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 군산시민들이 지난 9월 4일 남군산새마을금고에서 ‘군산사랑상품권’을 사기 위해 길거리까지 긴 줄을 서 기다리고 있다. 군산시가 지난해 9월 발행을 시작한 ‘군산사랑상품권’(위 사진)이 15개월새 4810억원 어치가 판매되는 등 폭발적인 인기를 누리고 있다. 가맹점도 1만98개에 달한다. 군산시 제공

#. 이건 실화다. 지난 9월4일 오전 11시쯤 농협 군산시청점. 매장 전체가 고객들로 발 디딜 팀이 없었다. 대기 번호만 343번. 저마다 번호표를 들고 한 두 시간을 기다리던 고객들은 최대 70만원 어치의 ‘상품권’을 손에 쥐고 흐뭇한 표정을 지으며 길을 나섰다. 같은 날 신협과 새마을금고 전북은행 KB국민은행 등 5개 금융기관의 매장들도 마찬가지였다.

미룡새마을금고 앞에선 길거리까지 늘어선 줄이 2시간이나 이어졌다. 이날 하루 이들 기관에서 판매된 상품권은 170억원 어치. 당시 추석을 앞둔 상황이어서 행렬이 평소보다 길긴 했지만, 군산지역에서 거의 매달 초 펼쳐지는 이 같은 풍경은 이제 일상사의 하나가 됐다.

#. ‘군산사랑상품권.’ 전국 70% 이상의 지방자치단체에서 ‘지역화폐’를 발행하고 있는 가운데 군산시가 발행하는 ‘군산사랑상품권’이 폭발적인 인기를 누리고 있다.

군산사랑상품권이 출시된 때는 지난해 9월3일. 이후 연말까지 넉달새 910억원 어치가 팔렸다. 올해 들어서도 이달 12일까지 3900억원의 판매 기록을 썼다.

15개월간 누적 기록만 4810억원이다. 군산시민 27만명이 1인당 178만원어치씩 산 셈이다. 군산시는 연말까지 100억원을 추가로 발행, 올해 4000억원을 채울 계획이다.

전국 지자체의 올해 상품권 판매 목표액은 2조2000억여원. 그 가운데 군산지역 판매량이 5분의1 가까이 차지한다. 전국 인구의 0.5%밖에 되지 않는 작은 도시에서 1321만 명인 경기도 전체보다 판매량이 많다. 그 인기가 돌풍을 넘어 이제는 신화가 되어 가고 있다.

#. 인기 비결은 구매시 할인폭이 크다는 점, 또 사용 가맹점이 많아 쉽게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여기에 지역경제를 살리자는 시민들의 동참의식도 큰 역할을 하고 있다. 시민들은 “용돈 버는 기분”이라고 좋아하고, 상인들은 “매출이 늘었다”며 반기고 있다.

군산사랑상품권은 5000원권, 1만원권, 5만원권 등 세 종류다. 액면가에서 10%를 싸게 구입할 수 있다. 할인액의 40%는 국가에서 지원하고, 60%는 시에서 부담한다.

군산시내 상품권 사용 가맹점은 1만98개다. 지역 대상 업소의 90% 이상이 참여하고 있다. 10년 이상 지역상품권을 운영하고 있는 다른 지자체보다 2배 이상 많은 업소를 1년 만에 모았다.

판매 금융기관의 매장도 75개나 돼 구입도 쉽다. 음식점이든 학원이든 커피숍이든 가맹점 어디서나 현금처럼 사용할 수 있다. 이 때문에 인근 익산이나 전주, 충남 서천에서도 상품권을 사러 오기까지 한다.

일자리 창출은 덤이다. 지역내 소상공인 가맹점 종사자 3만5000여명 가운데 수천여명의 일자리가 단단해졌다고 시는 진단했다.

여기에 시가 병행해 시행한 ‘소비지원사업’도 안착에 한몫했다. 한 달 사용액이 5만원, 10만원, 20만원을 넘을 때마다 사용액의 10%를 상품권으로 다시 건네줘 자신의 동네에서 재소비하도록 유도했다.

김성우 군산시 지역경제과장은 “우리 상품권은 경제 활성화 사업의 전국적인 성공모델로 정착했다”며 “이와 관련 50여개 지자체에서 우리 시를 다녀갔다”고 말했다.

군산사랑상품권 가맹점에서 내건 안내판. 군산시 제공

#. 찾는 발길이 많다보니 각 업소의 매출은 자연스럽게 상승했다.

지난 해 부가가치세 신고를 분석한 결과, 8412개 가맹점에서 1곳당 1680만원의 매출이 늘었다. 올해는 업소당 5000만원 이상의 매출이 증가할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군산시상인연합회 복태만 회장은 “이제는 전체 매출의 70% 정도가 상품권으로 이뤄지고 있다”고 말했다.

군산시는 두 달 전 모바일 상품권도 발행했다. 이 역시 70일 만에 150억원의 판매액을 돌파했다. 가속도가 붙어 지류와 모바일을 동시에 쓸 수 있는 매장도 벌써 5600곳을 넘겼다. 가맹점주가 상품 등록을 해 놓으면 업소를 방문하지 않아도 학원비를 결제할 수 있게 되는 등 소비자들의 편리성이 더욱 높아졌다.

#. 도시엔 숨통이 트이고 골목골목에 돈이 돌기 시작했다. 지엠 군산공장 폐쇄와 현대중공업 군산조선소 가동 중단 등으로 극도로 침체됐던 지역경제에 조금씩 활기를 찾아가고 있다.

“시민 여러분 감사합니다. 군산사랑상품권 사용이 큰 힘이 되고 있습니다.” 상가 번영회 등은 잇따라 환영 현수막과 감사 안내문을 내걸었다.

군산사랑상품권은 강임준(64) 시장의 공약이었다. IMF 때보다 더 어렵게 된 지역경제 상황을 이겨내자는 간곡한 의지였다. 대형 공장 유치도 중요하지만 내수 소비 진작으로 지역에 활기를 불어넣겠다는 뜻이었다.

“옆집 순이도 샀다.” 시의 대대적인 홍보 활동에 가맹점이 늘고 시민들의 동참이 날로 확산됐다.

인기가 폭증해 일부가 대량 구매에 나서자 일부러 한도를 줄였다. 첫해에는 1인당 월 100만원까지 구입할 수 있었으나 이제는 70만원(지류+모바일 합산)어치만 살 수 있다.

올해 군산시가 이 사업에 투자한 예산은 모두 324억원이다. 할인액 240억원과 발행비 84억원 등이다. 시는 적잖은 투자 부담에도 훨씬 많은 효과가 시내 전 지역에서 나타나고 있다고 분석했다. 지역내 금융기관의 올해 1분기 예금실적을 분석해 보니 지난 해 같은 기간보다 4000억원(8.8%) 증가했다.

여기에 군산시는 모바일상품권 결제시스템과 연계한 ‘공공배달앱’도 연내 마무리할 계획이다. 전국 지자체의 최초 시도다.

#. 지역화폐를 만드는 지자체는 지난해 66곳에서 올해 177곳으로 2.6배 폭증했다. 광역시를 포함한 전국 243개 지자체 가운데 72.8%에 해당한다. 내년쯤이면 전국 대부분 지자체에서 지역화폐가 발행될 것으로 전망된다.

이 가운데 군산시 사례는 특별하다. 경제위기지역 대응사업의 성공 사례로 손꼽힌다.

시민들이 골목 상권을 이용하며, 지역자금 역외유출이 감소했다. 지역내 소비가 늘어나며 소상공·자영업 등 지역경제 활성화에 큰 도움이 되고 있다.

군산시는 내년에도 이 상품권을 또 3000억원 이상 발행할 계획이다. 상품권의 사용성 확장과 부정 유통을 막기 위해 각별히 신경 쓸 예정이다. 그러나 한해 84억원에 이르는 발행비용은 큰 부담이다.

강임준 시장은 “지역 소비를 통한 지역경제 활성화가 안착했다고 본다”며 “‘어려운 지역 경제, 우리가 지키자’라는 시민들의 동참의식이 원동력이 됐다”고 고마워했다. 강 시장은 이어 “대형 공장 유치도 중요하지만 상품권은 확실히 지역을 살리는 활력소”라며 “현재 4%인 국비 지원액을 늘려주고 더불어 일정액 이상을 발행하는 지자체에는 국가에서 발행 비용을 지원해 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 장면 더 하나. 12일 오후 군산시청 앞 한 커피숍에서 기사 작성을 마무리 하는 사이 20대 손님 4명이 연이어 들어왔다. 각자 주문을 하고 휴대폰을 어느 기계에 들이댔다. ‘틱’ 소리와 함께 결제가 끝났다. 모바일상품권이었다.

군산=김용권 기자 ygk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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