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들은 경제·민생 등 국정에 좌절했는데
후반전을 시작한 문재인 정권의 자기 평가에는 성찰은 없고 자화자찬만 있어
통합을 의제로 삼은 야권도 보수 궤멸 자초한 9년 반의 책임 인정하고 반성해야


손흥민 퇴장 사건이 그를 다시 돋보이게 만들었다. 그의 태클은 축구에서 얼마든지 있을 수 있는 플레이였다. 그러나 태클 이후 이차 충돌로 발목이 돌아간 고메스의 상태에 충격을 받은 손흥민은 오열했다. 후에 퇴장은 정정되었지만 손흥민은 다음 경기에서 골을 넣고도 세리머니 없이 오히려 고메스에 대한 미안함을 표현해 박수를 받았다. 사람의 마음을 울리는 것은 역시 반성과 진정성을 보여주는 사과다. 나아가 그 사과를 받아주는 사람들에 대한 감사다.

반성을 통해 잘못을 고백하고 이를 교훈으로 삼아 교정해가는 것을 성찰이라 한다. 이 성찰은 기독교나 불교 등 대부분 종교에서 가장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는 덕목이다. 불교에서 참회는 ‘뉘우치고 미안하다’는 뜻을 갖는 크샤마(Ksama)의 의역어다. 스님들이 하안거 동안거 등 육체의 고통을 감내하면서 참선하는 이유도 뉘우침을 통해 깨달음을 얻고자 하는 성찰의 방법이다. 기독교에서 기도를 하는 이유 또는 고해성사를 하는 이유 역시 회개를 통한 성찰에 있다. 아우구스티누스의 고백록이 경전이 된 것은 마음의 심연에 다다른 성찰의 힘을 일깨웠기 때문이다.

이 성찰을 아예 사회구성의 원리로 채택한 것이 현대(Modernity)다. 현대는 모든 시스템과 제도에 성찰을 깊숙이 심어 놓았다. 울리히 벡이 ‘성찰적 현대화’로 현대를 정의한 것도 이 때문이다. 현대는 정부와 기업을 포함해 어떤 조직이든 평가 반성 교정을 철칙으로 삼게 만들었다. 여기다 제대로 성찰하는지를 감시하기 위해 감독과 감사 기능을 이중 삼중으로 설치해 놓았다. 국회 감사원 회계법인 등이 모두 이 성찰을 감시하는 제도들이다. 현대가 과거보다 나은 현재, 현재보다 나은 미래를 향하는 진보(progress)의 시간 개념을 상정한다면 그 중심에 성찰이 있다. 성찰이 없다면 진화도 발전도 없다.

이 현대성의 핵심인 성찰성이 가장 흐물흐물한 영역이 정치다. 내 탓은 없고 네 탓은 난무한다. 여론조사에 따르면 정치인들에 대한 신뢰도가 길거리에서 처음 만난 사람들의 신뢰도보다 훨씬 낮다. 이처럼 신뢰도가 낮은 이유가 바로 ‘성찰의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기 때문이다. 특히 국민의 주권을 위임받은 사람들은 잘못에 대해서는 언제라도 국민들에게 사과하고 교정해야 한다. 아홉을 잘하고 하나를 못했더라도 아홉을 내세울 일이 아니라 하나를 반성해야 한다. 책임은 성찰에서 나온다. 그러나 그렇게 하지 않는다. 변명하고 호도한다. 그리고 책임을 경쟁하는 정치세력 탓으로 돌린다. 그 대가는 “정치인들은 후안무치하다”라는 국민들의 인식이다.

임기 반환점을 도는 문재인 정권의 자기 평가에도 성찰은 없었다. 청와대의 공식 입장은 지난 2년 반이 “새로운 대한민국 토대를 마련한 시기”였고 “대한민국 국민인 게 자부심이 되는 나라다운 나라의 길을 걸었다”였다. 외치와 내치가 모두 의도와 결과가 빗나가고, 경제 민생 외교안보 어느 것 하나 제자리를 못 찾고 있는데 청와대는 자화자찬으로 후반전을 시작한다. 여기에 성찰이 들어설 자리가 없다. 성찰이 없으니 감동이 없다. 믿음도 가지 않는다. 그간의 국정에 좌절한 많은 국민들은 전반전에 실패한 작전을 후반전에도 고집하는 감독의 고집에 공포감마저 느낀다.

성찰은 통합을 의제로 삼은 야권에도 필수다. 두 번의 보수 정권이 지금보다는 나았다는 자족적 인식을 앞세울 일이 아니다. 왜 그 9년 반, 국민들은 등을 돌렸는가를 먼저 반성해야 한다. 국정에 참여했던 필자부터 그 책임을 통감한다. 탄핵 과정에서 어떤 태도를 취했는가를 따지기에 앞서 탄핵까지 이르게 한 잘못에 대한 뉘우침이 선행되어야 한다. 지난 세 번의 국회의원 공천에서 줄 세우기 공천, 사심 공천으로 보수 분열과 궤멸을 자초한 정치적 책임을 인정해야 한다. 집을 지켰든 나갔든 간에 혁신도 못하고 새로운 정치실험도 실패한 데 대해 솔직히 반성하고 국민들에게 머리를 숙여야 한다. 황교안 대표가 통합추진을 선언하면서 ‘내 잘못이다’라고 인정하고 유승민 의원이 ‘탄핵의 강’을 넘어 미래로 가자고 한 취지도 여기에 있을 것이다. 이 성찰에 기초한 고백과 참회가 전제되지 않으면 통합은 봉합이 되고, 잠시 덮어둔 감정의 골은 언제든 날선 모습을 드러낼 수 있다.

통합은 국민들에 대한 진정한 미안함에서 출발해야 한다. 나라가 이렇게 흔들리는 원인을 제공한 책임을 함께 느껴야 한다. 그래야 정략을 넘어설 수 있다. 국민들이 바라는 것은 정권의 실패로 인한 반사이익에만 기대는 야당이 아니다. 정권 심판도 해야 하지만 국민이 다시 힘을 주어도 과거를 답습하지 않을 대안세력을 만들어 달라는 것이 국민들의 주문이다. 비전을 보여 달라는 것이다. 이를 위해 기득권도 내려놓고 사람도 행태도 바꾸는 혁신이 통합의 목표가 되어야 한다. 진정한 성찰 없이 그 목표는 도저히 이룰 수 없다.

박형준(동아대 교수·전 국회사무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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