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정부가 아세안(ASEAN·동남아시아국가연합)과의 관계를 주변 4강(미국·일본·중국·러시아) 수준으로 격상하겠다고 선언하고 신남방정책을 적극 펼치면서 ‘한·아세안 3.0’ 시대에 접어들었다. 오는 25일부터 부산에서 열리는 ‘2019 한·아세안 특별정상회의’는 대화관계가 수립된 지 30년을 맞은 한·아세안 관계의 화룡점정이 될 전망이다. 문재인 대통령과 아세안 10개국 정상들이 만나 지난 30년을 돌아보고 앞으로 30년의 동반성장을 논의하게 된다.

한·아세안 상호 교역액은 대화관계가 시작된 1989년에는 82억 달러에 그쳤으나 지난해는 사상 최대 규모인 1599억 달러(185조7000억원)를 기록했다. 30년 동안 20배 늘어난 교역액은 아세안과의 동반자 관계가 무르익고 있음을 보여준다.

1989년 이전을 한·아세안 1.0 시대로 부른다. 이때는 개별 국가와의 양자 외교만 이뤄졌다. 한국은 80년대 초부터 대화관계를 맺자고 러브콜을 보냈지만, 아세안은 당시 개발도상국이던 한국이 실질적인 도움이 되기 어렵다고 판단해 거절했다.

86서울아시안게임과 88서울올림픽의 성공적 개최로 한국이 발전된 국력을 과시하자 분위기가 달라졌다. 아세안은 89년 11월 한국에 ‘부분 대화 상대국’ 지위를 부여하며 대화관계를 수립했고, 2년 뒤에는 미국·일본과 동일한 ‘완전 대화 상대국’으로 격상했다.

이후 경제·통상 위주로 협력이 확대된 20여년이 한·아세안 2.0 시대다. 이 시기에 제1, 2차 한·아세안 특별정상회의가 열렸고 한·아세안센터와 주아세안대표부가 개설됐다.

2017년 문재인정부 출범 후 한·아세안 3.0 시대가 도래했다. 문 대통령은 임기 내 아세안 10개국을 모두 방문하겠다는 공약을 지난 9월 달성했다. 아세안 국가들의 한류 열풍에 힘입어 한국의 소프트파워가 확대되고 인적교류도 한층 활발해지고 있다. 정부는 국장급이던 아세안대표부 대사를 차관급으로 높였고, 한·아세안 협력기금 규모도 연간 700만 달러에서 1400만 달러로 2배 늘렸다. 다만 일·아세안 통합기금이 5600만 달러인 것을 감안하면 더 늘려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미·중 패권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중국과 인접해 있는 한국과 아세안의 외교안보 분야 협력도 절실해지고 있다. 중국은 일대일로(一帶一路·육상해상 실크로드) 구상을 펼치며 아세안 지역에 대한 영향력 확대를 꾀하고 있다. 미국은 이에 맞서 남중국해에서 군사작전을 펼치는 등 인도·태평양 전략을 내세워 중국을 견제하는 중이다. 미국은 최근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지속가능한 인프라 개발을 목표로 하는 ‘푸른 점 네트워크(Blue Dot Network)’ 계획도 발표했다. 이 계획 역시 중국의 일대일로 구상을 견제하기 위한 것으로 평가받는다. 또 아세안의 전략적 가치가 높아졌음을 보여주는 증거이기도 하다.

최원기 국립외교원 아세안·인도연구센터 책임교수는 15일 “미·중 경쟁 등 때문에 지역 질서가 전반적으로 불안정한 상황인데, 이해관계가 일치하는 한국과 아세안이 외교안보 분야에서 협력을 강화하는 것이 서로의 입지를 위해 필요하다”며 “아세안은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에도 든든한 우군이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상헌 기자 kmpaper@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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