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중앙청소년디딤센터에 입교한 청소년들이 지난 7일 진로프로그램 중 하나인 요리수업을 들으며 빼빼로를 직접 만들고 있다. 용인=권현구 기자

올해 초까지 김민혜(가명·17)양의 팔뚝은 수차례의 자해로 벌겋게 부어올라 있었다. 학교와 가정에서 삶의 의미를 찾지 못한 민혜는 자해와 자살 시도로 병원을 전전했다. ‘죽어버리면 다 해결된다’고 생각하며 방황하던 그는 보건소 상담사의 소개로 지난 3월 경기도 용인에 위치한 국립중앙청소년디딤센터에 들어갔다.

낯선 청소년·상담사들과 24시간 함께 생활하는 디딤센터에서 민혜는 쉽게 적응하지 못했다. 처음에는 충동적으로 사고를 치거나 못되게 행동했다. 하지만 하루 종일 곁을 지킨 상담사들은 쉽게 포기하지 않고 꾸준히 이야기를 나누며 고민을 들어줬다. 민혜는 12일 “정이 든 선생님들의 기대를 저버리기 싫어 계속 버텼더니 우울증이 나아지는 날이 오더라”고 했다. 디딤센터에서 자해를 끊은 민혜는 현재 청소년문화센터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청소년 심리상담사가 되기 위해 검정고시를 준비하고 있다.

지난 7일 찾은 디딤센터에는 민혜처럼 가정불화나 왕따로 우울증에 걸리거나 학교 폭력 등으로 관계에 어려움을 겪는 남녀 청소년 60명이 함께 생활하고 있었다. 여성가족부가 운영하는 디딤센터는 한국 사회에서 ‘문제아’로 찍힌 청소년들이 4개월간 지내며 치료를 받을 수 있는 ‘디딤과정’을 일 년에 두 차례씩 연다. 한 달 혹은 4박 5일간 진행되는 단기 과정도 있다.

청소년들이 전문 바리스타에게 커피내리는 법을 배우고 있다. 용인=권현구 기자

디딤과정에 참여한 청소년들은 6명씩 한 조가 돼 10개 생활동에서 합숙을 한다. 각 생활동에는 주·야간 상담사 2명이 돌아가며 항상 함께 거주한다. 여기에 상담을 전공한 개별화관리자와 각종 활동 프로그램을 가르치는 지도사가 조별로 아이들을 돌본다. 아이 여섯과 어른 넷이 모인 이들은 일종의 ‘재구성된 가족’이다.

최경찬 치료팀장은 “디딤센터를 찾는 대부분의 아이들은 원 가정에서 어려움을 겪은 경험이 있다”며 “센터에서 재구성된 가족은 부모가 채워주지 못했던 정서적 안정을 충족시켜 준다”고 말했다. 전문 상담사들은 일상적인 관찰과 대화를 통해 개별 아이들의 문제행동 원인을 파악하고 알맞은 치료 목표를 설정한다. 정신과 전문의의 정기 진료를 바탕으로 필요할 경우 약물 치료도 병행한다.

합숙 기간 이뤄지는 치료의 필수조건은 상담사와 입교생 간 신뢰다. 학교나 가정의 여러 관계에서 상처를 받은 아이들은 쉽게 속을 터놓지 않는다. 박영미 생활상담부 팀장은 “입교하고 나서 4주 정도는 각종 레크리에이션을 통해 상담사와 아이들 간 가까워지는데 가장 집중한다”고 했다. 매분 매초 아이들과 교류하는 것은 신뢰 형성에 도움을 준다. A군(14)은 “학교에서 싸웠을 때는 반성문을 쓰고 학교폭력대책자치위원회가 열리는 것이 전부였다”며 “이곳에서는 아무리 말썽을 피우고 대들어도 선생님들이 제 이야기를 끝까지 들어준다”고 말했다.

전문상담사들이 입교생 생활 및 활동 관찰 및 상담 방법을 논의하고 있다. 용인=권현구 기자

입교생들이 직접 참여하며 배우는 각종 프로그램은 모두 치료와 연관된다. 디딤센터는 진로와 관련해 요리와 사진, 드론, 메이크업, 바리스타 등 9개 과정을 진행하고 있다. 나상희 활동교육부 팀장은 “자존감이 떨어진 아이들이 많은 만큼 자격증을 따는 것처럼 작은 성취감을 맛보는 것이 중요하다”며 “학생이 겪는 문제의 원인과 소질 등을 고려해 가장 높은 치료 효과를 보일 수 있는 프로그램을 배우게 한다”고 설명했다.

디딤센터만의 널찍하고 쾌적한 환경에서 이뤄지는 독특한 치료 방법도 효과가 좋다. 15만8000㎡(약 4만8000평)가 넘는 부지에는 명상과 산책, 도예 등을 할 수 있는 공간이 구비돼 있다. 입교생들은 강아지와 교류하는 ‘동물 매개치료’를 받거나 텃밭에서 배추와 케일 등을 키우며 스트레스를 해소한다. 초등학교 6학년생 B군은 “형들이랑 배드민턴치고 강아지랑 산책하다 보면 학교에서 왕따 당하고 욕먹던 기억이 잘 안 난다”고 웃으며 말했다.

디딤센터는 청소년뿐 아니라 돌봄에 취약한 부모를 상대로도 교육을 한다. 가정환경이 바뀌지 않고서는 아이의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어렵다는 취지에서다. 센터는 일주일에 한 번씩 양육자를 직접 만나 훈육법이 잘못되지 않았는지 검증하고 소통·경청의 방법을 가르치는 ‘패밀리 멘토링’을 진행하고 있다.

한 청소년이 센터 내 개인상담실에서 상담을 하고 있다. 용인=권현구 기자

현재 디딤과정 참가자 학부모 가운데 25명이 패밀리 멘토링을 받는 중이다. C군(15)의 어머니는 툭하면 화를 내며 아들에게 잔소리를 하곤 했지만 멘토링을 받으면서 자녀와 대화하는 법을 배웠다. C군은 “어머니와는 항상 데면데면하거나 말싸움만 했었는데 이제는 같이 여행 가서 조잘조잘 떠들 정도로 관계가 좋아졌다”고 말했다.

감정 조절에 능숙하지 못한 입교생들이 혹여라도 사고를 치지 않게끔 빈틈없는 관리와 통제는 필수다. 싸움이 벌어지면 문제를 일으킨 아이는 즉각 안전 수칙대로 분리 조치된 후 일대일 상담을 받는다. 감정을 가라앉힐 수 있는 안정실은 주요 건물마다 마련돼 있다. 아이들의 자해를 방지하기 위해 곳곳에 있는 뾰족한 못 등에 셔틀콕 꼭지를 박아 둥글게 만들어 놓기도 했다.

합숙을 통해 이뤄지는 이 같은 맞춤형 치료는 상당히 효과적이다. 센터 측이 2013년부터 2017년 사이 프로그램 참가자의 입교 전후를 조사한 결과 우울과 불안, 폭력, 강박증과 같은 위험지수는 평균 20.4% 감소했고 자기만족도와 자아존중감 등 긍정지수는 평균 12.5%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김선옥 원장

디딤과정에 들어가기 위한 경쟁률은 평균 2.5대 1 수준으로 낮지 않다. 현재 겪고 있는 문제에 대한 진단서 등을 받은 뒤 심리검사와 면접을 통해 치료가 필요한 아이를 위주로 선발한다. 박 팀장은 “입교 시 가장 중요하게 보는 것은 스스로 변화하고자 하는 동기”라고 설명했다. 2012년 10월 개원한 이래 지금까지 디딤센터를 다녀간 청소년은 모두 6708명이다.

방극렬 기자 extrem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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