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육지에 살 때 가끔 제주에 오면 가장 인상적인 것이 오름과 돌담이었다. 완만하게 흘러내리는 한라산 기슭에 독립적으로 하나의 봉우리로 솟아 있는 수많은 기생화산 오름은 어느 곳에서도 보지 못한 이색적인 풍경이다. 그리고 제주 어느 곳에서나 볼 수 있는 그 검은색 돌담은 제주 여행의 인상을 풍부하게 하는 마침표와 같은 존재였다. 그런데 그 많은 돌들은 도대체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2016년 1월 제주시 구좌읍 하도리 나의 집이 완성돼 갈 때쯤 마지막 큰 공사가 정화조를 묻는 일이었다. 집 앞 주차장 자리에 5t 크기의 정화조를 묻기 위해 땅을 파는 데 큰 포클레인 한 대가 5일을 팠다. 집터는 원래 밭이었다. 그 밭을 30~50㎝만 파고 들어가면 모두 암반이다. 그 돌을 부숴 들어내고 정화조를 넣었다. 마당에는 큰 팽나무 4그루를 심었다. 이 나무를 심기 위해 포클레인으로 돌을 깨 구덩이 4개를 파는 데 꼬박 하루 걸렸다. 정화조 묻고 나무 심는 데 파낸 돌들은 형태나 질에 따라 땅을 메우거나 축대를 쌓을 때, 아니면 다른 곳에서 우리가 늘 보는 그 돌담을 쌓는 데 쓰일 것이다.

화산으로 생긴 제주도는 섬 전체가 용암지대다. 용암이 오랜 시간 풍화되며 갈라져 조각이 나고 가루가 돼 빗물에 흘러내려 모인 곳이 밭이 됐다. 표면이 돌 조각으로 남은 곳은 원시림이 돼 곶자왈이란 지형이 생겼을 것이라 추정할 수 있다. 농부들은 작물을 심기 위해 한 뼘의 땅이라도 더 늘리려 돌을 들어내 토지 경계에 던져놓았는데 그 돌들이 담이 됐다. 이 담은 제주의 바람을 막는 데 매우 유용한 바람벽 기능을 해줬다. 얼마나 오랜 세월을 거치며 이 같은 지혜가 생기게 됐을까. 제주 돌담은 척박한 화산섬에서 살아남기 위한 몸부림에서 비롯된 농부들의 피와 땀이다.

돌담에는 시멘트와 같은 접착 기능을 하는 물질을 사용하지 않는다. 아랫돌을 윗돌이 누르고 그 윗돌은 또 윗돌이 누르며 옆의 돌과 맞물린다. 맞물림이 약한 경우 사이에 굄돌을 넣는다. 이렇게 쌓아 올리며 담의 높이가 1m, 2m까지 올라갈 수 있다. 돌을 겹쳐 쌓는 동안 돌과 돌 사이에는 작은 구멍이 남는다. 그 틈으로 바람이 지나간다. 돌과 돌의 맞물림, 바람이 지나갈 수 있는 틈새 구조, 이것이 바람에 무너지지 않는 제주 돌담의 물리적 원리다.

밭담은 한 줄로 쌓은 외담이 대부분이다. 주택에는 바람에 넘어지지 않도록 두 줄로 쌓은 접담이 있고 중산간의 말목장과 무덤 주변에 쌓은 돌담은 산담이라고 한다. 군사용 성담도 있는데 큰 돌을 다듬어 틈새 없이 쌓았고 접담보다 높이 많은 돌을 뒤에 쌓아 담 위로 사람이 다닐 수 있다. 성담은 오래전에 많은 세금과 인력이 투입된 담이다. 성담은 구좌읍 별방진, 표선면 성읍마을, 대정읍 제주추사관 등에 가면 볼 수 있다.

돌담을 쌓는 일은 중노동에 해당한다. 석공의 하루 노임은 25만원이다. 석공을 보조하는 인부는 12만원이다. 돌담을 높이 1m, 길이 10m 쌓는 데 한나절이 걸릴 수 있고 열흘 걸릴 수 있다. 밭담처럼 돌이 생긴 대로 쌓아 올리면 한나절, 돌을 망치나 절단기로 다듬어 고급스럽게 쌓으려면 열흘이 될 수도 있다. 제주에서 면이 반듯하게 쌓인 돌담을 보면 돈이 많이 들어갔다 알아야 한다.

나의 집 하도리안은 카페나 펜션 앞의 돌담을 자연스럽고 투박한 밭담 형태를 선택했다. 외담이라 태풍이 올 때마다 바람머리의 돌담이 무너진다. 그것을 다시 쌓아 올리며 돌담의 구조와 기능을 배우고 있다.

박두호(전 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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