넘쳐나는 음란물, 아이들 ‘텅 빈 마음’ 파고든다

[야동 중독으로 꿈 잃은 다음 세대] <2> 외로운 아이들이 빠진 늪


#1. 40대 워킹맘 A씨는 최근 외동딸 B양(9)이 잠깐 화장실에 간 사이 딸의 스마트폰을 보고 깜짝 놀랐다. 딸은 인터넷 만화(웹툰)로 성인물을 보고 있었다. 엄마의 추궁에 딸은 학원 공강 시간에 스마트폰으로 인기 웹툰을 보다 성인용 웹툰을 접한 이후 습관적으로 보게 됐다고 털어놨다. 딸은 친구도 거의 없고 마음이 텅 빈 것 같아서 스마트폰을 더 자주 봤다며 울음을 터트렸다. 딸은 학교 수업이 끝나면 부모가 퇴근하기까지 피아노와 태권도 등 여러 학원을 전전했다. 엄마는 딸이 혼자 지내는 것에 익숙해졌다고 생각했지만 아니었다. A씨는 “외로운 아이에겐 스마트폰이 유일한 친구였을 것 같다. 바쁘다는 이유로 아이의 텅 빈 마음을 사랑으로 채워주지 못한 내 책임”이라고 말했다.

#2. 고등학생 C군(17)은 초등학생 때 호기심에 음란물을 보다 중독에 빠졌다. 여러 음란물을 섭렵하다 동성애 성향의 음란물까지 접했다. C군은 “여자친구가 있는데도 ‘야동’ 탓인지 동성애에 대한 호기심이 생기고 동성애를 직접 해보고 싶다는 충동까지 든다”면서 “왜 이러는지 심각한 자괴감이 드는데 오랜 시간 중독된 음란물을 끊기가 너무 어렵다”고 말했다.

스마트폰 보급으로 어린이·청소년이 이전보다 쉽게 음란물을 접하는 시대가 됐다. 최근 아동·청소년의 성 착취 영상이 유통되는 통로로 지목된 ‘다크웹’ 사건처럼 아동·청소년 음란물을 유통하는 범죄도 늘어나고 있다.

여성가족부가 지난해 전국 1만5657명(초등학생 4747명, 중학생 4943명, 고등학생 5967명)을 대상으로 한 ‘2018년 청소년 매체이용 및 유해환경 실태조사’에 따르면 청소년의 77.4%가 거의 매일 ‘인터넷·모바일 메신저’를 이용하고 있었다. 이들의 95.6%는 스마트폰을 통해 메신저를 활용했다.

최근 1년 동안 성인용 영상물을 시청한 비율은 39.4%였다. 특히 고등학생은 53.3%가 성인용 영상물을 본 경험이 있었다. 여가부의 2014년과 2016년 조사와 비교한 결과, 중·고등학생은 큰 변화가 없거나 감소세를 보인 반면, 초등학생의 성인용 영상물 이용률은 증가하는 추세다. 초등학생(5, 6학년)의 성인용 영상물 이용률은 2014년 7.5%, 2016년 16.1%, 2018년 17.7%로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성인용 영상물 이용 경로로는 인터넷 포털 사이트(28.2%)가 제일 많았다. 이어 인터넷 실시간 방송 및 동영상 사이트(17.7%) SNS(16.5%) 스마트폰 앱(11%) 순으로 나왔다. 또 초·중·고생의 24.4%가 ‘스스로 성인용 영상물을 보지 않으려 해도 일상생활에서 쉽게 노출된다’고 답했다.

전문가들은 청소년의 음란물 접촉이 모두 중독이라고 단정하지 않는다. 일상생활의 리듬이 깨질 정도로 집착해 똑같은 행위를 할 때는 중독이다. 청소년이 음란물에 빠지면 학업에 집중하기 어렵고 대인관계에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 중독이 지속되면 성 의식이 왜곡돼 몰카 등 성범죄로 이어질 수 있다.

고병인가족상담연구소 고병인 소장은 “다음세대의 음란물 중독 원인으로 스마트폰 보급뿐 아니라 주입식 교육, 대화가 단절된 가족관계, 부모의 중독, 자본주의 사회 분위기 등 복합적인 사회 문제를 꼽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고 소장은 이어 “자녀가 음란물 등에 중독됐다는 것은 결국 가정이 병들었다는 이야기”라면서 “일차적 책임이 있는 부모를 대상으로 한 스마트폰·성·가정 교육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서울중독심리연구소 김형근 소장도 “중독에 빠지는 사람은 대부분 심정적으로 외로운 경우가 많다. 부모와 관계가 돈독하면 자녀가 각종 중독을 이길 힘이 있다. 건강한 가정 만들기가 우선”이라며 “어른도 절제하기 힘든 스마트폰을 어린이 청소년들이 어떻게 사용해야 할지에 대한 공동체의 깊이 있는 논의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아영 기자 singforyou@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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