 사람의 어려움은 쉽게 해결되지 않는다. 예수의 방문에 진수성찬을 준비하려고 분주했던 마르다의 불평은 남의 일이 아니다.(눅 10:40) 음식의 맛과 반찬의 종류보다 정성과 사랑이 만들어낸 수고가 최고의 반찬이다. 정성과 사랑으로 만든 우리 집사님의 음식이 화목하고 즐거운 교회가 되게 한다. “집사님, 오늘 점심 최고예요!” 이런 칭찬과 감탄이 화목한 교회가 되게 할 것이다.

유영설 여주 중앙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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