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수 없는 통증·지속적인 피로, 불면증·감기 등 증상 자주 발생… 지나친 운동·스트레스도 원인
요리할 때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트랜스지방 등이 염증 유발시켜
채소·과일로 구성된 식단 필요… 붉은 육류·햄 등 섭취량 줄여야


이성호(가명·54)씨는 매일 1시간씩 운동하고 고기를 많이 먹지 않는데도 매년 건강검진에서 혈관에 나쁜 ‘LDL콜레스테롤’ 수치가 높게 나와 의아했다. 최근에 측정한 이씨의 총콜레스테롤 수치는 241㎎/㎗, LDL콜레스테롤은 143㎎/㎗로 정상 기준(각각 200㎎/㎗, 130㎎/㎗ 이하)을 훨씬 웃돌았다. LDL콜레스테롤이 높으면 혈관 내 염증을 일으키고 동맥경화증, 협심증, 심근경색, 뇌졸중 등의 발생 위험이 증가한다.

원인은 식생활 패턴에 있었다. 이씨의 경우 고기를 즐기지는 않지만 간식으로 버터빵과 믹스 커피를 자주 먹고 채소·과일 섭취는 적었다. 버터빵과 믹스 커피에는 몸에 안 좋은 ‘트랜스 지방’이 많이 들어있다.

이씨는 전문가 도움을 받아 스스로 실천 가능한 두세 가지 식습관을 우선 바꿔보기로 했다. 하루 4, 5잔 습관적으로 마시던 믹스 커피는 끊었다. 간식은 버터빵과 쿠키 대신 고구마나 통밀빵으로 바꿨다. 주식은 잡곡밥 위주로 하고 좋은 지방인 ‘불포화지방’ 함량이 높은 올리브 오일, 아보카도, 견과류, 콩 등의 섭취를 늘렸다. 주 2회는 콜레스테롤을 낮추는 오메가-3가 많이 든 등푸른생선을 먹었다. 3개월 뒤 측정한 이씨의 몸에 큰 변화가 생겼다. 혈중 총콜레스테롤이 185㎎/㎗, LDL콜레스테롤은 120㎎/㎗로 확 떨어져 정상 범위로 돌아왔다.

김해균(가명·45)씨는 얼굴에 만성적인 피부 습진이 생겨 사회생활에 고민이 많았다. 피부과에서 스테로이드, 항생제를 처방받아 복용했지만 그때뿐이고 계속 재발해 스트레스를 받았다. 배에 가스가 많이 차고 변비도 있었다. 김씨 역시 먹는 게 문제였다. 대부분의 끼니를 햄버거 같은 패스트푸드로 때우고 채소·과일은 거의 먹지 않았다. 게다가 항생제와 스테로이드 약을 자주 복용하는 상황이 장내 미생물 불균형을 가져온 걸로 의심됐다. 실제 검사결과 혐기성 세균과 칸디다 곰팡이 등 장내 유해균의 증가가 관찰됐고 핏속에 염증 지표인 ‘C-반응성단백질(CRP)’이 많이 높아져 있었다.

김씨는 스테로이드와 항생제 사용을 가급적 피하고 밀가루 음식 섭취를 줄였다. 트랜스 지방이 많이 든 패스트푸드 섭취를 줄이고 식이섬유가 풍부한 양파 등 채소 섭취를 늘렸다. 장내 미생물을 건강하게 하는 유산균 함유 발효식품과 유산균의 먹이가 되는 ‘프리바이오틱스’ 식품인 바나나도 자주 먹었다. 외식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면 되도록 채소가 많이 들어간 비빔밥, 고기를 먹더라도 샤부샤부 형태를 선택했다. 한 달간 이런 식생활을 실천한 결과 피부 문제가 거의 해결되고 배에 가스 차던 증상과 변비가 개선됐다.

이씨와 김씨처럼 자신이 겪고 있는 건강 이상이나 질병의 근본 원인을 ‘만성 염증’으로 보고 그 해결책을 섭취 음식과 잘못된 식습관에서 찾는 ‘푸드테라피(Food Therapy)’가 주목받고 있다.

만성 염증은 동맥경화, 고지혈증, 고혈압, 당뇨, 심근경색, 비만, 암, 치매, 우울증, 아토피피부염·건선 등 현대인을 괴롭히는 대부분의 만성 질환의 시작점이라 할 수 있다. 다시 말해 다양한 질병의 가면 뒤에 숨은 얼굴이 ‘만성 염증’인 것이다. 푸드테라피는 음식과 식생활 교정을 통해 질병을 치료하고 예방하는 분야다.

차의과학대 차움 푸드테라피클리닉 이경미(왼쪽) 교수가 항염증 식사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차의과학대 차움 푸드테라피클리닉 이경미 교수는 11일 “특별히 진단받은 병이 없는데도 이유 없이 아프고 반복적인 감염 등의 증상이 지속되거나 체내 염증 수치가 높아져 있다면 ‘만성 염증’을 의심해 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 교수는 최근 ‘만성 염증을 치유하는 한 접시 건강법’(판미동 간)이란 책을 펴냈다.

감염 부위에 일시적으로 나타나는 급성 염증과 달리 만성 염증은 저절로 낫지 않고 전신에 걸쳐 오랜 기간 뚜렷하지 않은 반응으로 나타난다. 알 수 없는 통증, 지속적인 피로와 불면증, 우울·불안 같은 기분 변화, 변비, 설사, 속쓰림, 체중 증가, 회복이 잘 안 되고 자주 반복되는 감기 등 모호한 증상으로 보여진다. 여러 증상이 산발적으로 나타나거나 뚜렷한 증상이 나타나지 않을 수도 있어 모르고 지내다 큰 병을 키울 수 있다. 그래서 ‘소리 없는 살인자’로 불린다.

만성 염증은 돌연변이 세포나 노후된 조직은 물론 원래 내 몸에 있지 않았던 물질들로 인해 생긴다. 세균과 바이러스, 황사·미세먼지, 수은·카드뮴 등 중금속, 환경호르몬, 진통소염제·항생제의 무분별한 남용 등이 해당된다. 지나친 운동과 스트레스도 만성 염증을 유발한다.

무엇보다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은 매일 먹는 음식이다. 이 교수는 “요리할 때 인공적으로 만들어지는 기름인 트랜스 지방, 부드러운 정제 곡물과 설탕, 잔류 농약 등 먹거리에 포함된 강력한 ‘생체 이물들’이 지속적으로 몸속에 들어오면 면역반응이 일어나 ‘활성산소’(염증 관련 물질)가 발생하고 정상 세포까지 상처를 입는 만성 염증으로 고착화된다”면서 “먹거리를 고를 때 만성 염증을 유발하는 식품과 줄이는 식품을 똑똑히 구분해야 하는 이유”라고 설명했다.

이 교수는 만성 염증을 줄이는 식품을 선택해 한 끼를 구성하는 ‘항염증 식사’를 실천하라고 권한다. 미국 하버드대 보건대학원의 영양 가이드라인 ‘헬시 플레이트(healthy eating plate)’와 미국 애리조나대 앤드루 와일 박사의 ‘항염증 피라미드’ 등 과학적 근거들과 권고안을 참조해 한국인 실정에 맞게 구성한 ‘항염증 식사 한 접시’를 제시했다.


한 끼 식사의 접시 절반은 채소와 과일로 구성한다. 채소량이 많은 게 더 좋다. 되도록 알록달록 다양한 색깔의 채소와 과일을 선택한다. 색마다 각기 다른 파이토케미컬(생리활성 물질)을 함유하고 있는데 항염증 작용을 한다. 살짝 데친 짙은 녹색채소(시금치, 케일 등)와 브로콜리·양배추·콜리플라워 같은 십자화과 채소, 당근, 양파, 해조류에도 풍부하다. 과일과 채소는 껍질째 다 먹는 게 좋다. 껍질에는 염증을 줄여주는 식이섬유와 파이토케미컬이 많다. 되도록 신선한 제철 과일을 고른다. 배송 거리가 짧을수록 영양소는 보존되고 염증의 원인인 잔류 농약은 줄어든다. 망고, 파인애플, 파파야 같은 열대 과일은 당분 함량이 높아 섭취에 주의해야 한다.

한 접시의 나머지 절반은 통곡물과 건강한 단백질 및 지방 식품으로 채운다. 통곡물은 말 그대로 껍질을 벗기지 않은 거친 곡물을 말한다. 현미, 잡곡, 퀴노아, 통밀빵, 통밀파스타 등이 해당된다. 당 지수가 낮고 식이섬유가 풍부하다. 천천히 소화 흡수되기 때문에 혈당을 급격히 올리지 않고 염증을 유발하지 않는다. 반대로 흰쌀밥(백미)과 흰빵 같은 정제된 곡물은 빠르게 소화 흡수돼 혈당을 올리고 염증을 일으킨다.

건강한 단백질은 콩과 같은 식물성 단백질과 생선, 항생제를 쓰지 않고 자연 방목해 기른 육류, 가금류를 말한다. 콩의 일부 성분만 추출한 식품이나 콩 전체를 이용한 두부, 두유, 청국장, 낫토 등이 좋다. 생선류는 항염증 작용을 하는 오메가-3가 풍부한 연어, 청어, 고등어 등을 고른다. 오메가-3는 몸에 좋은 불포화지방에 해당된다.

반면 돼지고기, 소고기 같은 붉은 육류와 우유, 치즈 등 유제품은 몸에 나쁜 ‘포화지방’이 많으므로 되도록 섭취량을 줄인다. 베이컨, 소시지, 햄 등 유가공류는 각종 첨가물과 트랜스지방이 많아 피한다. 건강한 지방이 많은 견과류, 아보카도, 햄프씨드, 피스타치오, 해바라기씨, 아마씨 등 씨앗류를 섞으면 좋다. 샐러드에는 엑스트라 버진 올리브유나 들기름, 포도씨유, 아보카도유를 사용해 보자. 반면 동물성 지방인 버터나 마가린 등은 가급적 먹지 않아야 한다.

이 교수는 “항염증 식단과 함께 하루 7, 8잔의 물을 마셔주는 것도 중요하다. 되도록 아무 성분이 들어있지 않은 물이 좋고 대안으로 당이 첨가되지 않은 차, 레몬이 들어있는 스파클링 워터도 괜찮다”고 조언했다.

유산균을 함유해 장 면역을 좋게 하고 염증을 줄이는 발효식품 섭취도 필요하다. 미생물인 프로바이오틱스와 미생물 먹이인 프리바이오틱스를 함께 함유하고 있어 장내 미생물 균형에 도움이 된다. 청국장, 낫토, 김치 등이 대표적이다. 이 교수는 “시중에 나오는 발효 제품, 특히 요거트에는 당분과 첨가물이 많이 들어있을 수 있으니 식품 표시를 꼼꼼히 살펴 첨가물과 당이 적은 제품을 구입하고, 가능하면 집에서 간단히 만들어 먹는 것도 방법”이라고 말했다.

글·사진=민태원 의학전문기자 twmi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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