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국 사태로 치명적 상처 입은 정부가 바뀌지 않으면
강하고 건강한 야당이 독주 견제해야
그러나 현실의 보수 야당은 혁신 못하고 스스로 기만해
보수대통합의 전략도 없고 개혁적 보수 가치도 제시 못해


문재인 대통령이 임기 반환점을 돌았다. 현 정부에 대한 평가가 정치적 입장에 따라 갈리는 것은 당연하지만 지금처럼 정확히 반반으로 갈려 대립하고 있는 현실은 심히 우려된다. 한쪽은 공정사회로의 의미 있는 변화가 이루어졌다고 자화자찬하고, 다른 한쪽은 정반대로 공정의 가치 자체가 무너졌다고 평가한다. 지난 2년 반 동안 문재인정부의 업적에 대한 평가가 어떠하든 한 가지 사실은 분명하다. 국민은 진영으로 나뉘어 적대적으로 분열되고, 대화와 타협의 정치는 실종되었다. 지속가능한 정치의 파괴, 이것이 어쩌면 현 정부의 최대 실패일 것이다.

현 정부가 조국 사태로 치명적인 상처를 입은 지금 상황에서 과연 방향을 바꿀 것인지는 의문이다. 정부가 바뀌지 않으면 야당이 바꿔야 한다. 강하고 건강한 야당이 사실 ‘성공한 정부’를 만들기 때문이다. 강한 야당은 집권세력의 독선과 독주를 견제함으로써 사회가 합리적으로 변화할 수 있는 토대를 제공한다. 민주사회에서의 발전은 언제나 합리적 제도 개혁을 통한 점진적 변화다. 건강한 야당과의 지속적인 대화와 타협은 사회의 방향을 온건하게 조정함으로써 급격한 혁명의 혼란과 폭력을 미연에 방지한다.

지금 우리에게 건강한 보수 야당은 과연 있는가. 정치가 실종되었다는 것은 야당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야당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정치의 본질인 대화와 타협도 없다. 문재인정부의 성공을 진정으로 바란다면 우리는 이 문제를 진지하게 고려해야 한다. 누가 우리 사회에서 보수 야당을 죽였는가. 조국 사태에 대한 대응은 이 물음에 대한 답을 시사한다. 운동권 정부의 기득권 세력이 조국 사태에 대해 ‘도덕적 자기면허’로 대응한다면 보수 야당은 ‘정치적 자기기만’으로 응대한다.

‘도덕적 자기면허(moral licensing)’는 민주화 투쟁을 했다는 과도한 자기신뢰로 그 이후 이어지는 부도덕한 행위의 결과에 대해 신경을 쓰지 않는 사회심리학적 태도를 말한다. 예컨대 환경운동을 하니까 SUV를 타고 다녀도 된다는 식이다. 이들은 한번 민주화운동을 했으니까 자신들의 모든 행위가 민주적이고 도덕적이라는 도덕적 면허증을 스스로 발부하는 셈이다. 이러니 서초동 광장집회는 혁명이고, 광화문 광장집회는 적폐라는 말에 거리낌이 없다.

문제는 보수 야당이다. ‘이게 과연 나라인가’라는 국민적 탄식을 불러일으킨 지난 정부에 책임이 있음에도 보수 야당은 지난 2년 반 동안 진정한 자기혁신을 하지 못했다. 조국 사태로 촉발된 광화문 광장집회는 한편으로 극우 반동세력과 합리적 보수세력의 경계를 불투명하게 만들었으며, 다른 한편으로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으로 이어진 국정농단 사건에 대한 면죄부를 주었다. 보수 야당은 현 정부를 규탄하는 국민들이 자신들을 지지한다고 착각한다. 이는 스스로를 기만하고, 국민을 기만하는 것이다.

조국 사태 이후 보수 야당의 전략은 ‘정치적 자기기만’인 것처럼 보인다. 자기기만은 다른 사람을 효과적으로 기만하기 위하여 스스로를 기만하는 행위를 일컫는다. 자기기만에서는 속이는 자와 속는 자가 동일하다. 진실을 알고 있으면서도 거짓을 말하는 사람이 속이는 자라면 속는 사람은 거짓을 진실로 받아들인다. 스스로 믿어야 다른 사람을 믿게 만들 수 있기 때문에 스스로를 속이는 것이 자기기만이다. 처음에는 거짓이라는 것을 알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사람들은 자기기만에 희생되어 거짓을 진실로 믿게 된다.

지금 보수 야당이 꼭 이런 꼴이다. 개혁을 하지 않으면 국민의 지지를 받을 수 없다는 것을 잘 알면서도 현 정부를 반대하는 무당층이 결국 보수 야당을 지지할 것이라고 믿는다. 차기 총선에 대한 선거전략을 보면 보수의 자기기만은 더욱 명백해진다. 자유민주주의 가치를 중심으로 보수대통합이 이루어지면 차기 총선에서 승산이 있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우선, 현 보수 야당에는 무엇이 자유민주주의 가치인가에 관한 진지한 토론도 합의도 없다. 국정농단 사건은 사실 자유민주주의를 주장하면서도 자유의 가치를 배반한 데서 기인한 점이 크다. 그런데 현재의 보수세력은 현 정권의 사회민주주의적 성향에 대한 반동 자체가 자유민주주의의 정당성을 말해준다고 스스로 기만하고 있다.

다음으로, 현 보수 야당에는 통합의 구체적 방향과 전략도 없으면서 통합의 말만 무성하다. 지난 2년 반 동안 우리 사회의 정치적 지형은 약간 좌측으로 옮겨갔음에도 보수 야당은 새로운 개혁적 보수의 가치와 방향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조국 사태의 핵심적 문제인 ‘공정사회’에 대해 보수 야당의 대안을 들어본 적이 없지 않은가. 자기기만의 극치는 사실 상대방이 못하면 자기가 잘한다고 착각하는 것이다. 국민 대다수가 원하는 성공한 정부를 위해서는 건강한 야당이 필요하다. 다음 총선까지 짧은 시간에 과연 건강한 야당이 만들어질 수 있을까.

이진우 포스텍 인문사회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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