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해 평균 2400명이 일터에서 산업재해(사고+질병)로 목숨을 잃는 나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산재 사망률이 1위인 나라. 크레인에서 추락하고, 컨베이어벨트에 끼이고, 스크린도어 수리하다 숨지는 나라. 원청업체는 나 몰라라 하고 하청 노동자들만 희생되는 나라. 2016년 서울 구의역 사고로 외주업체 19세 청년이, 2018년 12월 충남 태안화력발전소에선 협력업체 24세 김용균이 그렇게 허무하게 하늘나라로 갔다. 그리고 이름도 알려지지 않은 이들이 3∼4시간마다 1명씩, 하루 7명꼴로 죽어나간다. 산재공화국의 서글픈 현주소다.

‘위험의 외주화’로 인한 죽음의 행렬이 멈추지 않는다. 법적·제도적 방지 장치가 필요하건만 지지부진하기만 하다. 지난해 말 ‘김용균법’인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안이 통과됐지만 하위 법령인 시행령과 시행규칙안이 법 취지에 맞지 않게 후퇴함으로써 누더기 반쪽 입법에 그쳤다. 도급 금지 대상이 줄고 원청 사업주의 책임 범위도 축소돼 제2, 제3의 김용균이 나오는 걸 막지 못하게 됐다. 대통령 지시로 구성된 특별노동안전조사위원회가 8월 내놓은 22개 권고안도 이행 진척이 없다. 보다못한 국가인권위원회가 위험의 외주화 개선, 위장도급 근절 등을 지난주 고용노동부 장관에게 권고했을 정도다.

오늘은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고 외치며 산화한 22세 청년 전태일의 49주기가 되는 날이다. 반세기가 지났지만 노동현장의 눈물은 마르지 않는다. 기계처럼 일하며 기계에 끼이고 기계에 짓눌려 온몸이 부서지는 참담한 현실이 되풀이된다. 발전비정규직연대회의가 재발 방지책을 촉구하며 사망 1년이 다 돼가고 있는 김용균의 추모분향소를 엊그제 서울 한복판에 다시 설치하고 농성에 들어갔으니 이 얼마나 답답한 세상인가. 오늘 저녁엔 ‘전태일에서 김용균으로 촛불행진’도 열린다.

젊은 세대에게 전태일 정신을 알리기 위해 힙합도 소환된다. 공통점이 ‘저항 정신’이란다. 힙합은 1970년대 후반 미국 뉴욕 빈민가 흑인들이 탄생시킨 문화운동이다. 억압과 차별에 대한 저항의 산물이다. 이것이 전태일 정신과 맞닿아 있다고 본 서울시와 전태일기념관이 16일 광화문광장에서 ‘제1회 전태일 힙합음악제’를 개최한다. 사랑, 행동, 연대를 키워드로 경연을 펼친다. 비정규직의 죽음이 대물림되지 않도록 하려면 분노와 저항의 몸짓이 계속돼야 하는데 안전하고 차별 없는 일터는 언제 만들어질지….

박정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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