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조혜련 (2) 호기심에 엄마 따라간 시장, 베테랑 장사꾼 되다

쑥스러워 큰소리 못 내는 엄마 대신 앞치마 두르고 ‘쑥갓 사세요’ 외쳐

조혜련씨가 1985년 경기도 군포시 산본 집 앞에서 자전거를 타고 있다.

우리 가족은 1978년 경기도 군포시 산본으로 이사했다. 아버지는 몸이 약하셔서 일하지 못 해 할머니와 어머니가 농사일을 도맡아 하셨다. 생활비 대부분은 비닐하우스나 밭에서 뜯은 채소를 대량으로 시장에 팔아 생계를 유지했다. 도매로 넘기다 보니 이윤은 많지 않았다. 농사일은 힘든데 생활은 늘 쪼들렸다.

밭에서 일하고 있는 엄마에게 다가가 “엄마, 참고서 사야 하는데 돈 좀 줘!”라고 말하면 엄마는 그냥 주는 법이 없었다. “이 돈 잡아먹는 귀신아”라며 돈을 내동댕이쳤다. 나는 여기저기 흩어져 땅속에 박힌 동전들을 손으로 파서 꺼내 들고 울면서 학교에 가야 했다.

엄마는 안양중앙시장에서 쑥갓을 팔았다. 하루는 나도 그곳이 너무 가보고 싶었다. 시장으로 가는 엄마를 따라 버스에 올라탔다. 엄마는 차비가 아깝다며 버스 뒷문에서 나를 발로 차 문 밖으로 밀어버렸다. 그날은 시장에 가지 못했지만 버스에서 내동댕이쳐지면서 결심했다. “꼭 그곳에 입성하리라!”

얼마 후 나는 엄마를 따라 시장에 발을 내디뎠다. 우리는 상점도 없이 가게와 가게 사이에 작은 대야 하나를 놓고 지나가는 사람에게 구걸하듯이 장사하는 수밖에 없었다. 시장에서의 엄마는 소심하기 짝이 없었다. 나도 잘 안 들리는 개미 소리 만한 목소리로 “쑥갓 들여 가이소, 싱싱합니더”라고 속삭였다.

쭈뼛쭈뼛 쑥스러워하는 엄마 앞에 내가 나섰다. “쑥갓 사세요. 엄마가 지금 밭에서 갓 뜯은 거라 엄청 싱싱해요. 비타민과 무기질도 풍부해요!” 어디서 주워들은 어설픈 영양 이론까지 꺼내놓으며 소리쳤다. 초등학교 5학년짜리 여자아이가 떡 하니 앞치마를 두르고 큰소리로 외치니 지나가는 아줌마들이 두 단, 세 단 많이 사주셨다.

호기심으로 엄마를 따라간 시장에서 나는 마치 10년 정도 그 일을 한 베테랑처럼 자리를 잡게 됐다. ‘쑥갓 파는 초등학생’하면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였다. 어느 순간부터 엄마는 시장에 오지도 않고 밭에서 물건을 공급해주느라 바빴다. 나는 시장의 장사꾼이 돼버렸다.

장사하면서 몇 가지 힘든 점이 있었다. 그중 하나는 내가 장사하는 옆집 가게 아줌마의 끈질김이었다. 엄마 없이 혼자 장사하고 있으면 아줌마는 은근슬쩍 말을 걸어왔다.

“쯧쯧. 네 엄마 계모지?”

“아뇨, 우리 엄마 계모 아니고 진짜 우리 엄마인데요!”

“아냐, 네 엄마는 계모야! 그렇지 않고서 어떻게 이렇게 어린아이를 시장통에 내돌려.”

몇 날 며칠을 자기가 원하는 답이 나올 때까지 나를 괴롭혔다.

또 다른 하나는 단속반 아저씨들한테 걸릴 때였다. 장사하고 있으면 나무 몽둥이를 든 아저씨가 내 쑥갓이 든 대야를 집어 들어서 트럭에다 던져버리며 이렇게 말했다. “얘! 빨리 집에 가. 어린 게 여기서 뭐 하는 거야?”

나는 질세라 간절하게 트럭에 매달려서 아저씨한테 애걸복걸했다. “아저씨 힘들게 먹고살라고 하는데 쑥갓하고 대야 주세요. 부탁이에요.” 끝까지 매달리는 나의 뒤로 쑥갓하고 대야가 흩어져 바닥으로 나뒹굴었다. 그래도 목숨을 지키고 물건들을 되돌려 받은 것에 뿌듯해했다.

재미와 호기심으로 시작한 장사는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중학교 2학년 때까지 4년간 이어졌다. 이렇게 번 돈으로 언니들의 참고서와 집안의 생활비까지 충당할 수 있었다.

정리=박효진 기자 imher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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