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정주, ‘모닝 선’, 3D 애니메이션, 액자화된 27인치 모니터. 2019년 작. 갤러리조선 제공

낯선 듯, 또한 낯설지 않은 저 장면. 침대 하나 덩그러니 놓인 방과 창, 그리고 창밖의 바다가 전부인데, 창으로 비쳐드는 햇살이 벽에 네모 조각을 만들며 시시각각 위치를 이동한다. 햇빛은 어느 순간 침대 위로 옮겨가더니 금세 사라지는 동영상이 액자 형태의 27인치 모니터에서 1분 간격으로 재생된다.


서울 종로구 북촌로5길 갤러리조선에서 열리고 있는 정정주(49·사진) 작가의 개인전 ‘보이지 않는 빛’에 나온 ‘모닝 선(Morning Sun)’이다. 작가는 개인적 경험에서 비롯된 ‘보이지 않는 빛(혹은 공포)’에 대한 감각을 사회적 경험으로 확장해 애니메이션, 설치 등을 통해 보여주고 있다.

‘모닝 선’은 홍익대 조소과 출신인 그가 독일 뒤셀도르프 쿤스트 아카데미에 유학 중이던 27세 때의 경험에서 비롯됐다. 10일 전시장에서 만난 작가는 “그때 칩거하다시피 살았다. 방에 난 창으로 비쳐드는 햇빛이 종일 조금씩 이동하는데, 문득 보이지 않는 무엇이 제 내부를 혀로 쓱 훑고 지나가는 것 같은 공포가 느껴졌다”고 말했다. 불안에 대한 내밀한 경험은 현대인의 고독을 탁월하게 묘사한 미국 사실주의 화가 에드워드 호퍼의 ‘모닝 선’을 오마주한 여러 작품으로 이어진 것이다.

불안에 대한 탐구는 유년의 기억으로까지 연결됐다. 작가는 유년 시절 광주에서 5·18 민주화운동을 경험했다. 불탄 자동차와 도로를 메운 깨진 유리 조각들, 모여든 어른들, 금남로 주변의 전일빌딩과 도청, 상무관 등은 지금도 뇌리에 선명하다.

작가는 역사적 기억과 개인적 기억이 동시에 새겨져 있는 광주 지역의 건축물 모형 사이에 카메라를 개입시켜 낯선 이미지를 만들어내며 억압이 주는 역사적 불안을 감각하게 한다.

이번 전시에는 공간 전체를 채우는 크기의 상무관 모형을 만들어 놓고, 모형 안과 밖에 비디오카메라를 설치해 건물 내외부를 벽면이나 내부에 투사했다. 상무관은 5·18 당시 희생자 시신을 임시 안치했던 곳 아닌가. 모형 재료인 흰색 폼보드의 가벼움이 공허와 상실, 아픔을 배가시키는데, 관람객은 자신의 모습이 카메라에 잡혀 벽면에 비치는 걸 보면서 역사 속으로 소환되는 느낌을 받게 된다. 전시는 22일까지.

손영옥 미술·문화재전문기자 yosoh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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